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연인_허단비: 영혼의 발돋움

 

허단비, ⟨죽음 새로운 시작⟩, 130.3×162.2, oil on canva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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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절망에 비해서 아름답지 않다. 차라리 나는, 연락한다는 말보다 다시 볼 일 없을 것이라는 말을 더 기대했었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보다 거절이 이미 도착했으면 했었고, 그러다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북돋움 대신 남은 것은 불행뿐이라는 선고를 기다렸을 처지였다. 그저 버티지 않고 기대기만 하면, 중력이 이끄는 대로 편히 침잠할 수 있는 그런 평화와 안온이 거기 절망에 있었다. 그것을 마다했던 것은 그것이 아름답지 않은 까닭은 아니었다. 도리어 아름답지 않은 것은 희망이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증오스러운 것이 희망이었다. 그러나 패배의 순간은 대부분 추함을 소복이 담고 말기에, 그것은 그 추함으로써 희망을 반드시 떠올리게 했다. 희망이 거기에 있어 기꺼이 포기하지 못했고, 울먹이며 처분을 기다릴 기회를 약탈당하고 말았다. 적은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청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못 하고 있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말이 내겐 내내 남는다. 평화와 안온이 그득한 아름다운 절망을 쥘 자격이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외따로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로, 강박적으로 희망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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