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붉은 시상식 레드 어워드. 우리는 세계를 상상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다시’ 바꿔 놓은 예술, 세계의 부정을 넘어 자본과 맞서고자 하는 예술,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과 함께 투쟁하는 예술을 매년 기다려 왔다. 그렇기에 레드 어워드 수상작의 면면은 당대의 불투명한 전선을 인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수상작을 보면 우리가 무엇과 싸워왔는지, 무엇을 위해 어깨를 걸어야 하는지가 보였다. 작년엔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 파업이 쏘아 올린 비정규직, 하청 노동이 최대 의제로 번졌고, 2021년엔 여성, 노동자, 이주민의 등 사회적 타자의 투쟁을 역사화하는 작업을 통해 기억, 진실과 다퉈야만 했던 포스트트루스 시대가 쟁점이 됐다.
그러나 2023 레드 어워드에 추천되거나 선정된 작업엔 일련의 전선이 수렴하지 않는다. 노동자 투쟁이 하나로 연결되는 총파업과 대투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시민의 연합일 촛불집회는 현 정권의 백래시 아래 산재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란 부분으로 분열되었으며, 결국 일부의 수정・개혁만 가능할 뿐 전부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으름장을 내놓는 후기자본주의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두고 더는 거대 서사가 불가능하다거나 총체로서의 혁명이 요원해졌다는 평가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좋다. 변혁은 이제 동시에 일발로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의 전복은 동시에(혹은 더 많은 시간)에 다발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다시 말하자. 전환으로 가는 단 하나의 길은 지금 이 자리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전환을 향해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발견한다. 혁명은, 더 나은 세계는 어떻게든 올 것이다. 그것이 총체성을 기각한 세계에 2023 레드 어워드가 부치는 회신이다. 오늘 시상식은 난민 노동자 장애인 LGBTQ 페미니즘 그리고 이보다 더 많은 이름으로 미래를 선정하고, 발표하고, 축하할 것이다. 미래로의 도약은 늘 문화예술이란 범주를 경유하여야 한다. 문화예술은 늘 지금 도래하지 않는 것을 상상력으로 매개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의 주제인 ‘문화기본법 10주년’은 이 연장선에서 발음되어야 한다. 올해 레드 어워드는 국민의 문화적 권리 확립이라는 명시적인 의미를 넘어, 모든 인민에게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고 촉구할 기반으로 문화기본법을 재전유하는 자리다.
이에 맞춰 2023 레드 어워드는 광장 기록 시선 연대 담론 토대 형식 반동 총 8개 부문에서 18개 작품(활동)을 선정했다. 먼저 ‘주목할 만한 광장’은 시민의 비판적 문화예술 역량을 배양하는 교육 활동을 기린다. 여기엔 〈대구퀴어문화축제〉와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으로 심사위원의 중지가 모였다. 〈대구퀴어문화축제〉는 차별을 일삼는 시정, 혐오 세력에 맞서 15년째 꺾이지 않는 평등과 사랑을 외쳐왔다. 〈미술중심공간 보물섬〉은 강제 징용과 보도 연맹 사건 등 경산 코발트 광산의 소외된 역사를 발굴하고 재조명하기 위해 분투해 온 대안적 전시 공간이다.
‘주목할 만한 기록’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르포 문학의 성과에 방점을 찍는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이규식의 세상속으로〉, 〈그들이 짓는 세계〉 총 세 작품이 결정됐다.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는 홈리스행동생애사기록팀이 2021년 봄부터 2년 동안 만난 여성 홈리스 7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규식의 세상속으로〉는 장애인 운동가 이규식의 삶을 한국 장애인 운동의 궤적과 겹쳤다. 이규식은 물론 집필 활동 지원사로 참여한 김소영, 김형진, 배경내를 함께 호명했다. 〈그들이 짓는 세계〉는 매일노동뉴스에 연재된 기획 기사로 양회동 열사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왔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새로운 인식과 실천을 발견하고 창조한 활동에 수여되는 부문이다. 〈바람의 소리〉, 〈지영〉, 〈엑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세 개 작품이 뽑혔다. 〈바람의 소리〉는 극단 달오름이 기획한 연극으로 일제강점기 오사카로 이주한 재일교포의 삶을 제주 4.3 사건과 연결했다. 〈지영〉은 성 노동자의 특수한 삶과 평범한 일상을 중첩해 사회가 내세우는 정상성의 민낯을 드러내고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 타자의 삶을 기억했다. 조경숙이 쓴 〈엑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는 플랫폼 서비스에 내재한 불평등, 첨단 지식으로 포장된 윤리적 맹점 등 남성이 주를 이루는 테크놀로지 업계의 문제를 고발했다.
‘주목할 만한 연대’는 새로운 형식을 통해 지역이나 투쟁 현장에 연대한 활동을 기념한다. 〈10. 29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스튜디오 알〉이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서울과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11개 도시를 방문한 〈10. 29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는 열흘 동안 시민과 만나며 참혹한 슬픔에 빠져 있던 우리 사회에 비극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했다.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알〉은 청소 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등 노동 현장에서부터 기후정의, 장애 평등, 예술노동권 투쟁 등 기성 언론이 주목하지 않는 착취와 저항의 현장을 포착했다.
‘주목할 만한 담론’은 비판적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비판적 담론을 생산한 활동을 조명한다. 그 주인공은 〈노프라이드 파티〉와 〈애프터 미투〉다. 〈노프라이드 파티〉는 비국민, 이주노동자, 홈리스, 성병 캐리어, 정신병자, 장애인, 노출광, 약물 사용자, 크로스드레서, 성 중독자 등 각계각층의 퀴어를 소환해 사회의 정상성과 질서에 파열구를 냈다.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는 미투를 일시적인 사건으로 아닌 진행형이자 끝나지 않을 ‘운동’으로 포커싱하며 미투 이후 여전히 함께 풀어야 할 과제를 메시지로 던졌다.
‘주목할 만한 토대’는 문화예술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토대를 마련한 활동을 무대로 올린다. 선정작은 〈삼달다방〉과 〈비정규직노동자의 집 꿀잠〉이다. 〈삼달다방〉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장애 비장애 인종 민족 국적 남녀노소 정체성에서 자유로운, 누구나 삶을 멈추고 연결되는 평등한 공간을 만들어왔다. 〈비정규직노동자의 집 꿀잠〉은 비정규직 노동자 차헌호, 해고 노동자 김경봉, 산재 사망 노동자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등 투쟁하는 노동자, 시민에게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노동자를 위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민중의 거점 역할을 수행해 왔다.
‘주목할 만한 형식’은 미학적으로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시도한 활동을 선정하는 자리다. 양영희 감독의 〈가족 3부작〉이 단독으로 결정됐다. 양영희 감독은 재일교포, 자이니치, 재일코리안 등 일본 내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가로지르며 개인의 삶과 역사를 연결한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을 시작으로, 〈굿바이, 평양〉, 〈수프와 이데올로기〉 등 26년에 걸쳐 제작된 시리즈는 차별에 대한 대안과 동시에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전위의 시선이다.
끝으로 ‘주목할 만한 반동’은 이 사회를 퇴행시킨 문화예술계 사건을 규탄하는 문화예술인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다양한 사건과 단체가 거론됐지만 〈행정안전부〉, 〈형설출판그룹〉, 〈국방부-육군사관학교〉가 단연 2023년 최악의 반동으로 꼽혔다. 〈행정안전부〉는 2022년 10월 부마민주항쟁기념식에서 〈늑대가 나타났다〉의 가사를 문제 삼아 가수 이랑의 공연을 무산시켰다. 우리가 여전히 블랙리스트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다음은 〈검정고무신〉의 저작권을 빼앗은 불공정 계약으로 이우영 작가를 죽음으로 내몬 〈형설출판그룹〉이다. 창작자에 대한 착취로 빚어진 사건을 잊지 않고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레드 어워드 반동에 선정했다. 〈국방부-육군사관학교〉는 역사적 공공 미술작품인 홍범도 장군 흉상을 일방적으로 철거해 윤석열 정권이 지향하는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 행태를 보여줬다. 사상, 역사에 대한 검열과 공작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계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건이다.
수상자 모두에게 그리고 이들과 함께 어깨를 건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언젠가 어느 곳에서든 함께 설 모두에게 축하와 사랑을 보낸다.
▲ 2023 레드 어워드에서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