논란은 허스트에서 시작됐지만, 그 결론마저 허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 4월 한 달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은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을 관람하려는 행렬로 전례 없는 북새통을 이뤘다. 열띤 호응만큼이나 반발의 목소리도 높았다. 허스트가 공공 미술관에서 다룰 만큼 ‘동시대성’을 띤 작가인지, 이번 전시가 ‘공공 미술관의 역할’에 부합하는지 묻는 회의가 쏟아졌다. 언뜻 허스트를 둘러싼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태의 전부는 아니다. 진짜 시험대에 오른 것은 허스트라는 한 명의 ‘악동’이 아니라, ‘동시대미술’ 그 자체와 ‘공공 미술관’이라는 제도였다.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허스트의 작품론은 물론 ‘동시대성의 기준’과 ‘공공 미술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답을 찾아야 했다. 허스트를 연대기적으로 조명하는 일반 특집이나 크리틱으로는 부족했다. 편집부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이번 특집 「데이미언 허스트와 동시대미술의 쟁점」은 허스트를 동시대미술이 마주한 거대한 ‘징후’로 규정한다.
여기서 ‘징후’란 보이지 않는 거대한 병리적 구조가 표면으로 터져 나온 균열을 뜻한다. 생명 윤리, 스캔들리즘, 표절과 차용, 미술과 자본의 결탁, 공장식 스튜디오의 노동 소외…. 허스트가 촉발한 이 문제들은 허스트 한 사람에게 귀결되지 않는다. 동시대 미술작가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연루된 문제다. 우리가 그를 동시대미술의 징후로 호명하는 이유다. 이번 특집에 실린 세 편의 평문은 허스트라는 작가를 넘어 그에게 투영된 구조적 모순을 해부한다. 스펙터클 중심의 전시 문화, 브랜딩과 마케팅의 수단이 된 작가 아이덴티티, 제도와 자본에 포섭되는 과정에서 소거된 비판적 자율성을 조준했다. 여기에 더한 연보 크리틱은 개념미술의 종언이라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허스트의 연대기를 소환한다. 그리고 앙케트를 마련해 다음 질문으로 향했다. 공공 미술관은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다뤄야 하는가. 미술전문가 52인에게 ‘공공 미술관이 주목해야 할 해외 작가’를 물었고, 동시대적 쟁점을 정면으로 파고든 세계 미술의 주역 133명(팀)이 호명됐다. 추천평과 함께, 해외 작가 큐레이션의 가치 기준과 실천 방향을 정리했다.
그런데 허스트의 ‘징후’는 정말 미술만의 이야기일까? 그것을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한 징후로 읽어낼 수는 없을까? 초기 개념미술은 예술품이 거래되는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물질을 소거하고 ‘아이디어’를 내세웠다. 그러나 허스트는 이 역사적 맥락을 차용하면서도 완전히 역방향으로 작동시켰다. 그는 ‘개념’을 자본에서 벗어나는 탈출구로 삼는 대신, 보관비나 물류비 같은 물리적 제약이 없는 ‘금융 자산’으로 탈바꿈시켰다. 이 변이는 실물 경제를 벗어나 파생 상품이라는 기호로 자본을 증식하던 2000년대 금융 자본주의의 폭주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허스트가 직접 경매를 주도하며 극단적 수익을 올렸던 2008년의 그날이, 역설적으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며 실물 없는 투기 자본의 민낯이 폭로된 바로 그 시기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아이디어(개념) 자체가 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현대의 인지 자본주의 구조는 허스트의 ‘팩토리’ 시스템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작가는 ‘개념의 설계자’로서 부와 저작권을 독점하며, 수십 명의 조수는 점을 찍거나 알약을 배열하는 노동자로 소외된다. ‘개념’이 곧 계급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인다. 여기서 ‘작가’를 ‘CEO’로, ‘조수’를 ‘하청 노동자’로 바꿔 읽어도 문장은 어색하지 않다. 노동은 창작이기를 요구받고, 매대는 전시와 같이 연출된다. 상품의 가치는 쓸모가 아니라 감성과 스타일에서 나오고, 보수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역량과 창의성에 대한 보상이다.
경제는 스스로를 예술이라 부르고, 예술은 경제를 자처하는 오늘의 풍경이 허스트라는 징후가 미술 밖에서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돌파할 길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젠체하며 산만한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답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미술저널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호명되지 않는 이름을 호명하는 일, 외면받은 작업을 무대에 올리는 일, 흥행 대신 의미를 선택하는 일…. 공공 미술관에 주어진 책무가 그것이라면, 미술잡지의 몫도 다르지 않다. 앙케트를 통해 133인의 작가를 소환한 것도, 매달 작가와 작업을 발굴, 기록하는 것도 결국 같은 자리에 놓인다. Art가 다음 호에서, 또 그다음 호에서 이어가야 할 일이다.

◼︎ 『아트인컬처』(2026년 5월호) 에디토리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