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_『Flou』 vol.1

신새벽, 임보람, 임지현, 조재연, 황지원, 『Flou』 1, (심동수 발행), 만다린프레스, 2022

1
잊어 놓았겠지. 너는 무인도에서 출발한 코르크 병처럼 눈을 감고 하루 종일 작은 밀썰물의 애무를 느낀다. 강이 바다로 흐르는 것과 반대로 바다는 늘 자신을 향하여 흐르기에, 너는 출발하지 않고서 도달하고, 도착하지 않은 채 떠난다. 부서진 차, 손에 묻은 피, 젖은 신발 그리고 오발 혹은 불발을 예정한 권총 한 자루…. 이다지도 무겁고 끈적이는 운명을 두고 너는 지난 일과 결별하고 새로 시작하고 싶지만, 그런 일은 도무지 일어나지 않는다. 너는 늘 한가운데서 비롯해야만 한다. 한가운데. 뜨고 지는 영원한 자맥질을 통해 네가 알게 된 것은 바다의 너비가 아니라 고락高落이다. 기어이 너를 살리겠다는 것인지, 이냥 묻어버리겠다는 것인지 하는 마음이 번갈아 밀려왔다 밀려갈 때, 결국 너는 생이란 어딘가 닿는 것이 아니라 체념과 기대를 반복하며 파도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두 마음 중 어느 하나에 의지해 살 수는 없다. 멀어져서도 가라앉아도 안 되기에 너는 그저 두 마음의 오고 감을 도리 없이 들여다본다.

어제를 아는 너는 이제 다른 존재다. 이때 너에게 기억은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지니는 것이다. 너는 가장 괴로울 때면 ‘만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다. 언젠가 상대에게 그 말을 꺼냈던 너는 이 부사와 더불어 차마 그 말을 하지 않았던 너를 상정할 수 있고, 그 훼방꾼과 만나지 않았을 너를, 또 사랑하는 이를 더욱 믿었던 너를 그리고 이런 대체를 말미암아 그와 함께하고 있을 가능 세계를 그려볼 수도 있다. 모든 일에 대해서 너는 이 가정의 닻을 진흙 아래 매어, 네가 어제로 휩쓸려 가지 않도록 몸을 고정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이곳에 강하게 들러붙을수록 지난 일은 다음의 결론을 받아들이도록 주선한다. 변치 않기로 했던, 영원을 맹세했던 모든 약속을 너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네게는 사실 사랑이 아주 불가능하다는 것. 핍박받는 공주처럼 기억의 궁전에서 너는 이곳을 나가는 방법을 잃어간다. 네가 만나야만 하는 가장 고귀한 사람. 꽃을 밟지 않으려 뒷걸음질 쳤던, 행복했던 작은 가게가 문을 닫자 눈물을 보이던 그와도 결국 진흙의 맛을 보고 있다.

그러니 정정할 수밖에 없다. 어제를 아는 너는 여직 같은 존재다. 네가 그날들을 투명하게 기억하고 또 앓는 한, 너는 어떤 다른 것도 시작할 수 없다. 하여 어제와 다른 너를 만드는 것은 외려 망각일지 모른다고 말하겠다. 너는 사랑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그것이 가장 고귀한 것과 함께 가장 추한 것을 교환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었고, 너를 어떻게 속수무책으로 무너뜨렸는지도, 용심과 분노 같은 비열한 마음을 품게 만들었는지도 모두 놓아버렸다. 정박한 바다의 바닥은 늘 닻보다 가볍고 무른 흙으로 되어있어, 닻은 스스로를 덮은 이들을 시나브로 허문다. 기억은 진리를 위해 생을 희생시킨다. 기억에 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네 피부 위에 찍어야 한다. 기억은 고통과 결부 않는 한 기억되지 않는다. 작게는 반복적인 읊조림과 필기에서, 너의 신체를 훼손하는 데 이르는 기억의 주입은 트라우마를 활용한 기억법이다. 그러나 보관된 것은 상황이 끝난 후에도 무단으로 침입해 너를 피 흘리게 만든다. 네가 더 잘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겠지. 그러나 이때 너는 미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직면한 현실을 잃고 만다.

언젠가부터 많은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너를 주저하게 만든다. 현명한 자들은 말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천 년을 갈 준비가 되어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고. 또 여태껏 혁명은 모두 전체주의로 끝났으며, 이상을 달성한 적 없다고. 이를 기억한다면 너는 현명함에 가담하겠지만, 반대로 망각한다면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것이 존재가 아닌 존재의 이유를 지키는 것임을 믿는다. 너의 이유는 파도를 헤쳐 도달하는 것이 아닌, 바로 파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많은 망각을 지나왔다는 것이 너를 진부하게 만든다. 너는 같은 말과 글을 반복해 늘어놓는다. 어느 것 하나 지키지 못했음에도 뻔뻔함을 모르는 듯 너는 똑같이 사랑과 혁명을 예찬한다. 너는 더 이상 새로운 주제를 건네지 못할까 두렵다. 그러나 너를 더욱 떨게 만드는 것은 그 진부함 때문에 인색해지는 것이다. 늘 한가운데서 비롯해야만 하는 운명. 새로 시작할 수 없으니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너는 방금 무엇을 발음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사랑과 혁명을 예찬한 적이 있었던가.

2
너의 말이 어눌하지 않은 다음에도, 어미는 별에 맞아 죽은 화가처럼 귀가 어두웠다. 드물지만 자주 너의 말은 움푹 팬 채로 전달됐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말을 들어도 그는 전부를 갖지 못하고 일부를, 더러는 절반을 바람 소리 요란한 밀밭에 던져버렸다. 너의 어미는 삶이 지르는 비명을 듣느라 정작 네 울음은 듣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미는 높아진 너의 언성을 마주해야 했고, 그 때문에 너는 그가 모자라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유년 시절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어미의 기억이, 네가 듣고 아는 바와 다르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너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너는 네가 느끼고 경험하는 세상이 모두에게 같지 않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게 되었다. 너는 어미가 아닌 이에게도 너의 말을 제대로 들었는지 또 그게 너와 동일한지 곧잘 불신하곤 했다. 교복을 입을 나이가 돼서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서로 다른 종례 시간을 기다려주고 함께 집까지 길을 걷던 벗과도 반이 달라지면 아는 체 하지 않았다. 그의 기억이 너와 다를까 봐, 나아가 그가 너를 기억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기억의 층위 나아가 느낌의 층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라는 것. 하여 너는 부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의미를 나누고 싶은 이와 항상 함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멀리 있을 수도 있고, 아직은 현재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언젠가 보았던 것과 느꼈던 것을 온전히 건넬 수 있도록, 그렇게 기억의 일부가 식지 않도록 너는 순간을 동여매야 했다. 그때마다 기억을 조금 더 잘 설명하기 위해, 그래서 너의 인식이 그의 인식과 같아지기 위해, ‘너무’나 ‘무척’ 같은 부사로 갖은 서술어를 겹겹이 덧대었다. 그리던 이의 눈빛은 어땠는지, 구름이 얼마나 천천히 지나갔는지, 풀 내음이 어떤 식으로 주변을 물들이는지. 동사들이 침묵하는 순간을, 기억이 온도를 잃었던 순간을 부사로 이룩하고자 했다. 그러나 너는 세상의 모든 부사를 알기도 전에, 모든 부사를 외운다 하더라도 가닿을 수 없는 시간이 세상에 아득히 많다는 것을 또다시 깨닫고 만다.

유감스럽게도 부사는 너를 구할 수 없었다. 언어가 사태를 객관적으로 재현하고 진실을 투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는 믿음은, 너뿐만이 아니라 상대를 그리고 그곳에 담길 기억마저 아프게 만들었다. 진실이 진정으로 진실이기 위해선 말로 표현되지 못한다. 진실은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부터 지켜져야만 한다. 어린 왕자가 양의 외연이 아니라 양을 은닉한 상자를 보고서야 안심하듯, 인어공주가 비극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하지 않음으로써만 진실한 사랑에 도달하듯, 함부로 진실을 진술하기보다는 진실이 거주하는 구조물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어미 같은 이들을 만났다. 어미라 표현한 것은 그들이 때로는 형광등의 소음에, 때로는 아무도 믿지 않는 소문에 귀 먼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용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쓸모없는 의미를 위해 무언가를 경작한다는 점 역시 그와 닮아 있었다. 그들은 언어를 진실이 표현되는 장소가 아니라 몽폐되어 보존되는 장소라 말했다. 언어이지만 언어가 아닌, 사전에 등록되지도, 필사할 수도 없는 비의秘義들. 그 사물들은 귀먹음과 말먹음으로 진실을 지키는 철책이었다.

어느 날 가까운 이는 네게 전했다. 인간에게서 외로움은 면치 못할 일이라고. 더 없이 함께 있는 동안에도 느끼는 고통과 기쁨은 언제나 온전히 건네질 수 없는 것이라고. 반박에 쓰일 증인도 증거도 마련할 수 없는 너는 결국 이 말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에게 타자로 남기로 한 걸까. 너는 이 물음에 예술의 이유가 간직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르는 것은 늘 많지만 타인의 고독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당연할 리 없다. 네가 지금 아는 것은 네게 지금 속한 것들뿐이라, 네가 아는 슬픔은 그저 너의 슬픔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네가 아무것도 할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다.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영원히 나서야 한다. 가진 언어가 가난해 시로, 시각으로, 멜로디로, 비의로 영영 도착하지 않은 채 영원히 출발하는 그를 너는 알고 있다. 너는 겨우 한 줄씩 나아가기 위해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해야 한다. 너의 말이 어눌한 다음에도, 어미는 별에 맞아 죽은 화가처럼 귀가 어둡다. 외로움에 대해선 여직 아는 게 없으므로 너는 또 말을 잃는다. 인간이 된 지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 고백을 하게 된다.

3
네 가족의 마지막 여행지는 월미도였다. 그때까지는 가족이 함께 살았고, 주말의 시간을 나눌 여유가 있었으며, 두 사람은 손을 잡을만한 애틋함이 흘렀다. 사진의 시간은 그 시절에 멈추어, 너는 수학여행을 다녀오기 전까지 너의 얼굴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알지 못했다. 기념으로 남길 사진을 고르며 벗이 얼굴을 놀려댔을 때야 너는 처음으로 남의 눈에 비친 너를 보았고, 처음으로 네가 싫어졌다. 그 후로 너의 여드름과 곱슬머리, 뻐드렁니에 앙심을 품고 오래간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방을 정리할 즈음 너의 옛 모습을 다시 보았다. 입술로 애써 이를 가린 무표정하거나 뾰로통한 얼굴. 이 사이로 너는 유년의 너와 기억도 나지 않는 가게들을 확인하고, 스쳐 지나간 이전에도 또 앞으로도 알지 못할 사람들을 보지만, 정작 네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는 사진에 남아 있지 않다. 카메라는 네가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배경으로 두고 있었는지를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네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라면 그 어느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진에서 더는 찾을 것이 없어 그것을 내려놓을 때, 그는 너도 모르는 사이 찬 손으로 네 이마를 짚어 너를 겨울 바다로 데려다 놓는다. 타닥타닥 밤이 익어가는 소리,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손을 좇던 갈매기의 위화감, 장난스레 아비의 턱을 만질 때 느껴지던 까칠한 촉감. 그러니까 내가 사무치던 그날들. 그리고 이를 통해 너는 네가 사진 없이도 무엇을 지니고 있는지, 이다지도 너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사진의 변증법은, 사진이 그것에 담긴 무언가를 기억해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보관할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해내게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물질에도 의존하지 않기에 네가 영원히 망각할 수 없는 것. 프레임을 탈주해 피사체와 배경 너머 외부로 스며드는 충동을 너는 거절할 수 없다. 드러난 것들은 공들여 길어낼 필요 없이 늘 그곳에 있는 까닭에 사라진다. 그러나 감추어진 것들은 감추어졌기에 훼손되지 않고 보존된다. 이제 너는 안다. 너는 그때 너로 인해 벅찼던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네 뒤로 밀려오는 차디찬 파랑이 너라는 방파제에 잠시 막혀 기뻤을 두 사람이, 그곳에 있었다.

너는 비약을 하려 한다. 처소의 생이 다한 폐허와 막 탄생의 과정을 겪고 있는 공사장의 모습은 구분되지 않는다. 화면을 보지 않고 읽는 너는, 그러니 막다른 곳에서도 어디든 갈 수 있다. 프레임의 모서리로 향하는 길은 끝보다 더 넓은 처소로 이어질 새 길을, 좁은 하늘은 그다음의 창공을, 장소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이 반복으로 너는 결국 세상의 전부를 길어 올린다. 너는 이해란 해석학적으로 타인과 공동의 지평에서 만나는 것이라는 배움을 여직 기억하고 있다. 현명하지 못한 일임을 의심하면서도, 화면에 목매고 마는 것은 그런 이유를 말미암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너는 너에게 속하지 않은 기억을, 너를 포함해 저마다 고립된 이들을, 프레임을 따라 만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너는 부끄러움을 애써 외면하고 이런 말을 내뱉는다. 이렇게나 사사롭고 도무지 결과를 낼 수 없는 빈천한 기억에 결국에 사랑과 혁명이 도사릴 것이라고. 길은 그렇게나 이어져 있다고. 쓸모, 이익, 법령 그리고 경제. 언제나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들은 하나같이 끔찍한 것뿐 아닐까. 너의 비약에는 이런 변명이 있다.

너는 죽음의 방식을 놓고 내일을 미리 기억한다. 가느다란 목 깊숙한 곳에 편지를 간직한 코르크 마개는, 육지에서 지녔던 단호함과 확신을 잊고 조금씩 조금씩 젖어 든다. 숭숭 구멍 난 나무껍질에 물결이 스며 점점 부풀었다 다시 풀리는 동안, 네 안의 딱딱한 활자도 함께 너울에 젖어가며 점점 물들어간다. 네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네가 아는 일로 흘러갈 때까지, 반대로 네가 아는 일로 흘러와서 네가 모르는 일로 흘러갈 때까지, 내내 너는 바다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아마 바다라면 알겠지.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수평선에 가까워진 산맥이 이윽고 바다가 되듯, 코르크 병도 그 안에 담긴 잉크도 곧 바다가 될 것이라고. 종종 만나는 안개가 무엇의 일부인지 생각했고, 단지 너는 닫힌 바다가, 같은 바다가 없다는 사실로써 너를 다독거린다. 긴 긴 밤. 기억할 이야기가 없고, 기록할 새 지식이 없는 때.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이 모두가 자리를 떴을 거라 떨고 있는 사이. 컴컴한 곳에서 아주 작은 빛이 나오는 순간, 너의 눈빛 그 속에 나는 아직 있다.

참조
맹정현, 『트라우마 이후의 삶』, 책담, 2015.
서동진, 「사진을 읽는다는 것」, 『보스토크 매거진』 1호, 2016.
신형철, 「이렇게 헤어짐을 짓는다」,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18.
———, 「정치적 진보주의와 미학적 보수주의」, 『창비시선』 가을호, 창비, 2009.
———, 「언제나 진실한 것은 오직 고통뿐 」, 『인생의 역사』, 난다, 2022.
진은영, 「기억과 망각의 아고니즘」,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10.
———, 「물속에서 」, 『우리는 매일매일』, 문학과지성사, 2008.
천서봉, 「시네도키」, 『시인수첩』 가을호, 문학수첩, 2014.
최윤, 「집・방・문・벽・들・장・몸・길・물」, 『나의 나』, 책담, 1995.


▲ 비정기 간행물 『Flou』에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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