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와 인간은 뾰족한 수가 없다_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앨범표지, 미러볼뮤직/시서음률, 2019

1
몇 번이나 몽상을 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런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 연락을 받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훼방을 놓았던 그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혹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이렇게 했거나 하지 않았더라면. 이쪽을 선택하는 대신에 저쪽을 선택했더라면. 그리고 그 시점에서 물러났더라면. ‘만약’의 층위는 나를 꼴사납도록 만드는 노도치는 이 생에 애달피 움켜쥘 수 있는 닻이 되어준다. 그러나 한사코 나는 결과 앞으로 흘러와 그것과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깊은 고민이 만든 일이었든, 얕은 생각이 주선한 일이었든 돌이켜보면 어떤 순간에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는 일은 드물었다. 단 하나의 선택이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은 ‘사실’ 없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냥’, ‘원래’ 일어난다. 아무리 추하고 악취가 풍긴다 하더라도 나는 그것을 곱씹으며 음미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찌뿌둥함과 질척함을 느끼는 이 몸에서 ‘연속’해야 한다.

생쥐와 인간은 뾰족한 수가 없다_유태영: 그날, 문을 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