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미학의 창시자 니콜라 부리오. 그는 작품과 관객의 상호 작용을 중심에 둔 큐레이토리얼을 실천해 왔다. 부리오가 감독을 맡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9. 7~12. 1)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30개국 73인(팀)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행사에서 그가 제시한 주제는 ‘판소리’. 악극 고유의 공공성과 정치성, 관객 참여적 성격을 동시대 미술언어로 재해석했다. 일상 공간을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기후 위기 등의 담론이 오가는 사회 정치적 공론장으로 확장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
판소리, 21세기 사운드스케이프
예술의 의미는 작품과 감상자의 상호 작용으로 형성된다. 이 말에 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해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이런 예시를 들어보자. 낯선 사람과의 대화, 사탕을 나눠주는 일, 저녁을 요리하고 함께 먹는 행위, 협동조합에서 탄산음료를 제조하는 과정,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놀이…. 이것들은 모두 예술일까?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관계미학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은 예술이 될 수 있다.
니콜라 부리오가 1996년 <Traffic>(보르도현대미술관)전을 통해 ‘관계미학’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기 전까지 예술은 주로 독립된 오브제로 간주됐다. 관객이 있든 없든 작품은 그 자체로 완전한 대상이다. 작품은 감상자에게 일방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감상자는 그것의 생산이나 의미 형성에 관여할 수 없었다. 작품이 놓인 맥락이나 관객과의 상호 작용은 예술과는 무관한 외부 요소에 불과했다. 부리오는 이러한 구도를 뒤집었다. 예술의 본질은 벽과 좌대에 놓인 오브제가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맺어지는 ‘관계’라는 것. 미술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가령 관계미학의 대표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개인전 <Phat Thai>(뉴욕 303갤러리 1992)에서 팟타이를 요리해 관객에게 대접했다. 전통적인 예술관이라면 여기서 작품은 티라바니자의 퍼포먼스 혹은 완성된 요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리오는 음식이 아니라 참석한 사람들 사이의 대화, 음식을 나누는 경험, 그곳에서 일어나는 상호 작용 등 커뮤니케이션 일체를 작품으로 포용했다. 지난해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열린 티라바니자 개인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가는 전시장에서 관객이 탁구를 치거나 티셔츠를 가져가도록 유도했다. 낯선 이와의 게임, 같은 옷을 입는 체험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가 작품으로 제시됐다.
관계미학을 추구하는 예술의 공통점은 이처럼 작품을 접한 감상자 사이에 일시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관계예술 안에서 참여자는 다른 참여자는 물론, 작가와도 동등하다. 여기선 빈부, 인종, 국적,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의 권력도 무의미하다. 부리오는 이러한 상황을 작은 유토피아, ‘마이크로유토피아(micro-utopia)’라고 불렀다. 거대한 유토피아를 단번에 실현하려는 이상에는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고, 이는 곧 전체주의로 이어진다. 그러나 일상에서 작은 규모, 짧은 순간일지라도 성숙한 관계와 경험이 연결된다면 종국에 유토피아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이 관계미학이 제시하는 목표다.
마이크로유토피아의 진지전
마이크로유토피아를 유토피아로 연결하는 것. 이는 부리오가 『포스트프로덕션』과 『래디컨트』, 『알터모던』 등 다수의 저작과 큐레이토리얼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는 동안 일관되게 유지해 온 개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유토피아는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부리오가 이번 전시의 주제로 제시한 ‘판소리’는 관계예술과 유사한 점이 적지 않다.1최근 부리오는 기존의 문화적 산물을 재해석하는 것(포스트프로덕션), 그리고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모더니티에 수용하는 것(래디컨트, 알터모던)에 방점을 찍어왔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관계미학과 최근 저작의 개념을 집대성한 기획으로 볼 수 있다. 공공 장소의 무대화, 추임새를 통한 관객 참여, 정치적 메시지의 우회적 전달까지. 부리오는 이러한 특성에 착안에 판소리를 전시의 형태로 확장했다.
특히 부리오는 판소리를 동시대적 소리 풍경 ‘사운드스케이프’로 재해석하면서 마이크로유토피아가 형성될 기반인 ‘공간’ 개념에 주목했다. “한국의 음악 장르인 판소리로 개인과 집단, 모두와 관계되어 있는 공간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기후 변화, 거주 위기 등 일련의 현안은 결국 공간의 문제다.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해 홍수, 사막화,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등의 문제는 공간의 관계를 지난 몇 년 동안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공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과 지각에 깊이 있는 발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마이크로유토피아는 작품이 존재하는 동안에만 유지된다. 그러나 장소가 작품화된다면, 그 공간은 끊임없이 마이크로유토피아를 재생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전까지의 관계미학이 특정한 현안에 대해 ‘반짝’ 게릴라전을 펼쳐왔다면,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어젠다에 장기적으로 대응하는 진지전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따라서 올해 행사는 미술관과 대안공간과 같은 전시 공간은 물론 카페, 공원, 상점 등 다양한 일상 장소를 무대로 진행될 예정이다. “공간적 관점에서 예술은 정신적, 사회적, 상징적인 자리이자, 시대와 문명을 초월하는 존재다. 예술공간은 현실을 재구성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곳이며, 인간의 삶과 시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는 곳이다.” 비예술 공간이 예술공간으로 변화했을 때 더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그 파급력이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대를 염두에 두었다.
비엔날레의 전시는 음운 현상을 모티프 삼은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먼저 ‘라르센 효과’는 인간의 활동으로 포화 상태가 된 지구를 두 개의 음향 방출기 또는 수신기가 가까울 때 발생하는 소음 현상에 빗댄다. 유한한 자원을 놓고 치열해진 인류의 생존 다툼을 되돌아본다. ‘다성 음악’은 다양성을 테마로 삼는다. 민족, 문화, 종교, 이념 등에 따라 달라지는 상반된 관점이 어떻게 공존하고 상생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태초의 소리’는 비인간, 즉 우주와 분자 세계를 탐구한다. 기술 발달로 즉각적인 이동과 소통이 가능해진 오늘날, ‘거리’의 의미를 고찰한다. 아직 베일에 싸인 광주비엔날레. 부리오가 꿈꾸는 관계미학의 이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 『아트인컬처』 2024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