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오의 끝에서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는 자격 미달의 운동권이었다. 비극이 아닌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 나는 늘 비켜서 있었다. 광장을 향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더뎠고 현장에서는 충돌이 두려워 앞장서지 못했다. 정당에 적을 둔지 오래였지만 누군가 나의 허물을 모르고 덜컥 동지라 부르게 될까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투사처럼 나서는 이를 볼 때면 열등감에 괴로웠다. 나는 무얼 바라 비겁을 삼키며, 이다지도 작은 것일까. 자멸감이 무릎에 닿았을 때 즘 서동진의 글을 읽었다.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식이 노동 운동은 아니다. 유령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와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이는, 환상을 만드는 힘에 저항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 말에 목이 메였다. 나의 처신을 변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제가 해결을 바라며 잊지 않기 위한 기록으로서 비망록을 남길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나약한 지금의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가담할 실천이 존재한다는 기쁨을, 그의 글로부터 발견했다. 그렇게 그의 글을 베끼고, 발제문을 쓰듯 연습하고, 각주에 그의 이름을 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지껏 남루를 벗어나지 못한 오늘, 서동진의 첫 기획전 <안전가옥에서의 밤>(7. 16~28 빌라해밀톤) 소식을 듣고 나의 처음이 떠올랐다. 또다시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는 내가 변혁의 자리에서 가장 앞서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이 있어, 선두가 아니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겠다는 결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말했듯 행복을 추종하지 않는 삶, 그 생을 찌꺼기까지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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