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헤어질 때만 사랑을 하였다. 없다, 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일 때. 나는 사라진 연인에게 가장 성실하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속삭이지 않자 아침을 잃게 되었고, 오늘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아 다섯 평 방안에만 머물게 된 나는 비로소 네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가 너를 가졌던 사이 너는 생활의 도구였다. 옷을 골라주고 저녁을 챙기고 야음을 데우는 기계였던 너는, 부재와 동시에 충실한 연인이라는 도구적 현전의 방식에서 사라지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경첩이 빠진 하루는 종일을 삐걱거리고, 용도 속으로 융해되었던 어떤 그는 첫날처럼 삼킬 수 없는 고체로 나타난다. 사랑의 이름으로 연인을 녹이었듯, 사랑의 이름으로 너를 응고시키어 나의 이마를 건드린다. 사랑이 만남 아래 멀어졌다가 이별 위에 다시 내린다. 사랑이 조건 없는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행히 이제 네가 없어 나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손안에 없는 연인. 나, 질투 없이도 너를 그릴 줄 알고, 구속 없이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자이다.
[태그:] 박혜수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_박혜수: 어디서 다시 무엇이 되어 만나랴
1
어찌할 수 없는 갈라섬을 이별離別이라 말하고 제힘으로 갈라섬을 비로소 작별作別이라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지구의 것이 아니길 바랐던 이 ‘별別’의 일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전자의 별이 노도처럼 존재를 제 마음대로 어디든 도착하지 못하도록 휘젓는 일이라면, 후자의 별은 그 출렁임과 허우적거림에 대한 인정, 선택 그리고 결단의 일. 사랑 않겠다는 각오가 어김을 어김없이 만나듯 상륙은 없다. 그렇다면 이 별이 존재에게 준 책무는 사실 어딘가 도달하거나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이다지도 파도를 만드는 일인 것은 아닐까. 많은 날을 다 보내고 또 그 많던 널 보내고,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내게 당신을 보낼 수 있는 권능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송구와 유출 뒤에 여전히 남을 만큼 내게 당신이 많다는 사실. 그러니 지워질 것뿐 아니라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고 만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어떤 믿음이 생겨날 수밖에요. 영원? 그렇게 감상적인 단어가 세상에 남아있을 리가, 하고 의심했던 자리에 이별로써 못 믿을 것이, 작별로써 다시 믿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나 사랑은 제 갈 길로 갔지만, 영원만은 이 자리에 남아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