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 원더랜드_박서영: 바흐티노프 마스크

박서영 기획전 《바흐티노프 마스크》(11. 7~26 부연, 옹노) 전시 포스터(디자인: 정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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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골목길의 조각난 보도블록처럼 매일 발견되는 사물의 시체, 터진 내장 위 그려진 어김없는 발자국. 우리는 인류의 진면목을 본다. 이 인류는 사물을 두려워한다. 인류를 대신해 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하여, 또 대신 병을 앓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마침내 대신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하여…. 인류는 영원히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자연스럽게’ 부인하려 하지만, 사물의 논리에서 고지서는 어떻게서든 도착한다는 걸 그들은 ‘애써’ 알고 있다. 인류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사물이 인간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대체’하고자 창궐해 왔다는 것이다. 외부에 대한 무상無常과 내적 자유, 올림피아의 신이 누렸던 것과 같은 이상理想의 개념이 요구하는 것은, 이 순간 인류보다 사물에게 가장 충실하다. 인간이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류의 멸종을 막아야 할 간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그 답은 세계가 지르는 비명에 저 값의 유예만큼 가려질 것이다. 《바흐티노프 마스크》. 전시는 그렇게 그쪽으로 걷는 것 외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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