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질풍지경초 엄상식정목(疾風之勁草 嚴霜識貞木)〉에 숨어 있는 화자는 들판에 서서 초목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있다. 직선으로 뻗은 동선에서 벗어나려는 듯 사방을 향해 흔들리는 그들은 스스로가 꼼짝 않고 응시하던 어떤 것에서 멀어지려 한다. 풀이 누웠다 일어나고 가지가 얼고 녹는 반복이, 제목이 지시하는 거센 바람(疾風)과 늦가을 서리(嚴霜)에 의한 것이라면, 이는 통념을 벗어나는 관찰이라 볼 수 없다. 이때 시선은 초목을 제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날씨라는 상투적인 인식 아래서, 바람과 서리가 그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킬 뿐이다. 그러나 김효진은 상황을 달리 명명하고 있다. 그림은 풍경을 고정된 방향으로부터 내쫓는다. 곱지 않은 날씨가 처소에 도착하는 동안, 화자는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린다’와 ‘풀이 눕고 나무가 언다’를 선후관계로 파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 것일 수도 있고, 나무는 서리보다 먼저 얼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작가는 이 풍경을 이름할 때 주객의 방향을 반대로 뒤집어 놓는다. 풀에 도달하는 바람 대신 바람을 좇는 풀, 나무를 결빙하는 서리가 아닌 김을 얼리는 가지. 예술은 통념을 해체하고 거기에 혼돈을 들어 앉힌다. 이 가을의 초목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