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먼지_신용진의 회화

신용진 개인전 《저편의 양》 2022, 10. 14~30 공간운솔

신용진은 먼지로 감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보이지 않던 입자, 폐기된 감각, 잊힌 신체의 흔적을 따라 미술을 ‘재배치의 정치’로 전환해 왔다. 여기서 ‘먼지’는 은유이자 실재다. 은유의 관점에서 먼지는 체계에서 추방되고, 터와 이름을 잃어가는 존재를 대변한다. 논문이 되지 못한 텍스트, 작업실 구석에 쓸려나간 안료, 폐기물로 남겨진 장갑….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먼지는 예술로 환기될 두 번째 생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한편 실재의 관점에서 먼지는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이루고 있는 존재 그 자체의 형식이다. 모든 것이 먼지로 사그라지고, 그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세계에서, 먼지는 소멸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멸을 지시한다. 존재는 먼지로 흩어지지만 먼지 그 이상으로 마멸되지 않고 끝내 다른 무엇이 된다. 따라서 그는 개인전 《공기색 입자》(2024, 12. 10~29 10의n승)를 구현하기 전부터 먼지를 쓰고 있었고, 먼지는 이번에 제 팔자만큼 우주가 되었다. 사그라든 것과 무엇으로든 출발해야 하는 것 사이에 먼지의 진동은 있다. 그리고 의미 없는 것과 그럼에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 간에 삶이 흔들린다. 둘은 다르지 않다. 폐허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무의미에 패배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나. 기어이 무의미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먼지가 되어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을 때까지 바닥을 전락한 후에야 비로소 의미는 다시 움트기 시작한다. 의미란 싸움 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무의미에서 발버둥 치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신용진의 예술은 꺼진 것처럼 보이는 사투에 불을 붙여 다시 생을 불어넣는 일이다. 어차피 사라질 일, 그러나 먼지는 그친 적 없는 일. 방랑과 유랑을 쉴 수 없고, 생을 찌꺼기까지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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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 문 크리스털 파워_김지우: 히로인의 계보학

〈소녀의 계보학 2〉 순지에 채색 60×30cm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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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금지된 환상을 다시 한번 ‘지금 여기’에 불러낸다. 잊히거나 놓쳐버린, 잠들었던 것들이 실재의 틈을 비집고 돌아온다. 투명한 현실은 이 순간 가장 흐릿하다. 꿈이, 마법이, 운명이 눈을 떴기 때문이다. 미술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단절의 선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삶 어딘가에서 늘 무엇이 사라졌는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린다. 미술이 하는 일은 일상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미술의 형안으로만 겨우 보이는 그 분실을, 도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었거나, 있거나, 있게 될 미지未知의 발견.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게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미생未生의 발견. 두 발견으로 삶은 불편해진다. 유용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그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상실했다는 예감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미술에서 ‘사건’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김지우의 회화는 더 지독해서, 그 잃어버린 것들이 여전히 화면이 아닌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돌이킬 수 없다면 기꺼이 체념할 텐데 그가 남겨놓은 희망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사라진 것을 되돌리는 것은 미술이 아니다. 그것을 다시 볼 수 있는 눈. 작가는 그 시선의 가능성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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