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의 나날_호상근의 회화

〈화단에 식빵 두장〉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420×297m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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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근은 일상의 관성을 그린다. 일상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골치 아픈 질문을 작가는 존재에 대한 찬가로 돌파한다. 그의 회화는 늘 거리 어딘가에 있다. 여기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둘기가 도로를 거닌다, 카트가 쓰러진다, 눈이 날린다, 타올이 마른다, 당근이 썩어간다…, 그렇게 일상은 반복된다. 작품은 반복의 발견이고, 그 발견은 또 다른 발견을 더해 나가면서 ‘이러한 존재 형식은 어떤가’라는 제안이 된다. 우리는 일상의 어느 한구석을 노려볼 때 특별함과 만나고, 오늘을 어딘가의 비극과 비교한다면 하루의 소중함을 더욱 깨달을 수 있다. 신앙으로 비롯된다면 아름다움은 끝이 없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호상근의 회화가 당연했던 적은 없다. ‘일상에는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작가가 준비한 대답은 이것뿐이다. 질문의 층위를 삶이 아니라 존재로 바꾸면, 존재가 긍정되는 데에는 의미는 필요치 않다. 존재하니까, 계속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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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정거장_2023 대구권 미술대 연합전 PLATFORM

2023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 《PLATFORM》(기획: 박천)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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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작가와 그들을 엮은 18개 주제전. 대규모 전시를 정거장(platform)에 빗대는 것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키워드로는 도무지 꿰뚫을 수 없는 저마다의 풍경이 있고, 각자의 목적지를 지닌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장소에서 플랫폼보다 더 나은 비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 배후에 이들을 싣고 나르는 ‘기차’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곳이 그저 꾸러미에 불과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1850년에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명제를 제시했고, 3년 뒤 미셸 슈발리에는 철도 건설을 “몇 세기 전의 교회 건축에 비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잔 벅모스는 이 시기를 “철도는 지시물이었고 진보는 기호였다. 공간적 운동은 역사적 운동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철도와 진보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1989)고 정리한다. 이처럼 19세기 이래로 기차는 진보의 은유였고, 진보는 모더니티의 이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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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환해지는 순간_류주영: Dear Summer,

류주영 개인전 《Dear Summer》(10. 27~11. 18 아트사이드갤러리)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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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달이 수풀에 던지는 열네 번 무감한 입맞춤. 그리고 문득 가장 구체적인 어둠이 온다. 술과 피 섞인 그늘에 잠겨있던 초록 사포는 서로를 찌르면서 자라났다. 죽은 핏줄의 흰 목을 마지막으로 만질 때처럼 서걱거리는 결과 질감은 시간에 비추어 봤을 때 수상한 기색이 없다. 모든 이들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으므로 닫힌 대지처럼 굳게 입을 다물어야 할 때. 하지만 허기에도 낮이 처방해 준 수면제를 한 번도 먹지 않은 입술은 이내 피어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희망은 외로운 것이고 절망이 정직하다고 믿는 나는, 어둠을 절망의 권리로 허락하지 않는 작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가장 우울하고 암울한 시간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세상이 참으로 상냥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삶은 때로는 힘들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것’을 상냥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저 세상이 상냥하다고 했더라면 절망의 권리로 항변했을 텐데, 절망을 건네는 온유함 그래서 그것으로 희망을 길어 올리는 것이라면 도무지 저버릴 길이 없다. 희망에 관한 표현이 언제 틀린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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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하나야_김인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김인혜 개인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5. 19~6. 1 갤러리TYA) 전시 포스터(디자인: 장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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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얼굴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발그스름한 물결 위를 떠돌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너의 낯설었던 낯은 눈부심으로 띄워졌다가 해석을 향해 흘러가고, 그 무게가 익숙함으로 젖어갈 때쯤 응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니까. 둥근 이마와 굴곡진 코, 눈동자의 깊이는 진부해진 이후 더는 낱낱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가면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서 녹고 마침내 속살이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났을 때. 눈먼 나, 젖은 손가락으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노여움과 환희의 주름을 읽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더 이상 어떤 진부함도 남지 않는다. 외려 있다, 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문뿐이다. 어째서 눈은 호수가 아니고 눈인지. 내민 뺨은 밀어내기보다 어떻게 수렁처럼 나를 끌어당기는지. 균형을 잃은 낙하산처럼, 때로는 표류하는 뱃머리처럼 능선과 그것을 어르는 노을 사이에서, 제자리에서 길을 잃는 나. 이제 모든 것이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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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중 자동응답_박혜수, 안부: 굿바이 투 러브

안부 ⟨Excusez-moi⟩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2×40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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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헤어질 때만 사랑을 하였다. 없다, 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일 때. 나는 사라진 연인에게 가장 성실하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속삭이지 않자 아침을 잃게 되었고, 오늘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아 다섯 평 방안에만 머물게 된 나는 비로소 네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가 너를 가졌던 사이 너는 생활의 도구였다. 옷을 골라주고 저녁을 챙기고 야음을 데우는 기계였던 너는, 부재와 동시에 충실한 연인이라는 도구적 현전의 방식에서 사라지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경첩이 빠진 하루는 종일을 삐걱거리고, 용도 속으로 융해되었던 어떤 그는 첫날처럼 삼킬 수 없는 고체로 나타난다. 사랑의 이름으로 연인을 녹이었듯, 사랑의 이름으로 너를 응고시키어 나의 이마를 건드린다. 사랑이 만남 아래 멀어졌다가 이별 위에 다시 내린다. 사랑이 조건 없는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행히 이제 네가 없어 나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손안에 없는 연인. 나, 질투 없이도 너를 그릴 줄 알고, 구속 없이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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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차고_안민: Conscience

안민, ⟨Conscience (21수1110)⟩, 사인 플렉스지에 유채, 220×290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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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버지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이야기, 잠든 모든 이의 얼굴이 선하다고 믿는 일, 한 사람의 마음엔 한 사람 이상의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보는 일, 그리고 사랑이 죽음으로써 끝난다 해도 사랑의 주검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오래전 내가 읽은 체, 알은 체하고 눈 돌렸던 모든 장면들이 시간도 장소도 심지어 기억도 없이 살아와 끝내 희망을 선물한다. 나는 올 한 해 울지 않았기에 선물을 받는 것이겠지. 그러나 울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순응하고 타협했다는 말과 다른 점이 없지 않을까. 나의 절망을 남에게도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그것을 희망이란 그럴싸한 말로써 그저 삼킨. 어째서 눈물을 흘리지도, 엄격하지도, 책망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끝끝내 당신을 미워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나. 그러니 내가 예찬해야 할 대상은 이제 부정적인 것들이다. 더는 희망을 찾지 않으면서 그리고 이해를 찾지 않으면서 절망과 미움으로써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벗은 그 무서운 독을 그만 흩어버리라 하겠지만,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며, 독에 구원이 있다고 믿어보는 일에 나선다. 예술의 한편은 다시 그곳에 종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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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_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SeMA 창고, 2021. 7. 8.~8. 1, 전시 포스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클 타이슨, 1987년 8월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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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관한 모든 지혜를 얻었기에, 쌓아 올린 그 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결별을 짓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창피한 것을 동시에 나눈 우리는 이다음에 무엇을 남기게 될지 이제 알고 있다. 서로의 가장 헌신적인 것과 가장 추한 것을 교환해온 지금. 그리고 나는 네게 마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대로 너는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던 지금. 포말은 모래 위에 새겼던 모든 낱말을 이치가 예정했던 대로 지울 것이다. 잡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데 더 큰마음과 지혜가 필요하다지. 실험, 경험, 증명, 검토 그리고 결론까지, 시작점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현명함은 엇갈릴 이 날을 위해 이다지도 적재되어왔을까. 그러나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기 전, 사랑의 시작점에서 영원을 기약했던 순간과 새 삶의 출발점에서 혁명의 꿈에 젖었던 순간이다. 원대하고 급진적인 사유는 오직 성숙이 부재한 순간에 존재하고 맒을 천천히 깨닫고 있다. 결실 맺는 사랑과 도래할 혁명은 미래에 있다지만, 어찌하여 이룩과 번성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짐을 만드는 것일까. 또 출발하지도 않은 채로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것일까. 시간을 거듭할 때 생기는 지혜가 무언갈 내려놓게 만든다면 차라리 걸음을 어리석음에 향하도록 돌린다. 거칠고,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이며, 비발전된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네게 무엇을 ‘고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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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속에 내 잎_하므음: 종이 속 전시

하므음, ⟨창문’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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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부르는 표정. 당신도 한 번쯤은 부르거나 대답해본 적이 있겠지. 당신이 나의 표정을 읽고 나는 혀로써 당신이 읽은 것이 맞다 대답하는. 내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안색에 대해, 내 슬픔을 대신 앓는 낯빛에 대해, 나 대신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얼굴에 대해 그러니까 대신하여 어떤 소리를 기다리는 표정에 대하여.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비로소 고백할 준비가 끝날지 모르겠다. 괜찮냐, 어떻냐는 물음이 마치 열쇠가 되어서 그 열쇠에 꼭 맞는 말을 발음하는 일도 있지만, 그 표정들은 물음 없이 도착해 나는 그것에 맞는 어떤 소리를 뱉고 또 발음할 준비를 마치고 만다. 건네는 대화 안에서 몇 개의 말이 겨우 남을까 하는 고민. 그러나 그 열쇠를 통해 소리가 당신의 안으로 안착한다면, 굳이 구석진 자리에 앉지 않아도 또 천천히만 식는 커피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언어의 온도가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고백을 하고 밤사이 뒤척였던 것은 당신의 입에서 ‘아니’란 말이 나올까보다는, 내가 두드린 계이름과 말이 정확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만 네 입속에 내 잎을 넣어 그것이 자라나고 흔들리는 순간 염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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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나는 닿지 않는 등_정의철: Look at me now

정의철, ⟪Look at me now⟫, 학고재 아트센터, 2021. 10. 12~10. 19, 전시 포스터

멀쩡한 사람도 누구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체로 정신병자밖에 없다.
대리언 리더, 배성민 옮김, 『광기』, 까치,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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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계에는 얼굴이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하루엔 낯을 가지지 않은 존재들이 장기적으로 오가고 있었다. 사물을 통과한 사실과 장소는 자욱으로 남아 언제든 돌이켜볼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건넨 낯은 도무지 잔류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커피 머신과 졸음을 참을 줄 아는 포스기, 그들처럼 살과 피를 가진 기계들. 인형人形 없이 운영되는 가게는 조금도 새롭지 않다. ‘안녕하세요’라는 안부를 묻는 인사에 이제 모두가 물음표를 떼었듯이, 혹은 녹음에 부친 인사에 대꾸가 허무한 것처럼, 우리가 일으키는 파문엔 서로의 주름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니 이따금 당신이 달라진 게 없냐며 모습 중 어디가 변하였는지를 물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지난날과 오늘을 대차대조할 노력이 남아있지 않은 까닭도, 예민한 관찰력을 지니지 않은 연유도 아니었다. 그 물음만이 얼굴을 분실한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어, 상실의 죄책을 상기시킨다. 얼굴은 신체의 마중물이니 낯의 탈거奪去는 신체의 탈거. 그때마다 넉넉하지 않은 입을 벌린 사물들이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너도 사물이지, 너도 사물이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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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누구도 비웃지 않게 된다_정희영: 짐승에 이르기를

정희영 기획, ⟪짐승에 이르기를⟫, 합정지구, 2021. 5. 15~6. 13, 전시 포스터(디자인: 이산도)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당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당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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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약하다고 외칠 수는 없을까, 각자의 강함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투사처럼 굽히지 않는 의지로 세상을 변혁하는 이야기를 나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세계를 몇 개의 명제로 단호하게 진단하고, 적을 규탄하는 위대한 일은 내게 할당되지 못한다. 내 생김새는 오랫동안 비겁하고 비천하다. 광장의 절정 위에서 나는 늘 비켜서 있었다. 누군가 밀치기도 전에 인도에 먼저 올랐던 그리고 매쓰거운 분무를 몇 분 버티지도 않던 나는 궐련 어느 쪽에 입을 맞추어야 할지 몰랐을 때부터 내 자격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내 몸도 타인의 물건도 숨기는 데 익숙한 내 앞은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그래서 무언가 쓸 때마다 나는 늘 에둘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우회에도 애써 걷는 까닭은 비겁은 차치하더라도 비천으로 구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단 절박함에서였다. 고귀하고 완고함이란 조금도 없는 천함과 미약에서 길어낼 답이 어딘가엔 존재한다는 것. 외려 강함을 서로 앞다투어 외치는 이들이 초래한 세상에서 오직 미력으로써 발견할 가치가 있다는 것. 이 멍에 같은 희망을 뿌리칠 길은 없었다. 그러니 비겁함 때문에 내가 아니어도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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