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포머티브 사진, 공명의 프레임_천경우 작가론

◼︎ 『아트인컬처』 2025년 4월호

〈Resonance 3〉 크로모제닉 프린트 120x90cm 2023(왼쪽),〈Resonance 4〉 크로모제닉 프린트 150x117cm 2023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렌즈는 타인을 응시하는 대신, 그와 함께 머문 감각을 기록한다. 이미지는 한순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 낯을 마주한 침묵과 호흡, 감정의 진동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나아가 보는 일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청’과 닮아있다. 천경우의 사진이 그렇다. 그의 사진은 이미지의 형상보다 시간의 흐름을, 재현보다 감응의 자취를 담아낸다. 작가는 흔히 사진에서 요구되는 명료한 형상을 의도적으로 감춘다. 그러나 장노출이 시현하는 육체의 미세한 떨림, 네거티브로 포착되는 어둠 속 잔영, 밀착된 피사체 사이에 형성되는 내밀한 관계… 일상의 육안으로 미처 감지하지 못한 존재들이 사진이라는 경청 아래에서 비로소 현현한다. 그리고 이 경청을 논하려면 천경우가 보여주는 감춤과 드러냄의 섬세한 균형에 대해 말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청이 목소리를 잃은 이들, 즉 소외된 존재를 향해왔다는 점이다. 때로 가장 고요한 사진이 가장 뜨거운 목소리를 품는다. 천경우의 사진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바로 그 일을, 그것도 아주 철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펼쳐왔다. 작가는 최근 팔마 카살소예릭(Casalsolleric)과 롯데갤러리 잠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대표작과 함께 최근에 발표한 전시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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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이여, 다시 한 번_황예지의 사진

황예지 〈마리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40×60 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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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서정’이 있다. 서정은 이제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상’이라는 터전, ‘내면’이라는 수단, ‘자연’이라는 이상을 꼭짓점 삼은 삼각형에 안착한 서정은, 더 이상 스타일이기보다 메커니즘으로서 소진된다. 주변의 사소한 존재를 돌아보고 보듬는, 그로써 진부한 하루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감동을 낚아 올려 깨달음에 도달하는 서정의 논리는 미술 안에서 형식으로서 반복되거나, 혹은 미술 그 자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다음에도 삶은 도무지 특별해지지 않는다. 서정 위에서 깨달음이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미적으로 아름답기는 쉬워도 위협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삶의 진실은 그러니까 진리는 늘 위협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아는 진리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삶을 새로이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놔두고, 미처 자아가 눈치채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될 뿐이라며 진실로부터 물러서는 것. 그러니까 세계엔 잘못이 없고 그저 자아의 깨달음이 문제였다는 헌신적이다 못해 숭고한 반성의 점철. 이때 서정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향유하는 것으로써 부조리와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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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의 정치학_노순택: 검은 깃털

◼︎ 『아트인컬처』 2022년 7월호

노순택 ⟨검은 깃털 #CHL0701⟩ 아카이벌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108×162cm 2017

노순택은 분단 체제가 야기하는 ‘파열음’을 사진으로 포착한다. 그가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검은 깃털》(6. 22~7. 17)을 개최했다. 역광을 이용한 사진 19점을 선보였다. 5년 만에 신작 발표지만, 작가는 그동안 사회, 정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뜨거운 현장에서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규탄 텐트 농성,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복직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 건립 운동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 작업 역시 이러한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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