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 비약의 건조물_이여운의 회화

이여운 ⟨스튜디오 가는 길⟩ 캔버스에 수묵 73×97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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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로 난 흰 이빨 자욱,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밤하늘의 검은 너울, 유리의 거미줄. 달빛인지 햇빛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그저 여울지 못한 창백한 조명 아래, 여윈 너의 팔과 다리를 비유할 낱말을 발음해 본다. 분명 획 하나를 제외한 모든 면에 얽힌 거대한 무게를 생략해 버린 당신은, 이 순간 가장 엷고 얇다. 나는 횡행한 없는 것들을 모아 부르고 싶어졌다가, 쉽게 ‘폐허’를 모색하는 감동에는 어떤 상투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풍경의 부재는 새삼스럽게 죽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으로 밀려가는 것일까. ‘부재’와 ‘폐허’. 나는 이런 감정과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를 조금 노려본다.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너에 대해서 이 순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폐허라 말하지 않겠다. 하늘을 그리지 않아도 형상만으로 빛이 있음을 알고, 다음 장면을 볼 수 없으면서도 그림자로 시간이 줄어드는 줄 알며, 길을 그리지 않아도 문이 존재하므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맙소사 나는 무엇이든 이 장소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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