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호상근은 일상의 관성을 그린다. 일상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골치 아픈 질문을 작가는 존재에 대한 찬가로 돌파한다. 그의 회화는 늘 거리 어딘가에 있다. 여기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둘기가 도로를 거닌다, 카트가 쓰러진다, 눈이 날린다, 타올이 마른다, 당근이 썩어간다…, 그렇게 일상은 반복된다. 작품은 반복의 발견이고, 그 발견은 또 다른 발견을 더해 나가면서 ‘이러한 존재 형식은 어떤가’라는 제안이 된다. 우리는 일상의 어느 한구석을 노려볼 때 특별함과 만나고, 오늘을 어딘가의 비극과 비교한다면 하루의 소중함을 더욱 깨달을 수 있다. 신앙으로 비롯된다면 아름다움은 끝이 없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호상근의 회화가 당연했던 적은 없다. ‘일상에는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작가가 준비한 대답은 이것뿐이다. 질문의 층위를 삶이 아니라 존재로 바꾸면, 존재가 긍정되는 데에는 의미는 필요치 않다. 존재하니까, 계속 존재해야 한다.
[태그:] 실존
너의 나_『Flou』 vol.1
1
잊어 놓았겠지. 너는 무인도에서 출발한 코르크 병처럼 눈을 감고 하루 종일 작은 밀썰물의 애무를 느낀다. 강이 바다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바다는 늘 자신을 향하여 흐르기에, 너는 출발하지 않고서 도달하고, 도착하지 않은 채 떠난다. 부서진 차, 손에 묻은 피, 젖은 신발 그리고 오발 혹은 불발을 예정한 권총 한 자루…. 이다지도 무겁고 끈적이는 운명을 두고 너는 지난 일과 결별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늘 한가운데서 비롯해야만 한다. 한가운데. 뜨고 지는 영원한 자맥질을 통해 네가 알게 된 것은 바다의 너비가 아니라 고락高落이다. 기어이 너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냥 묻어버리겠다는 것인지 하는 마음이 번갈아 밀려왔다 밀려갈 때, 결국 너는 생이란 어딘가 닿는 것이 아니라 체념과 기대를 반복하며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마음 중 어느 하나에 의지해 살 수는 없다. 멀어져서도 가라앉아도 안 되기에 너는 그저 두 마음의 오고 감을 도리 없이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