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꾸려면’이란 조건절을 내달은 문장들은 지금 진부해졌다. 이 조건절을 만족시키기 위해 던졌던 물음에 이윽고 ‘세계란 없습니다’하고 수긍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수긍으로부터 가장 위기에 닥뜨린 것은 존재 자체이기보단 예술일지도 모른다. 이때 예술이란 인상주의니 초현실주의니 하는 이름으로 진실한 세계란 이렇다고 호령하며 세계를 규정짓던 것이자, 과거의 세계에는 없을 수밖에 없으나 미래에 도래해야만 할 것을 당기는 것으로, ‘지금’ 세계의 불충분함에 대한 표현으로서의 상상력을 행사하던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전체 세계가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다고 믿기보다는 사소한 부분의 장소들을 종용하고 있으며, 세계에 관한 입장을 지니기보단 스스로에 대한 입장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반대로 예술이 가능하기 위해서 예술이 할 것은 세계의 부분들을 상냥하게 포착하고 위무하기보다는 스리슬쩍 소실된 세계를 다시 창설하는 일에 나서는 것 아닐까. 그런 한에서 ⟪멀티탭: 감각을 연결하기⟫는 감각이 연결될 지평으로서의 세계를 창설하는 데 모든 주의와 신경을 기울이는 기획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