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시계를 갖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시간을 묻지 않는다. 여기가 어디인지는 드물게만 물으면서도 지금이 몇 시인지・오늘이 며칠인지 이따금씩 자주 묻곤 했던 때와 오늘은 다르다. “몇 시인가요?”는 누구에게나 물을 수 있는 물음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대답이 나왔고, 그 대답은 물음하는 자라면 늘 필요한 것이면서도 정확한 답이었다. 사회라는 낱말이 함께 살아가는 여럿을 묶는 일종의 상상적 지평일 때, 시간을 묻는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동시에 있는지, 즉 함께 있는지 혹은 함께하는지를 그때그때 확인하는 징후적인 암구호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는 시간을 묻지 않는 우리는 이제 함께하지 않거나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에 도착한 것일 테다. 반대로 스스로 “몇 시”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몇 시”인지 물음을 재촉하는 자는 지금 주어진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을 찾는 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써 그저 ‘여럿임’에 ‘함께’라는 부사를 붙이려 하거나, 그런 지평을 만드는 데 헌신하려 하는 이기도 할 것이다. / 조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