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실루엣의 정치학

학고재갤러리, 사진가 노순택 개인전 《검은 깃털》

노순택 ⟨검은 깃털 #CHL0701⟩ 아카이벌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108×162cm 2017

노순택은 분단 체제가 야기하는 ‘파열음’을 사진으로 포착한다. 그가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검은 깃털》(6. 22~7. 17)을 개최했다. 역광을 이용한 사진 19점을 선보였다. 5년 만에 신작 발표지만, 작가는 그동안 사회, 정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뜨거운 현장에서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규탄 텐트 농성,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복직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 건립 운동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 작업 역시 이러한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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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이별에 성실한 이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결단은 사진을 지우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약속했던 망각을 부여받지만 동시에 어떤 저주도 함께 앓게 된다. 그는 이제 빈 사진첩으로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사진에 기대지 않고도 영원히 동반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일상의 암기가 간수할 만한 것을 선택해 만드는 기억의 연금술에서 비롯된다면, 망각은 사라진 것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남아버린 야금술을 말미암는다. 노순택의 사진엔 이런 야금술이 담겨있다. 작가는 대추리사태, 용산참사,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등 정치적 순간에 빠짐없이 섰지만 그 장면을 낱낱이 기록하려 분전하는 저널리즘의 언어에 종사하지 않는다. <얄읏한 공>의 들판엔 민간인의 시위를 진압하러 투입된 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망루의 불길과 주검을 모두 어둠으로 감춘 <남일당 디자인 올림픽>에는 오직 실루엣으로서 하나의 조형이 자리한다. <가뭄>엔 최루액을 내뿜는 살수차도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도 생략되어 물줄기만이 남았다. 그러나 지워진 것이 있는 탓에 지워질 수 없는 운명을 부여받는 존재들이 눈을 뜬다. 나는 이제 군인 없이도 들판만으로 대추리의 비극을 떠올릴 줄 알게 되었다. 불길과 주검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조형에서 살고자 또 빼앗기지 않고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망루에 올랐던 이들을 본다. 그리고 어느 흐르는 물만으로도 4월 16일을 그리고 거리에서 떠나보낸 한 노인과 만난다. 노순택의 사진 앞에서 우린 사라져버린 것들에 가장 성실하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그들을 기억할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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