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없는 마음

인간의 감정이 결국 물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서글프다. 시곗바늘 대신 심장 소리가 좁은 방을 채웠던 숱한 새벽이 고작 물질 기관의 일이라면, 우리에겐 예술보다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할 향정신성 의약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학량의 개인전 <짱돌, 살구 씨, 호미>(5. 5~6. 5 전주 서학동사진관)를 나오며 서두에 했던 말을 취소하기로 했다. 전시는 제목처럼 소담치 못한 사물의 초상을 화폭으로 옮겼다. 서사도 색면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도 부러 지어냄 없이 오직 사물의 실체로만 구성되는 그림. 그러나 그 실체 때문에 사물은 추상의 낱말보다 마음을 더 정확하게 발음한다. 감정은 개체 내부의 표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주 그리운 누군가에게 물들어갈 때, 함께 있는 동안 그 애틋함에 타일의 먼지처럼 흔들릴 때, 불안이 혓바늘처럼 움틀 때면, 물듦, 먼지, 흔들림, 바늘, 움틂이라는 외부에 놓인 물질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선 마음은 도무지 스스로를 고백할 수 없다. 김학량의 그림은, 말재간 없는 감정이 빌릴 사물을 인간의 사전에 추가한다. 나는 마음 어딘가 이름을 지니지 못한 감정에 짱돌, 살구 씨, 호미를 빌려와 발음해본다. “발견한 사물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사물에게 나를 들켰다.” 작가가 들킨 것은 사물을 닮은 마음이었을 테다. 감정이 물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보다, 누군가의 감정에 정확히 가닿을 수 없다는 말이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든다. 이해받지 못한 이가 있을 때면 예술은 늘 사물의 처소를 찾았다. 그러니 오해를 면치 못할 일이라 해도 헌신을 그칠 리 없다. / 조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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