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 보이는 밤

불을 끄고 눈을 감아도, 조명이 눈꺼풀을 깨문 자국 사이로 기어이 빛이 들어오고 만다. 분명 없는 것인데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때, 나는 속수무책으로 어둠을 빼앗긴다. 양평 구하우스 상설전에서 다리우시 호세이니(Dariush Hosseini)의 ⟨Wide Shut 2⟩(2018)를 지나며 눈이 묶인 밤을 떠올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Eye’s Wide Shut⟩(1999)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호세이니는 눈으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서야 보이는 대상을 그렸다. 그러니 작품을 보면서 나는 저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노려보기보다는 못내 함께 눈을 붙여야만 한다. 이제껏 시각은 작품의 입을 여는 열쇠였지만, 호세이니의 그림은 스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나의 입을 여울게 한다. 너는 단 한 번 물었지만 나는 네게 영원히 답하고 있다. 검은 화면에 하이얀 포말이 일어날 때까지 혀는 눈동자를 문지른다. 작가가 흩어놓은 것이 아니라, 내 빈 밤의 문을 두드리는 기억을, 거품을 헤치며 찾아야 한다. 많은 상처를 주고 적은 상처를 받은 어제, 빙하기와 운석을 기다리는 오늘, 비겁함을 거듭하면서도 회의적인 내일. 한편 눈을 감는 순간마다 떠오르는 처음 보는 눈동자. 길이라곤 없는 온통 검은 화면으로 들어온 어떤 존재를 생각한다.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수밖에”라는 결백한 시구를 미심쩍게 ‘눈 감으니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할 수밖에’로 고쳐볼까. 그래도 노를 저어 밀어온다면 은결도 포말도 주머니에 있는 걸 다 내주어, 옥같이 뱃전에 부서지리다.

『아트인컬처』 뉴스레터 postcard_64📬

차라리 싫다고 하면 될 일_BGA Compliation 109.

표지 작품은 고등어 <몸부림 120> 종이에 연필, 140×260, 2017

차라리 내가 싫다고 했더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기다리진 않을 테지. 그렇다면 차가운 말투보다도 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그 주저에서 따뜻함을 길어 올리고, 별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에서 남아있는 조금의 배려를 발견하지도 않을 테지. 그러나 이 절망 한가운데서도 희망은 긴 주머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송곳처럼 기어코 발생하고 말아 나의 이별을 또 한 번 미룬다. 남들은 희망이 아름다운 낱말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저 포기하고 중력이 이끄는 대로 피의 웅덩이 속으로 가라앉는다면 편하련만, 어째서 미약한 희망에도 반짝이는 눈망울. 그럴 때마다 잠깐 가엾다가도 오랫동안 사랑스러울 인간. 여기에 희망의 악취를 적는다. 그리고 절망의 아름다움을 옮긴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희망에 속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1/10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Ⅰ」_이수진, ⟨Signal⟩
1/11 「미워도 다시 한 번」_고등어, ⟨몸부림 120⟩
1/12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_장성은, ⟨리듬 D⟩
1/13 「나는 더러워서 무엇도 피할 필요가 없다」_정희승, ⟨무제 #04_기억은 앞면과 뒷면을 가지고 있다⟩
1/14 「사랑의 잔고는 영원 Ⅱ」_이현수, ⟨Untitled 3⟩

(미술 구독 서비스 “BGA 백그라운드아트웍스”에서 계속)

늬가 없어도 나는 산단다 _박혜수: 어디서 다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박혜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실연수집’ 설문 답변지로 종이학을 접은 뒤 다시 펴서 만든 러브레터를 불도장으로 태움 각 120×170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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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할 수 없는 갈라섬을 이별離別이라 말하고 제힘으로 갈라섬을 비로소 작별作別이라 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지구의 것이 아니길 바랐던 이 ‘별別’의 일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다. 전자의 별이 노도처럼 존재를 제 마음대로 어디든 도착하지 못하도록 휘젓는 일이라면, 후자의 별은 그 출렁임과 허우적거림에 대한 인정, 선택 그리고 결단의 일. 사랑 않겠다는 각오가 어김을 어김없이 만나듯 상륙은 없다. 그렇다면 이 별이 존재에게 준 책무는 사실 어딘가 도달하거나 도달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이다지도 파도를 만드는 일인 것은 아닐까. 많은 날을 다 보내고 또 그 많던 널 보내고, 그제서야 깨달은 것은 내게 당신을 보낼 수 있는 권능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송구와 유출 뒤에 여전히 남을 만큼 내게 당신이 많다는 사실. 그러니 지워질 것뿐 아니라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고 만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어떤 믿음이 생겨날 수밖에요. 영원? 그렇게 감상적인 단어가 세상에 남아있을 리가, 하고 의심했던 자리에 이별로써 못 믿을 것이, 작별로써 다시 믿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렇게나 사랑은 제 갈 길로 갔지만, 영원만은 이 자리에 남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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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비약의 건조물_이여운의 회화

이여운 ⟨스튜디오 가는 길⟩ 캔버스에 수묵 73×97c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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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로 난 흰 이빨 자욱, 부풀어 오르는 비눗방울, 밤하늘의 검은 너울, 유리의 거미줄. 달빛인지 햇빛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그저 여울지 못한 창백한 조명 아래, 여윈 너의 팔과 다리를 비유할 낱말을 발음해 본다. 분명 획 하나를 제외한 모든 면에 얽힌 거대한 무게를 생략해 버린 당신은, 이 순간 가장 엷고 얇다. 나는 횡행한 없는 것들을 모아 부르고 싶어졌다가, 쉽게 ‘폐허’를 모색하는 감동에는 어떤 상투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풍경의 부재는 새삼스럽게 죽어가는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으로 밀려가는 것일까. ‘부재’와 ‘폐허’. 나는 이런 감정과 태도를 의미하는 단어를 조금 노려본다.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너에 대해서 이 순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폐허라 말하지 않겠다. 하늘을 그리지 않아도 형상만으로 빛이 있음을 알고, 다음 장면을 볼 수 없으면서도 그림자로 시간이 줄어드는 줄 알며, 길을 그리지 않아도 문이 존재하므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맙소사 나는 무엇이든 이 장소에서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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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웹진 퐁』 인터뷰_tunainforest: 비평의 ‘위드’는 가능한가

비평웹진 퐁 홈페이지 대문. ‘퐁’은 텍스트가 이미지에 기대어 의미를 형성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아래는 tunainforest가 비평웹진 퐁에서 기획한 「비평의 ‘위드’는 가능한가: 비평가 22인의 릴레이 인터뷰」 중에서 필자의 답을 모은 글이다. 본 기획에는 미술, 만화, 영화, 음악 각 분야의 비평가가 참여했다.

tunainforest (이하 T) 처음으로 글을 썼을 때,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재연 (이하 J) 아마도 이런 대답은 아둔한 편에 속하겠지요? 저는 이미 몇 편의 문장들을 쓰고 난 후에야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또 마음에 둔 일이 ‘글쓰기’임을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첫 글을 어떤 연유에서 썼는지에 대해서라면 대답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계속 쓰는 이유라면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처음 글을 쓰게 된 이유와 다르지 않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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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차고_안민: Conscience

안민, ⟨Conscience (21수1110)⟩, 사인 플렉스지에 유채, 220×290c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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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버지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이야기, 잠든 모든 이의 얼굴이 선하다고 믿는 일, 한 사람의 마음엔 한 사람 이상의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보는 일, 그리고 사랑이 죽음으로써 끝난다 해도 사랑의 주검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오래전 내가 읽은 체, 알은 체하고 눈 돌렸던 모든 장면들이 시간도 장소도 심지어 기억도 없이 살아와 끝내 희망을 선물한다. 나는 올 한 해 울지 않았기에 선물을 받는 것이겠지. 그러나 울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순응하고 타협했다는 말과 다른 점이 없지 않을까. 나의 절망을 남에게도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그것을 희망이란 그럴싸한 말로써 그저 삼킨. 어째서 눈물을 흘리지도, 엄격하지도, 책망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끝끝내 당신을 미워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나. 그러니 내가 예찬해야 할 대상은 이제 부정적인 것들이다. 더는 희망을 찾지 않으면서 그리고 이해를 찾지 않으면서 절망과 미움으로써 미래를 지켜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벗은 그 무서운 독을 그만 흩어버리라 하겠지만,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고 위협하며, 독에 구원이 있다고 믿어보는 일에 나선다. 예술의 한편은 다시 그곳에 종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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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아트랩 OPEN STUDIO 토크

H아트랩 OPEN STUDIO 첫 번째 이야기, ⟪ART NODE⟫ 포스터

연계 행사 4. 토크
– 제목: 변명과 비명들
– 진행: 미술 이론가 조재연
– 일시: 2021년 12월 19일 (일) 13:00-15:00
– 장소: 호반파크 2관 H아트랩 4층
– 신청: H아트랩 홈페이지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를 털어놓을 때면 자주 그렇게 적었다. 변혁과 진리, 희망, 아름다움과 같은 터무니 없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쓴 것을 지키지 못하는 생이 부끄럽다. 그러나 그 부끄런 까닭에, 괴리를 오므리기 위해서 살아가나요. 언젠가부터 ‘세상은 이렇다’는 식으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다. 처지와 자격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리를 해명하기보다는 ‘변명’하는 것처럼, 내가 못다할 비판임을 알기에 비판 대신 ‘비명’을 지른다. 비천한 곳에서도 길어낼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다. 고귀함이 가치에 닿는 일은 그 자신을 재귀로 입증할 뿐이지만, 가치가 비천한 처소에서 길어지는 것이란 ‘가치’의 평등한 얼굴을 내비치는 일임을 믿으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의 사소하지만 완고한 증명이기를.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기다릴 수 있는 것들을 맡에 챙겼습니다. 비평이라면 좋겠습니다. 늘어놓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흐린 날, 미사일_차지량: New Home – Stay

차지량, ⟨Stay⟩, 비디오, 60분, 2021 (출처: Cha Ji Ryang)

나는 문득 자수를 하고 싶어진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장마철마다 대야와 바가지로 물을 푸던 양친을 잊고 지냄에 대하여, 익지도 않은 낯선 짐승을 뼈째로 허겁지겁 삼키고는 그 비가 타고 내려오던 깊은 계단에 게워냈던 기억의 부재에 대하여, 새벽 내 심장 타는 냄새를 맡던 가족의 얼굴을 모름에 대하여, 그러니까 그 어느 것도 내가 머물고 있지 않음에 대하여.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 집에만 가져오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지. 쥐기 위해서 꺾어야 한다는 것과, 언덕을 넘어오는 바람만은 가구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누구를 사랑하는 태도가 사실 끔찍하게 다르다 것이 내가 그곳을 기억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 누군가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갈 스스로 생성해내는 생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가 밤이나 폐허 같은 것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오일 대신 유채라 발음하고, 시침은 물론 형광등이 씨끄럽다는 것을 앎은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이 사소한 소리들을 말미암아 그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집으로 가는 길마저 망각할 수밖에. 흐린 날, 미사일_차지량: New Home – Stay 더보기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_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SeMA 창고, 2021. 7. 8.~8. 1, 전시 포스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클 타이슨, 1987년 8월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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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관한 모든 지혜를 얻었기에, 쌓아 올린 그 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결별을 짓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창피한 것을 동시에 나눈 우리는 이다음에 무엇을 남기게 될지 이제 알고 있다. 서로의 가장 헌신적인 것과 가장 추한 것을 교환해온 지금. 그리고 나는 네게 마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대로 너는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던 지금. 포말은 모래 위에 새겼던 모든 낱말을 이치가 예정했던 대로 지울 것이다. 잡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데 더 큰마음과 지혜가 필요하다지. 실험, 경험, 증명, 검토 그리고 결론까지, 시작점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현명함은 엇갈릴 이 날을 위해 이다지도 적재되어왔을까. 그러나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기 전, 사랑의 시작점에서 영원을 기약했던 순간과 새 삶의 출발점에서 혁명의 꿈에 젖었던 순간이다. 원대하고 급진적인 사유는 오직 성숙이 부재한 순간에 존재하고 맒을 천천히 깨닫고 있다. 결실 맺는 사랑과 도래할 혁명은 미래에 있다지만, 어찌하여 이룩과 번성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짐을 만드는 것일까. 또 출발하지도 않은 채로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것일까. 시간을 거듭할 때 생기는 지혜가 무언갈 내려놓게 만든다면 차라리 걸음을 어리석음에 향하도록 돌린다. 거칠고,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이며, 비발전된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네게 무엇을 ‘고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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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속에 내 잎_하므음: 종이 속 전시

하므음, ⟨창문’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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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부르는 표정. 당신도 한 번쯤은 부르거나 대답해본 적이 있겠지. 당신이 나의 표정을 읽고 나는 혀로써 당신이 읽은 것이 맞다 대답하는. 내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안색에 대해, 내 슬픔을 대신 앓는 낯빛에 대해, 나 대신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얼굴에 대해 그러니까 대신하여 어떤 소리를 기다리는 표정에 대하여.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비로소 고백할 준비가 끝날지 모르겠다. 괜찮냐, 어떻냐는 물음이 마치 열쇠가 되어서 그 열쇠에 꼭 맞는 말을 발음하는 일도 있지만, 그 표정들은 물음 없이 도착해 나는 그것에 맞는 어떤 소리를 뱉고 또 발음할 준비를 마치고 만다. 건네는 대화 안에서 몇 개의 말이 겨우 남을까 하는 고민. 그러나 그 열쇠를 통해 소리가 당신의 안으로 안착한다면, 굳이 구석진 자리에 앉지 않아도 또 천천히만 식는 커피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언어의 온도가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고백을 하고 밤사이 뒤척였던 것은 당신의 입에서 ‘아니’란 말이 나올까보다는, 내가 두드린 계이름과 말이 정확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만 네 입속에 내 잎을 넣어 그것이 자라나고 흔들리는 순간 염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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