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은 뾰족한 수가 없다_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앨범표지, 미러볼뮤직/시서음률,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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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몽상을 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훼방을 놓았던 그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혹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렇게 했거나 하지 않았더라면. 이쪽을 선택하는 대신에 저쪽을 선택했더라면. 그리고 그 시점에서 물러났더라면. ‘만약’의 층위는 나를 꼴사납도록 만드는 노도치는 이 생에 애달피 움켜쥘 수 있는 닻이 되어준다. 그러나 한사코 나는 결과 앞으로 흘러와 그것과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깊은 고민이 만든 일이었든, 얕은 생각이 주선한 일이었든 돌이켜보면 어떤 순간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는 일은 드물었다. 단 하나의 선택이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은 ‘사실’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냥’, ‘원래’ 일어난다. 아무리 추하고 악취가 풍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곱씹으며 음미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찌뿌둥함과 질척함을 느끼는 이 몸에서 ‘연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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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봐, 빈 밤에 기억이 와있어_단식광대: 새벽달

Caspar david friedrich, ⟨Monk by the sea⟩,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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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본적(本籍)은 아마도 시(詩)겠지만, 노래가 기어코 시에게 결별을 선언하면서 택한 그것은, 그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시는 읽는 이의 시각과 정신을 온전히 소유해 제 것으로 만든 후에야 그 의미에 어렵사리 도달하게 만들지만, 노래는 듣는 이의 청각과 정신을 제압하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가 무엇을 바라보든 무엇을 함께 듣든 무엇을 행위하든 상관없이,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노래의 몫을 다한다. 다시 말해서, 노래는 배경 음악의 쓰임새처럼 소리를 전달하면서도 다른 소리를 빼앗지 않고, 다른 감각과 행위·정신에 공유와 연대에만 종사하는 ‘사적 소유’의 해방을 앞서 담지한다. 그리고 이점은 시와의 결별 이후의 노래가 겪은 성숙이면서도 또한 거의 모든 예술과의 차별됨이라는 점에서 노래가 가진 본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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