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솔로몬 병

이중섭, <탄생불>, 은지에 새김, 8.7×15.2cm, 1950s

“본인이 굉장히 현명하고 중립적인 듯 포장하여, 누가 봐도 한쪽이 잘못한 일을 양쪽 다 똑같다고 말하며 양쪽의 잘못을 인정하는 쿨함, 냉철한 두뇌를 가진 척 하는 병”은 리그베다 위키백과에 수록된 인터넷 신조어 솔로몬병의 정의다. 이 신조어를 접한 것은 한 친구와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을 때인데, 그때 친구는 연인 관계에서의 솔로몬 병에 걸린 ‘연인’이 얼마나 비극을 야기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령 이런 이야기다.

B: 자기야, 글쎄 과장 A있잖아, 오늘 회사에서 나한테 소리를 지르는거 있지? 아 진짜 어처구니가 없어서.

C: 왜 그랬는데, 무슨 일 있었어? 에이, 과장도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겠지. 소리 지르는 건 너무하지만 그래도 자기도 뭔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그랬을 거야.

B: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C: 봐, 자기도 잘못했네. 자기는 블라블라를 잘못했고 이렇게 했어야했어. 과장이 화낼만 하네. 소리지른 건 너무하더라도 과장이 화낼 만 했어.

B: 뭐? …….

이후의 두 연인은 묘한 긴장감에 빠진다. 이제 과장 A를 향해있던 연인의 짜증은 상대를 향하고, 상대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이 비극은 서로의 대화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에 시작된다. 한 쪽이 원했던 것은 잘잘못을 가리는 판결이나 교육이 아니라 공감이었다. 반면 상대가 목적한 것은 B의 계몽이었다. 감정을 향해있는 공감과 이성을 향해있는 계몽은 생각보다 간극이 크다. B의 계몽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먼저 B의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이 존재해야했다.

그러나 이 글은 단순히 솔로몬병에 걸린 연인을 꼬집기 위해서 쓴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러한 솔로몬병의 행태가 진보 진영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 진영은 최근의 몇 번의 선거 동안 멘붕에 빠져왔다. 이는 진보 진영의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처럼 존재하는데,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투표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혹은 노동자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언뜻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진보진영에서만 통하는 ‘상식’이 아니다. 진보진영이 그렇게 싫어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은 인간은 사사로운 이익관계를 좇는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과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선택은 박근혜 대통령이었고 새누리당이었음이 세상의 형편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실의 상식은 진보 진영이나 계급 정체성을 언급하는 몇몇의 이론가하고는 다르다.

진보 진영은 계급적 정체성에 눈을 뜨지 못하며,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데 분노하고 그리하여 계몽하고자 한다. 그러나 좌파의 정책이 줄 수 있는 혜택과 박근혜가 주는 저주를 도표를 통해서 정말 명확하게 비교하고 보여준들 대중은 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 뒤 새누리당에게 표를 건네준다. 왜때문이죠?

많은 경제학자들이  중산층 비율이 40% 미만으로 추락함과 함께 한국의 중산층 붕괴를 오래전에 지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스스로 중산층이라 ‘믿는’ 비율이 70%에 달한다. 이 신선하지 않은 통계의 긴장에서 생각해야할 것이 있다면, 굳이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이니, 미디어의 세뇌를 언급하기 전에, 인간은 태초부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또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관념의 필터를 “가치관”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계급적 정체성이 아니라 가치관에 따라서 투표한다.

가치관이란 어려운 용어는 어떤 가치를 좋아하느냐의 문제로 요약할 수 있고,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부자의 가치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부자 정당과 부자를 위한 정책을 지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치관의 영역에서 “good”은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선(善)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주 감정적인 영역에서 사람들한테 시인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옳다. 요컨대, “욕망”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옳다.

사람들의 욕망은 언어와 함께 수반된다. 이를 한 언어학자는 프레임으로 설명하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보수의 언어를 곧잘 옳은 것으로 인식한다. 부자 – 재벌 – 성공 – 명품 – 대기업 – 상위 3% – 시장 같은 단어들은 사람들에게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욕망하도록 하고, 매료되게 만든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긴다. 반면에 진보의 언어는 부인의 감정이나 박탈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복지 – 88만원 세대 – 3포세대 – 중소기업 – 평등 – 규제 같은 단어들은 무엇보다 긍정적이지는 못하다. 부자들의 탈세나 부정, 비리 등에도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성의 영역도, 계급적 정체성의 영역도 가치관이라는 필터보다 앞서 작용하지 못하고, 그 요새에서 욕망은 끝없이 옳다.

여기서 진보 진영은 이 욕망을 이해하기도 전에 도덕은 황폐화되었고, 곧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는, 민주주의가 쓰레기 속에 쳐박힐 것이라는 안티 담론들을 이용해 보수 진영을 비판하고, 그런 보수들을 지지한 대중들을 꾸짖어 왔다. 현실 정치에서의 진보 진영의 “솔로몬 병”이 여기서 드러난다. 대중들에 대한 이해는 그들이 무언가를 몰라서 그랬다는, 세뇌 때문이라는 정도이며, 진정 욕망의 주체로서의 대중들을 이해할 생각은 없다. 그런 제도가 존재하기 때문에, 물질이 인간들을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미디어가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에라는 말은 자칫 사람들을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로 만든다. 오로지 세계는 경제학자, 정치가, 철학자 등의 전문가들이 만들어왔다는 논리에 빠지게된다.

그러나 대중들도 마땅히 선택을 해왔다. 신자유주의가 유행한다면, 신자유주의를 선택한 한 편은 대중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 안티 담론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이 신자유주의를 왜 선택했는지에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대중들에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고, 진보 진영의 선동가와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계몽을 작동시킬 수 없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안티 담론으로는 절대로 긍적적인 시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동적인 부동층은 안티 담론에 빠진 서슬퍼런 진보를 욕망할 수 없다.

여기서 그렇다고 진보를 선정적인 욕망으로 만들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없이 단순히 계몽의 작동을 기대하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중에 끊임없이 진실을 알리고, 보수 진영의 부정을 까발리는 것으로 언젠가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오고, 깨어있는 시민들을 만들 것이라는 낙관은 절대로 금물이다. 이 진실과 상식은 진보 진영만의 것일 뿐, 현실의 것과는 다르다. 대중이 무엇을 욕망하고, 욕망하는지에 대한 전략적인 분석 다음에야 계몽-사실 이말도 굉장히 껄끄러운데, 어쨋든 변화라는 의미에서-은 작동된다. 이해를 바탕으로, 진보의 가치를 욕망할 수 있는 긍적적인 가치와 언어로 만드는 것을 연구해야한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더 주목해야할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문화다. 문화는 욕망이다. 대중 문화가 되었든, 엘리트 문화가 되었든 혹은 한 세대의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든 문화는 사람들의 욕망과 적극적으로 결합되어있다. 그리고 과거에 어느 특정 계층과 계급이 소유하던 문화의 주류가 최근에는 대중 문화가 차지했다. 이는 민주화의 정확한 반영이며, 문학 담론과 연극 담론에서 영화 담론으로 그리고 오늘날 연예와 예능 담론으로 문화 담론의 주류가 바뀌어왔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담론의 주류가 평론가에서 대중으로 바뀐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그 욕망을 분석할 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이 문화에 대한 분석과 평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예능일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나또한 문화라는 씨줄과 욕망이라는 날줄을 가지고 앞으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본래는 일주일 전부터 구상과 키워드만 가지고 차일피일 미루던 글이었느데 본의 아니게 선거 다음날 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번 선거에대한 어떤 책임론과 비판을 가하고자 작성한 글이기보다는 적어도 내가 진보 진영에 결핍된 지점을 지적하고 그 성찰과 해결책 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정리해보고 싶었다. 또 선거철 마다 나오는 깨시민론과 국개론은 지루하고, 대중들을 꾸짖거나 이성적으로만 계몽 해보려는 솔로몬병 병자들은 너무도 피곤했다. / 조재연

*참조
– 허지웅, 《대한민국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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