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마다 시계를 갖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시간을 묻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드물게만 물으면서도 지금이 몇 시인지・오늘이 며칠인지 이따금씩 자주 묻곤 했던 때와 오늘은 다르다. “몇 시인가요?”는 누구에게나 물을 수 있는 물음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왔고, 그 대답은 물음하는 자라면 늘 필요한 것이면서도 정확한 답이었다. 사회라는 낱말이 함께 살아가는 여럿을 묶는 일종의 상상적 지평일 때, 시간을 묻는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동시에 있는지, 즉 함께 있는지 혹은 함께하는지를 그때그때 확인하는 징후적인 암구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는 시간을 묻지 않는 우리는 이제 함께하지 않거나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도착한 것일 테다. 반대로 스스로 “몇 시”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몇 시”인지 물음을 재촉하는 자는 지금 주어진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을 찾는 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그저 ‘여럿임’에 ‘함께’라는 부사를 붙이려 하거나, 그런 지평을 만드는 데 헌신하려 하는 이기도 할 것이다.
『몇 시인가요?』를 쓰는 존 버거(John Berger)는 또다시 그런 ‘이’이다. 누구는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가치를 뒤적이는 일이 진부하거나 비약일 뿐이라 전하지만, 소박함과 일상적임을 ’보편’으로 읽는 편에 그는 자리를 지켰다. 사랑, 희망, 꿈 심지어 노동 따위를 그는 아직껏 얘기했고 그러다 우리와 이별했다. 열거한 진부한 것들에 진심을 다하는 작가들은 너무 흔하고 그래서 그런 결론을 보는 것은 김빠지는 일이겠으나, 이 진부한 것들에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고 결심하는 것은 기쁘고 낯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도대체 왜 사랑이 답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그는 매번 시작했다. 그러니까 버거는 그의 대표작이 ‘다른 방식으로 보기’인 것처럼, 진부하지만 여지껏・앞으로도 필요한 것을 소중하게 드러낼 줄 알았다. 이 책의 주제가, 우리가 여전히 ‘우리’이기 위해 혹은 제각기 다른 여럿들이 우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다른’ 시간에 관한 것일 때, 이는 잠깐 진부했다가 오랫동안 낯설게 될 것이다. 이 ‘시간’이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까닭이다.
우리가 시간을 더이상 묻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더는 함께 존재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징후라면, 가장 절망적인 차원에서 그것의 원인은 사건의 부재일 것이라고 버거는 말한다. “사건이 시간을 창조한다. 사건이 없는 세계에는 시간이 없을 것이다. 다른 사건은 다른 시간을 창조한다.” 사건은 그것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순간을 가리킨다. 이때의 시간은 셈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떤 것 이후’라는 또 다른 역법을 통해 지칭된다. 그러나 과연 세계는 얼마큼 달라져 왔을까. 일어난 일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돌아갈 수 없기에 미래로 걷게 만들었던 사건은 드물기만 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시간을 갖기 위해서 사건을 짓는 편에 나서야 한다. 그러나 거창한 투쟁에 뛰어들라는 촉구는 아니다. 여기서도 그는 흔해빠진 것을 기쁘고 낯선 것으로서 답으로 제시할 것이다.
“기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내고 관리하는 현대”의 시간관에 도전하는 “‘단 하나의 공시적 행위’는 사랑의 행위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랑은 반복을 좋아”하고 “반복이 시간을 거역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분명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를 만들며 이전의 시간과 단절한다. 한사코 주어진 셈보다는 사건으로서 ‘어떤 것 이후’라는 다른 시간을 탐색한다. 셈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 이후’를 셀 뿐이다. 시간은 그것의 흐름으로 모든 것이 훼손될 것이라 말하지만, 이 다른 시간에서는 돌연 영원을 믿게 만든다. 그렇게 사랑은 지금은 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나서도록 주선한다. 이는 그리는 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림은 저마다 다른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그리는 자들’이 그리는 이유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알 수 없는 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에 동행하기 위해서이다.”
■ 『월간미술』 2020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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