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싫다고 하면 될 일_BGA Compliation 109.

표지 작품은 고등어 <몸부림 120> 종이에 연필, 140×260, 2017

차라리 내가 싫다고 했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기다리진 않을 테지. 그렇다면 차가운 말투보다도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 주저에서 따뜻함을 길어 올리고, 별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남아있는 조금의 배려를 발견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이 절망 한가운데서도 희망은 긴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송곳처럼 기어코 발생하고 말아 나의 이별을 또 한 번 미룬다. 남들은 희망이 아름다운 낱말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포기하고 중력이 이끄는 대로 피의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는다면 편하련만, 어째서 미약한 희망에도 반짝이는 눈망울. 그럴 때마다 잠깐 가엾다가도 오랫동안 사랑스러울 인간. 여기에 희망의 악취를 적는다. 그리고 절망의 아름다움을 옮긴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망에 속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1/10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Ⅰ」_이수진, ⟨Signal⟩
1/11 「미워도 다시 한 번」_고등어, ⟨몸부림 120⟩
1/12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_장성은, ⟨리듬 D⟩
1/13 「나는 더러워서 무엇도 피할 필요가 없다」_정희승, ⟨무제 #04_기억은 앞면과 뒷면을 가지고 있다⟩
1/14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Ⅱ」_이현수, ⟨Untitled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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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_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SeMA 창고, 2021. 7. 8.~8. 1, 전시 포스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클 타이슨, 1987년 8월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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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관한 모든 지혜를 얻었기에, 쌓아 올린 그 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결별을 짓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창피한 것을 동시에 나눈 우리는 이다음에 무엇을 남기게 될지 이제 알고 있다. 서로의 가장 헌신적인 것과 가장 추한 것을 교환해온 지금. 그리고 나는 네게 마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대로 너는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던 지금. 포말은 모래 위에 새겼던 모든 낱말을 이치가 예정했던 대로 지울 것이다. 잡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데 더 큰마음과 지혜가 필요하다지. 실험, 경험, 증명, 검토 그리고 결론까지, 시작점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현명함은 엇갈릴 이 날을 위해 이다지도 적재되어왔을까. 그러나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기 전, 사랑의 시작점에서 영원을 기약했던 순간과 새 삶의 출발점에서 혁명의 꿈에 젖었던 순간이다. 원대하고 급진적인 사유는 오직 성숙이 부재한 순간에 존재하고 맒을 천천히 깨닫고 있다. 결실 맺는 사랑과 도래할 혁명은 미래에 있다지만, 어찌하여 이룩과 번성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짐을 만드는 것일까. 또 출발하지도 않은 채로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것일까. 시간을 거듭할 때 생기는 지혜가 무언갈 내려놓게 만든다면 차라리 걸음을 어리석음에 향하도록 돌린다. 거칠고,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이며, 비발전된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네게 무엇을 ‘고백’하려 한다.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_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