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은 그저 부유물이다. 그것은 그래서 구체적인 감각의 대상이 될 수 없어 쉽게 희미해지고 힘을 잃는 듯 보이지만 늘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질과 매개하여 관계하며 어느 때에 가서는 장소를 가지기도 한다. 분명 그것은 드물지만 자주, 장소를 갖는다.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은 여전히 혁명의 공기가 부유하는 곳이며 민주주의란 철학이 거주지를 마련한 장소이다. 시카고의 헤이마켓 광장은 노동이 해방의 계기이면서도 정치의 제거할 수 없는 불변항임을 여전히 증명하는 거주지이다. 우리의 장소도 다르지 않다. 광주의 금남로부터 명동 성당, 서울역 광장들에는 모두 해방과 민주주의가 부유하고 있다. 그러나 비단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과 연루되지 않은 장소들도 사실은 마찬가지로 철학을 거주시키고 있다. 도로, 병원, 학교, 극장 그리고 아케이드까지, 모든 장소는 어떤 철학을 소유하거나 어떤 철학을 배제시키고 밀어낸다.-이러한 측면은 푸코와 벤야민, 데이비드 하비 등의 저작에서도 발견된다- 만약 우리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철학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장소에 철학이 부유하거나 거주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이미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서 감지하지 못하는 ‘사적소유’만이 관련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들의 철학이 부유하는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