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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는 한때 우리 것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금지된 환상을 다시 한번 ‘지금 여기’에 불러낸다. 잊히거나 놓쳐버린, 잠들었던 것들이 실재의 틈을 비집고 돌아온다. 투명한 현실은 이 순간 가장 흐릿하다. 꿈이, 마법이, 운명이 눈을 떴기 때문이다. 미술은 삶을 가로지르는 미세한 단절의 선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삶 어딘가에서 늘 무엇이 사라졌는지 모르는 채로 잃어버린다. 미술이 하는 일은 일상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고 미술의 형안으로만 겨우 보이는 그 분실을, 도로 목격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 있었거나, 있거나, 있게 될 미지未知의 발견. 그러나 그들은 이제 내게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미생未生의 발견. 두 발견으로 삶은 불편해진다. 유용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그것이 없다는 사실이,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일부)를 상실했다는 예감이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미술에서 ‘사건’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데 김지우의 회화는 더 지독해서, 그 잃어버린 것들이 여전히 화면이 아닌 우리에게 존재한다고 속삭인다. 돌이킬 수 없다면 기꺼이 체념할 텐데 그가 남겨놓은 희망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사라진 것을 되돌리는 것은 미술이 아니다. 그것을 다시 볼 수 있는 눈. 작가는 그 시선의 가능성을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