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싫다고 하면 될 일_BGA Compliation 109.

표지 작품은 고등어 <몸부림 120> 종이에 연필, 140×260, 2017

차라리 내가 싫다고 했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기다리진 않을 테지. 그렇다면 차가운 말투보다도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 주저에서 따뜻함을 길어 올리고, 별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남아있는 조금의 배려를 발견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이 절망 한가운데서도 희망은 긴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송곳처럼 기어코 발생하고 말아 나의 이별을 또 한 번 미룬다. 남들은 희망이 아름다운 낱말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포기하고 중력이 이끄는 대로 피의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는다면 편하련만, 어째서 미약한 희망에도 반짝이는 눈망울. 그럴 때마다 잠깐 가엾다가도 오랫동안 사랑스러울 인간. 여기에 희망의 악취를 적는다. 그리고 절망의 아름다움을 옮긴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망에 속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1/10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Ⅰ」_이수진, ⟨Signal⟩
1/11 「미워도 다시 한 번」_고등어, ⟨몸부림 120⟩
1/12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_장성은, ⟨리듬 D⟩
1/13 「나는 더러워서 무엇도 피할 필요가 없다」_정희승, ⟨무제 #04_기억은 앞면과 뒷면을 가지고 있다⟩
1/14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Ⅱ」_이현수, ⟨Untitle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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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인가요_BGA Compliation 41.

표지 작품은 이해민선 <봉우리> 종이 위에 유채, 2017

미술은 모든 요소들이 동시에 보이도록 그려진다. 그림을 보는 이가 각 부분을 살피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림 전체의 동시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술은 보통, 시간예술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되었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 중에선 평면에 시간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가 존재한다. 이번 컴필레이션은 그러한 시도를 담는다. 그림의 개체를 다르게 정의하는 것, 개체 윤곽이 불투명해지거나, 왜곡되는 것은 모두 존재가 생성이 되는 것으로써 시간을 갖는다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째서 문제일까. 고정되지 않은 시간의 흐름은 그것이 어디서부터(과거) 지금에 도착해있고 또 어디론가(미래)로 흘러갈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앞당기는 것을 통해서 현재를 다시 극복하려는 힘을 지닌 주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현재는 과거에 대한 승리의 상징이자, 다시 미래를 위해 변화시킬 수 있는 대상이 된다. / 조재연

9/14 「원은 회전하는 점」_박영준, ⟨곰곰⟩
9/15 「모든 것은 흘러내린다 1」_이해민선, ⟨봉우리⟩
9/16 「모든 것은 흘러내린다 2」_정희승, ⟨큰 폭포⟩
9/17 「반복이 아니라 번복」_박영준, ⟨패턴 16⟩
9/18 「하지만 몇 시인가요」_고현정,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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