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물이 얼마 없어 표류할 수 없는 당신을 위해, 저문 강에 나가 나의 죄를 퍼다 버린다. 비로소 당신의 머리를 잠글 수 있을 때까지 삽은 검어졌다 씻어지기를 반복하지만, 내 죄엔 게으름도 포함돼 있어 이 물이 어둔 까닭을 죄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시간에 따른 적 없이 시간을 만들고 마는 저 부지런한 천체 때문이 아니라, 이번에는 부디 나를 말미암아 당신을 쓸고 갈 내가 검어지기를 조근거리며 냇가에서 무릎을 접고 있다. 수면에 홀로 남겨져 헤매는 낙하산처럼 어딘가 엉키어 지체되지 않도록 나는 당신의 머리칼을 반듯하게 잘랐지. 놓쳐버린 자두가 경사를 구르는 것처럼 매끈하게 흐르도록 다른 곳은 거두어 버렸지. 사실 검은 것이 어둔 것은 검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색이 있기 때문이어서 나는 약속했던 것과 달리 검지 않은 것도 찔끔찔끔 더러 흥건하게 쏟아내고 있다. 하나는 폐에서 나온 것, 다른 하나는 그 밑에서, 나머지 하나는 더 밑에서. 알록달록한 색이 죄와 같이 검어지기를, 혹은 다채로움마저도 죄를 더 검게 만들기를. 순결한 백색도 늘 푸른 초록빛도 모두 당신이 잠긴 것을 가리도록 검은 것에 종사해서 다행이야. 이 말에 응답하려 대답을 만들려는 입속으로 저문 강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그의 몫까지 다시 말을 건넨다. 입속에 검은 잎. 맞아, 아주 아래서 시작해 그 위에서, 비로소 폐까지 차오르는 가물 없는 윤슬이 당신을 떠오르지 않도록 만들 거야. 고마워 과연 중력이야.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깊은 밤 좁은 길에서 마주친 이에게서도 당신의 모습을 보는 눈동자. 나는 이제 아무것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결코 바란 적 없이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다지도 저물고 저물어서 묻지 못하고 떠내려 보내고 있다. 당신이 바랐듯이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주고 싶었어요. 수목원의 투명한 천정으로, 안개 피는 슬레이트 지붕으로 몸이 아닌 사물이 부서질 그곳으로. 아까 난 왜 그렇게 말했을까, 은영. 밖에선 신음 소리, 아버지가 숨겨둔 약을 먹은 그. 종이엔 팔락이는 진동, 아비가 피운 향. 다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때문에 문을 찾을 수가 없을까. 나는 문밖으로 재빨리 나가려고 했지만 동생이 소리를 지른다. 여기 또 있어. 빨리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그러니 죄를 끝까지 고백하기를 삼키고 그저 책망과 원망만을 보챈다. 모두 다 말하면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일은 막아야 한다. 솔직히 전하면 뉘우치는 일도 있을 것 같아 가벼워질 기회는 놓쳐야 한다. 미움과 증오를 오로지 내 것으로만 하고 싶다.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싶지도 않거니와 당신에게 그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당신은 자신의 투명한 가슴이 무한정 떨리는 것을 견뎌야 하고, 그동안 나는 당신의 아가미가 떨림에도 감히 무엇도 뱉지 못하도록 먹을 곱게 갈아 차곡차곡 스며들게 할 것이다. 맹세하건대, 어떻게든 검게 되리. 우리는 함께 그 말에 입을 맞춘다. 돌아오는 밤. 나, 날마다 신기하다.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 것에 대하여 저 별에는 없는 이 별의 일이 이미 성큼성큼 대문을 향해 있다는 것에 대하여. 보선. 나, 그리움 없이도 밤을 꼬박 새울 줄 알고 사랑 없이도 미련을 지닐 수 있다. 나는 이미 죄 많은 사람이고 내가 어울리거나 부끄럽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나이고 보면.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죽음. 나는 냉장고에 머리를 넣고 문을 닫은 적이 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현관을 핑계 대고 짝이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나가기도 했다. 이런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진정한 비평의 개념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먹을 것이 없는 이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니 이는 마감이라 이듬이 가로되 내게 죄책을 달라 용서가 원수처럼 나를 쫓나이다 네잎이 묻되 무슨 형을 주리이까 하니 그가 눈을 붙이기를 주문하니라 이에 이듬이 밤을 건너매 꽃이 지는 시간에 당도하더라 또한 네잎이 이르되 안식이 너를 멸시하고 가뭄이 네 입에 물리나이다 이는 이듬의 노래라 나의 업들아 여행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적막과 구속으로 찬양하며 즐거이 외칠지어다. 신의 곤한 호흡 속 이 거대한 정적. 나에게 맡기신 창세기. 그래서 고백할 죄란 무엇인가요. 윌리엄, 할 말은 이것뿐이에요. 상자 속에 있던 자두를 내가 먹었어요. 그것은 아마도 당신이 아침 식사를 위해 아껴두고 있었던 것. 나를 용서해요. 자두는 맛있었어요. 무척 달콤하고. 무척 시원했어요.
▲ 차지량 ⟨Surfing⟩에 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