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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얼굴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발그스름한 물결 위를 떠돌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너의 낯설었던 낯은 눈부심으로 띄워졌다가 해석을 향해 흘러가고, 그 무게가 익숙함으로 젖어갈 때쯤 응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니까. 둥근 이마와 굴곡진 코, 눈동자의 깊이는 진부해진 이후 더는 낱낱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가면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서 녹고 마침내 속살이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났을 때. 눈먼 나, 젖은 손가락으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노여움과 환희의 주름을 읽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더 이상 어떤 진부함도 남지 않는다. 외려 있다, 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문뿐이다. 어째서 눈은 호수가 아니고 눈인지. 내민 뺨은 밀어내기보다 어떻게 수렁처럼 나를 끌어당기는지. 균형을 잃은 낙하산처럼, 때로는 표류하는 뱃머리처럼 능선과 그것을 어르는 노을 사이에서, 제자리에서 길을 잃는 나. 이제 모든 것이 생경하다.
김참새: 마음의 색과 모양
갤러리ERD, 김참새 개인전 《영향의 피로》
김참새는 내면의 언어를 색과 형태로 번안한다. 회화와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무형의 감정을 미술이라는 그릇에 담아왔다. 그가 최근 갤러리ERD에서 개인전 《영향의 피로》(4. 6~30)를 열고 ⟨Mask⟩, ⟨Nothing⟩ 연작 등 총 22점의 회화를 선보였다.
모래성 모래 모래_차지량: dream pop
밤이 가장 길었던 밤. 바다를 쏟는 사막에서 지느러미가 바삭이는 붕어,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를 두고 우린 별처럼 웅성거렸다. 부자가 되는 행운에 대해서 말했고, 유전을 찾느라 모래에 새긴 발자욱과 서풍에 잠긴 길을 돌이켰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진짜 아버지는 어둠 후에 잠 말고 어떤 시간이 있는지 몰랐으므로, 혹은 손톱과 머리칼 이외에 물려줄 게 없어 오늘 말한 그런 저택의 주인은 될 수 없을 거야. 부서지기 전에도 처분할 수 있는 가구, 헤어진 연인과 동시에 내쫓을 수 있는 집기로 채워진 사물의 집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허름한 가게가 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눈물짓고, 온 세상 대신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더라도 축하해주며, 둥글게 모여 앉아 투명한 모닥불을 소리로 이룩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최근에 알게 된 가장 가난한 이는 🦋였다. 그는 허구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하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난했다. 모래성이 어떤 모래가 되고 다시 다른 모래로, 처음이 되는 과정을 가질 뿐인 그 이름. 아름답고 반짝이지만 그 안에서 살 수 없고, 한순간 무너지며 모래로 응결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배윤환: 야생의 ‘낭만주의’
갤러리바톤, 배윤환 개인전
배윤환은 사회 부조리를 우화 기법으로 화폭에 펼친다. 자본주의, 환경 파괴, 지역 이기주의 등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작가의 직간접적 경험과 결합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왔다. 자칫 무거워 보이는 주제지만 그의 그림은 진지함과는 거리를 둔다. 캔버스에는 금방이라도 동화책에서 튀어나올 듯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동물이 등장하고, 그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토끼와 코알라, 북극곰, 늑대 등 의인화된 캐릭터는 주제를 유쾌하고 쉽게 전달하는 매개체다. 그리고 이러한 화법 저변에는 배윤환만의 풍자와 해학이 깔려있다.
《대발생》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
전시 《대발생》에 참여한 곽인탄, 안민환, 오제성 작가의 작업 세계를 공유하고, 미술전문가가 모여 조각에 대한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2023년 1월 14일(토) 저녁 6시-8시
은평문화예술회관 1층 소회의실
곽인탄(작가), 권시우(평론가), 박서영(독립기획자), 박주원(모더레이터, 《대발생》전시 기획자), 서지은(코리아나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안민환(작가), 오웅진(을지로오브 운영자), 오제성(작가), 장준호(조각가), 전세운(미술세계 기자), 조재연(아트인컬처 기자)
18:00-18:30
참여자 소개 및 각 작가의 작업 소개
18:30-20:00
동시대 조각가의 역할, 발화된 조각을 보며 느끼는 점, 새로운 조각성, 작업에 대한 자유 질문
차지량 개인전 《dream pop》 아티스트 토크 ‘꿈/깸’과 ‘중얼중얼’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차지량 개인전 《dream pop》의 대화 자리를 마련합니다. ‘모임 별’의 조태상님, 이번 전시의 출품작 <Surfing>의 협연자로 함께한 조재연, 권태현님과 함께 ‘꿈/깸’과 ‘중얼중얼’에 관해 이야기 나눕니다.
‘꿈/깸’과 ‘중얼중얼’
대화: 권태현(독립 큐레이터), 조재연(미술기자), 조태상(모임 별), 이민지(d/p큐레이터), 차지량(작가)
12월 22일 (목) 오후 7시 d/p 전시장
《dream pop》(2022. 12. 1~31)
컨셉, 연출: 차지량
코디네이터: 이민지
협업: 권태현, 금지원, 김수환, 연예지, 오세라, 조은영, 조재연, 황선정, Fairy, HNV, Needle&Gem, Ijo, Ivetta Sunyoung Kang
환경 설정: 드림팝(시각), 정진화(청각), 엄아롱, 최황(인테리어)
주최: d/p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후원: 서울문화재단, 우리들의 낙원상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메세나협회
손배영: 사물, 현전, 투쟁
하이데거는 ‘눈앞에 있음(Zuhandensein)’으로써 현전하는 존재와, ‘손안에 있음(Vorhandensein)’으로써 도구화된 존재를 구별했다. 사물이 도구적 용도로 파악되는 한 존재는 눈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가령 대리석을 재료 삼은 조각은 대리석 계단이 감춰놓은 것을 드러낸다. 일상에서 대리석 계단은 통속적인 부유함의 이미지로 보인다. 그러나 대리석 조각은 작품이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던 물질의 현전을 보여준다.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하이데거는 그렇게 고흐의 구두가 신체의 보호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제 입으로 대지를 발음한다고 적었다. 이 순간 사물은 더 이상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한 출발점으로 남지 않는다. 외려 작품이 사물을 이해하는 장소가 된다. 이 전환은 단순히 예술적 사건을 넘어 우리를 일상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작품이 된다고 해서 언제나 사물이 자유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서술에서 생략된 점이 있다면, 사물이 용도라는 ‘식민’ 상태에서 벗어날 때 동반된 지난한 투쟁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영배의 작품은 그 투쟁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사진은 작가의 개인전 <프로-포즈>(11. 6~27 사가)에 출품된 <하나의 의자 두 개의 다리 세 개의 동그라미>다. 낡은 표면엔 스스로의 용도를 폐기하기 위해서 분주했던 학대에 가까운 투쟁이 포괄돼 있다. 그가 이제껏 편의를 순순히 제공한 것은, 그로써 자신을 가학해 창조자가 부여한 소명(기능)과 갈라서기 위해서다. 그리고 작가는 이 역모에 권위를 잃는 첫 번째 인간이다. 단 한 번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피사체를 놓치는 사진사는, 자신의 무능으로 사물의 독립에 기여한다. 쓸모의 박해를 피해 구르고 질주하며 의자는 비로소 용도로 가득 차 눈먼 세계에 혀를 굴려 침을 뱉는다. 영배가 카메라를 들고 장소를 찾는 동안 의자엔 누구도 앉지 않았고, 치워지지도 않았다. 저 현전하는 존재를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그는 이제 세계를 발음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말을 잃었다.
참조
진은영, 「선행 없는 문학」, 『문학의 아토포스』, 그린비, 2014, pp.57~71.
『아트인컬처』 뉴스레터 postcard_105📬
너의 나_『Flou』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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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 놓았겠지. 너는 무인도에서 출발한 코르크 병처럼 눈을 감고 하루 종일 작은 밀썰물의 애무를 느낀다. 강이 바다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바다는 늘 자신을 향하여 흐르기에, 너는 출발하지 않고서 도달하고, 도착하지 않은 채 떠난다. 부서진 차, 손에 묻은 피, 젖은 신발 그리고 오발 혹은 불발을 예정한 권총 한 자루…. 이다지도 무겁고 끈적이는 운명을 두고 너는 지난 일과 결별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늘 한가운데서 비롯해야만 한다. 한가운데. 뜨고 지는 영원한 자맥질을 통해 네가 알게 된 것은 바다의 너비가 아니라 고락高落이다. 기어이 너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냥 묻어버리겠다는 것인지 하는 마음이 번갈아 밀려왔다 밀려갈 때, 결국 너는 생이란 어딘가 닿는 것이 아니라 체념과 기대를 반복하며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마음 중 어느 하나에 의지해 살 수는 없다. 멀어져서도 가라앉아도 안 되기에 너는 그저 두 마음의 오고 감을 도리 없이 들여다본다.
양방통행로_김효진: 에코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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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지경초 엄상식정목(疾風之勁草 嚴霜識貞木)〉에 숨어 있는 화자는 들판에 서서 초목이 바람에 나부끼는 것을 보고 있다. 직선으로 뻗은 동선에서 벗어나려는 듯 사방을 향해 흔들리는 그들은 스스로가 꼼짝 않고 응시하던 어떤 것에서 멀어지려 한다. 풀이 누웠다 일어나고 가지가 얼고 녹는 반복이, 제목이 지시하는 거센 바람(疾風)과 늦가을 서리(嚴霜)에 의한 것이라면, 이는 통념을 벗어나는 관찰이라 볼 수 없다. 이때 시선은 초목을 제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날씨라는 상투적인 인식 아래서, 바람과 서리가 그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킬 뿐이다. 그러나 김효진은 상황을 달리 명명하고 있다. 그림은 풍경을 고정된 방향으로부터 내쫓는다. 곱지 않은 날씨가 처소에 도착하는 동안, 화자는 ‘바람이 불고 서리가 내린다’와 ‘풀이 눕고 나무가 언다’를 선후관계로 파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가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풀은 바람보다 먼저 눕는 것일 수도 있고, 나무는 서리보다 먼저 얼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작가는 이 풍경을 이름할 때 주객의 방향을 반대로 뒤집어 놓는다. 풀에 도달하는 바람 대신 바람을 좇는 풀, 나무를 결빙하는 서리가 아닌 김을 얼리는 가지. 예술은 통념을 해체하고 거기에 혼돈을 들어 앉힌다. 이 가을의 초목은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
부재중 자동응답_박혜수, 안부: 굿바이 투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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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헤어질 때만 사랑을 하였다. 없다, 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뿐일 때. 나는 사라진 연인에게 가장 성실하다. 이제 일어날 시간이라고 속삭이지 않자 아침을 잃게 되었고, 오늘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아 다섯 평 방안에만 머물게 된 나는 비로소 네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있다. 내가 너를 가졌던 사이 너는 생활의 도구였다. 옷을 골라주고 저녁을 챙기고 야음을 데우는 기계였던 너는, 부재와 동시에 충실한 연인이라는 도구적 현전의 방식에서 사라지기로 결정한다. 그 순간 경첩이 빠진 하루는 종일을 삐걱거리고, 용도 속으로 융해되었던 어떤 그는 첫날처럼 삼킬 수 없는 고체로 나타난다. 사랑의 이름으로 연인을 녹이었듯, 사랑의 이름으로 너를 응고시키어 나의 이마를 건드린다. 사랑이 만남 아래 멀어졌다가 이별 위에 다시 내린다. 사랑이 조건 없는 상태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다행히 이제 네가 없어 나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손안에 없는 연인. 나, 질투 없이도 너를 그릴 줄 알고, 구속 없이도 끌어안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나는 부재하는 연인에 대한 예찬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