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저앤워스 홍콩, 엔젤 오테로 개인전
평론가 르네 웰렉(René Wellek)은 비평의 관점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먼저 내재적 관점은 작품 내부 요소를 중점으로 콘텍스트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묘사, 서사, 기법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편 외재적 관점은 작가의 삶과 작품에 반영된 사회 구조, 감상자가 받는 영향을 고려한다. 이 셋은 각각 표현론, 반영론, 효용론으로 불린다. 관점이 더해질 때마다 작품이 지닌 의미는 입체적이게 된다. 다시 말해서 작품을 읽는 해석의 차원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가 깊이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엔젤 오테로(Angel Otero)는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젊은 화가다. 그가 하우저앤워스 홍콩에서 개인전 《The Sea Remembers》(6. 1~7. 29)를 열었다. 고향 바다의 추억을 초현실적 장면으로 변주한 신작 10점을 공개했다. 그러나 이는 작가에 대한 표피적인 해석에 불과하다. 엔젤 오테로의 그림은 네 개 차원을 관통한다. 그 깊이를 살피지 않고서야 작가의 그림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첫 번째, 그는 추상표현주의를 동시대 언어로 번안한다. 초기에 오테로는 아실 고르키,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등의 화풍을 재현한 후 해체, 조합하는 방식으로 추상화를 그렸다. 최근에는 이들의 제스처를 마술적 사실주의의 몽환적 세계로 시각화하는 데 사용한다. 두 번째, 작가는 시카고예술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푸에르토리코에서 나고 자랐다. 고향에서의 추억은 모든 작품의 출발점이다. 푸에르토리코는 400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화면 곳곳에 스페인풍의 패턴과 장식이 자리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지막 차원은 그림을 보는 관객의 몫이다. 오테로의 화면엔 어느 곳에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사물과 장소가 등장한다. 그로부터 무엇을 연상할지는 감상자에게 달렸다. 제시한 관점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에 따라 오테로의 그림은 전혀 다른 작품이 된다. 이 글은 이러한 네 개의 차원을 따라 작가의 예술세계를 살핀다.
해체와 구축, 회화의 동시대성
먼저 오테로 회화의 내적 요소에 주목해 보자. 작가의 방법론을 꿰뚫는 키워드는 ‘해체와 구축’이다. 미술사 거장의 화풍을 분해하고 재결합하는 방식은 그의 추상화와 구상화 양쪽에 모두 적용된다. 작가는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를 회화의 동시대성으로 설명한다. “유구한 예술의 역사에서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시대성이란 미술사와의 결별이 아니라 과거의 작업을 갱신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에 오테로가 주목한 사조는 추상표현주의였다. 추상화의 재현 대상은 불명확하거나 비물질적이기 때문에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다. 시간이 지나도 새로운 독해가 가능하다는 것. 이 점이 작가를 매료시켰다.
오테로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지만, 그의 이름을 미술씬에 처음 각인시킨 것은 부조 형식의 추상화, 이른바 ‘유채 스킨’ 작업이었다. 대학원에서 구상한 이 작업은 유리판에 추상표현주의 화풍을 모사한 다음, 나이프로 떼어낸 절편의 조합으로 완성된다. 10~12겹에 이르는 레이어를 쌓아 마치 피부처럼 두꺼운 재질감을 드러낸다. 피카소를 비롯해 아실 고르키, 윌렘 드 쿠닝, 잭슨 폴록 등 미술사 거장의 작업을 집대성해 가장 급진적인 추상성에 접근하고자 했다. 오테로는 이 작업으로 레오노르애넌버그장학금을 받았고, 졸업과 동시에 2009년 시카고미술관에서 열린 《Constellations》에 초대되면서, 이머징 아티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한편 2019년부터 오테로의 작업에는 구상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번 《The Sea Remembers》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유채 스킨이 모더니즘의 계보를 잇는 기획이었다면, 풍경화에선 추상화 형식으로 구상화에 접근하는 실험성을 강조했다. 이때 그가 추상표현주의에서 차용한 것은 제스처. 우연적이거나 비정형의 도상을 모방하는 대신 붓의 필치나 행위의 궤적을 재현했다. 그리고 이런 자유분방한 스트로크가 향한 주제는 마술적 리얼리즘이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현실을 배경으로 초현실적 요소를 가미한 예술사조다. 작가는 꽃, 음식, 식탁, 피아노 등이 놓인 일상 공간의 배경을 심해로 바꿔 몽환적인 장면을 펼쳤다. “그림의 내용과 형식의 균형을 맞추고 싶었기 때문에” 강렬한 제스처에 희석되지 않는 환상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표현론적 관점에서 오테로 회화를 톺아본다. 이는 작가가 푸에르토리코 출신이라는 점과 깊게 관계된다. 그가 화가의 꿈을 키웠을 때만 해도 푸에르토리코의 아트씬은 동시대예술보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그는 그런 경향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대학을 중퇴해 4년 동안 보험 설계사로 일했다. 이후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안타까워했던 교수의 추천을 받아 시카고예술대에 입학했지만, 트렌드를 따라가긴 어려웠다. 뒤늦게 다시 시작한 예술연구는 오테로가 미술사와 동시대성에 더욱 천착하는 계기가 됐다. 오테로 회화에 레퍼런스가 중요한 방법론으로 등장한 까닭엔 이러한 배경이 있다.
앞서 말했듯 작품 내적으로 볼 때 그의 풍경화에 자주 등장하는 바다는 일상 풍경에 가미된 환상적 요소다. 그러나 오테로의 배경과 연결하면 그 바다가 작가의 고향이 있는 카리브해라는 것이 드러난다. 화면에 넘실대는 파도는 그를 노스탤지어로 이끄는 매개물이다. 가령 이번 전시에 출품된 〈Breakwater〉(2023)는 의자를 덮쳐오는 거대한 해일을 그린 그림이다. 장애가 있던 증조할머니를 위해 걸상을 설치한 욕조를 모티프로 삼았다. 반면 〈The Sea Remembers〉(2023)에 놓인 피아노는 작가의 뉴욕 스튜디오에서 가져왔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추억을, 작가는 상상으로나마 오늘의 위치에 소환했다.
마법 같은 순간으로…
반영론적 관점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의미를 찾는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반사된 상엔 과거와 현재의 삶이 함께 녹아있다. 푸에르토리코는 본래 원주민 타이노(Tino)가 살던 지역이다. 1493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됐고 40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이 길었던 피식민 기간의 흔적은 여전히 일상에 남아있다. 〈The Sea Remembers〉와 추상화 〈Sea Fans〉(2023), 〈Circus〉(2023)엔 꽃, 마름모, 물결 등 반복되는 패턴이 등장한다. 이 문양은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타일 형식으로 식민지의 잔재를 은유한다. 이러한 역사를 염두에 놓았을 때 화면을 덮치는 해일과, 해체돼 뿔뿔이 흩어진 도형은 푸에르토리코의 아픈 역사를 정화하는 미장센이다.
한편 바다를 읽는 다른 방식도 존재한다. 2017년 가을 푸에르토리코에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상륙했다. 90년 만에 아메리카 대륙을 강타한 태풍은 지역 곳곳을 수몰시켰고, 그 결과 4,600여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이 비극이 치유되기도 전에 코로나19가 번져 인구의 5%가 전염병으로 숨졌다. 〈Drunken Sailors〉(2023)엔 격랑과 함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흙먼지가 휘몰아친다. 나아가 풍경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자리한 것은 사물뿐이다. 재난의 현장과 텅 빈 공간. 이는 오테로의 고향에 닥친 재난과 이후의 상흔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효용론적 관점은 감상자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바라본다. 이때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것은 감상자의 가치관이다. 물론 누구도 관객의 해석을 예측하진 못한다. 대신 오테로가 만들어놓은 이입의 통로에 대해서라면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에 자유롭게 감정을 투영하고, 상상력을 펼칠 여지를 남겨두었다. 오테로가 마술적 리얼리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가 1967년 발표한 소설 『백 년의 고독』을 읽으면서다. 허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는 고향과 증조할머니, 푸에르토리코의 역사, 나아가 미술사를 떠올렸다.
오테로는 이러한 경험이 자신의 작품에서도 이어지길 바랐다. 수많은 소재 중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사물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유다. 어떤 배경을 지닌 사람이든 화면을 보고 자신만의 추억을 연상하도록 평범한 대상을 그렸다. 거기에 작가는 한 가지 바람을 보탠다. “마법 같은 순간으로 변화한 나의 과거처럼, 누군가의 기억도 그렇게 아름다움이 더해져 떠올랐으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노스탤지어의 바다는 늘 현실보다 더 푸르고 찬란하다.
『아트인컬처』 2023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