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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한 자를 배반에 물들이는 배후에 대해 고백할 게 있다. 이들은 사물마저 불온한 것이라 믿게 만든다. 또 사물이란 도처에 있는 까닭에, 은폐 대신 현현하도록 종용한다면 인간을 시나브로 전락에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조근거린다. 누구도 사물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정확히 발음한다면 ‘말해진’ 것의 세계, 언어를 통해 이미 이해되고 이야기되었던 용도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편안한 신발은 신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눈에 딱 맞는 안경은 그것을 쓴 채로 안경을 찾게 되듯, 용도에 복종하는 대상은 명령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그 순응을 알리바이로 이내 존재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배후가 주선하는 일은, 그 쓰임을 사랑스럽게 이행하며 도구적 방식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다시 꼬드겨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은폐와 부각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일로 세계가 결정된다. 회유로부터 우리는 머물던 처소가 아름답고 평온하기를 그만두고 불화와 반목으로 깨어나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배반은 잠잠한 일상을 밀정이 암약하는 냉전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에 급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