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인컬처』 2025년 9월호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9월 3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 A&B홀에서 열린다. 20여 개국 화랑 175곳이 참가하는 행사의 주제는 ‘공진’. 예술의 회복력과 공명의 힘으로 지속 가능한 미술생태를 모색한다. 신진 갤러리를 위한 ‘플러스’ 섹션과 차세대 작가 지원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한일 수교 60주년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을 마련했다. /

―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작년과 비교하면 15%가 줄었고, 최근 5년간 가장 작은 규모다. 여기에는 외적 확장보다 ‘질적 내실’을 다지겠다는 새로운 기조가 작용했다. 이러한 전략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며, 페어에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가?
Lee 팬데믹 이후 빠르게 성장했던 미술시장은 이제 조정과 성숙의 단계에 들어섰다. 컬렉터와 방문객의 시각도 한층 깊고 다양해졌다. 키아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시 콘텐츠의 밀도와 큐레이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심사를 강화해 실력 있는 갤러리와 작가 중심으로 참가 대상을 조정했고, 전시 기획력과 예술적 완성도를 평가 기준의 핵심으로 삼았다. 작년 부스의 운영 평가는 물론, 갤러리가 기존에 개최해 온 기획전도 주요 심사 요소다. 작가의 발굴, 육성 실적 없이 대관 위주로 운영하는 화랑은 심사 단계에서 배제했다. 전시 공간의 조화와 작품 배치의 완성도, 그리고 작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역량까지 면밀히 검토했다.
― 이번 아트페어의 주제는 ‘공진(resonance)’. 예술의 회복력과 공명의 힘으로 미술계의 지속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협력 플랫폼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키워드엔 어떤 문제의식이 담겨있고, 실제 프로그램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Lee ‘공진’은 미술계의 다양한 주체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단순히 갤러리와 작가의 관계를 넘어 기관, 미술관, 지역 자치 단체 등이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취지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양국 작가가 함께하는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을 마련했고, 한남, 청담, 삼청동에서 펼쳐지는 ‘나잇’ 행사는 시민과 예술이 직접 교감하는 아트필드다. 차세대 작가를 조명하는 ‘키아프 하이라이트’에는 김정인, 무나씨, 박그림, 박노완, 김아라, 이동훈, 조은시, 홍세진, 유 시아오, 지오프리 피통이 출전한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심사 체계를 대폭 개편해 기존 이사회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 외부 전문가 위원단이 평가하는 더욱 공정하고 전문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나아가 키아프는 미술을 넘어 다양한 예술 장르를 포괄하는 종합 문화 축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세계 유수 콩쿠르를 석권한 젊은 현악 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이 무대에 오른다. 미술과 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예술 장르를 접목해 새로운 관람 경험을 선사한다. 이는 프리즈와 차별성을 드러내는 지점이자, 음악 애호가가 미술컬렉터로 유입될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전략적 시도다. 네 번째 동행 ‘키아프리즈’의 다음은?
― 프리즈 서울과의 동시 개최가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들었다. 2022년 첫 공동 개최 이후 두 아트페어의 협업은 서울을 글로벌 아트허브로 도약시켰다. 그러나 한편에는 키아프가 프리즈에 비해 관람객이 적고 작품 구성의 특색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프리즈와 키아프의 파트너십이 가져온 성과와 남은 과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Lee 프리즈와의 협업은 한국 미술시장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끌어올렸다.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가진 프리즈가 세계적인 컬렉터, 갤러리, 기관 관계자를 서울로 불러들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키아프 역시 국제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키아프는 국내 및 아시아 미술계의 탄탄한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독창성과 로컬리티를 보여주면서 프리즈와 상호 보완적 관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단순히 프리즈를 따라가는 데 그칠 수는 없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고유한 색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것이 핵심 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위해 협회는 아직 충분히 조명되지 못한 한국 근현대미술의 재발굴에 주력하고 있다. 단색화가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았듯, 일제강점기 회화나 한국화 역시 충분히 시장 가능성을 지녔다고 믿는다. 동시대미술 중심의 마켓에서 잘 볼 수 없던 미술사적 작품을 제시해 담론과 볼거리를 확장하려는 구상이다. 키아프가 장터뿐 아니라 한국 미술의 독자성을 세계에 전파하는 플랫폼으로 나아가려면 꼭 필요한 콘텐츠다. 또한 신진 갤러리를 위한 ‘플러스’ 섹션을 강화하며 차세대 미술생태계와 MZ세대 컬렉터 유입을 위한 가교 역할도 지속할 계획이다. 향후 프리즈와의 협력은 긍정적인 방향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 중이다.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 회원 총회 결의로 최종 확정되는 만큼 이 자리에서 바로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문화 가치를 프리즈와 함께 키워나가는 게 목표다.
― 키아프의 브랜딩 방향에 관한 질문이다. 올해 키아프는 창립 이래 처음으로 엑스포시카고에 국내 화랑 20곳이 참가하는 성과를 냈다. 정부에서도 5억 원을 지원했다. 이렇게 추진된 해외 협업의 의의와 기대 효과는 무엇인가? 앞으로도 키아프를 통한 한국 화랑의 해외 진출이나 다른 해외 아트페어와의 협력, 국제 행사 개최 등을 구상 중인가?
Lee 엑스포시카고를 통한 미국 시장 진출은 국내 화랑에게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작품을 판매하는 차원을 넘어, 현지 컬렉터와 직접 교류하며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고 새로운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엑스포시카고가 과거에 비해 다소 약화한 면이 있지만, 한국 화랑이 참여하면서 현장의 활기를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소규모 갤러리의 중저가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이번 참여는 현지 미술관, 대학, 기관 등과의 네트워킹으로 이어졌다. 시카고미술관과 시카고미술대 주요 인사와 미팅을 가졌고, 현지 VIP 프로그램 등의 운영 방식을 직접 경험하면서 새로운 아트페어 모델을 배울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키아프 역시 VIP 프로그램을 보완할 계획이다.
다만 해외 진출은 비용이 만만치 않은 과제다. 부스비, 운송비, 체류비까지 고려하면 정부와 기관의 지원 없이는 현실적으로 지속하기 어렵다. 이번 참여가 가능했던 것도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 덕분이었다. 이러한 지원 체계가 제도화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키아프는 해외 아트페어와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탐색할 예정이다. 아직 특정 대상을 확정한 단계는 아니지만 싱가포르, 타이베이, 댈러스 등 다양한 지역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 최근 몇 년간 한국 미술시장은 2021~2022년 폭발적 성장 이후 다소 조정 국면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금리 인상과 경기 둔화 등의 영향이 있었지만, 동시에 미술전시 관람객과 아트페어 방문자 수는 오히려 늘어나는 등 저변의 열기와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현재 국내 미술시장의 흐름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Lee 동의한다. 거래 규모 면에서는 다소 위축됐지만, 전시 관람객 수와 아트페어 방문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컬렉터 층도 점차 다양해지면서 시장의 저변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올해 초만 해도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화랑미술제 등 주요 행사의 결과를 보면 예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저가 작품 중심으로 거래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소규모 화랑이 의외의 성과를 거뒀다. 물론 고가 작품 판매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술시장은 특성상 단기적으로 급락할 수 있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당장의 경기 상황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컬렉터 층 다변화와 저변 확대라는 구조적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시장의 성숙기, 성장 동력은 세대교체
― 올해 2월 한국화랑협회장 취임 당시 키아프와 화랑미술제 브랜드 역량 강화, 한국 미술시장 파이 확대, 법률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대외협력 강화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협회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추진 중인 사업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린다.
Lee 협회는 현재 화랑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 마련에 초점을 두고 있다. 중소 화랑 지원, 해외 진출 서포트, 교육 프로그램 확대 등을 통해 회원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향후 시행될 미술진흥법과 관련한 제도적 대응에도 힘을 기울이는 중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과 법제화 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세미나와 자문 네트워크를 꾸준히 운영하며 제도권과의 소통을 강화해 왔다. 특히 미술진흥법은 ‘지원’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과도한 규제로 창작과 유통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현행법안에 포함된 화랑업 신고제와 재판매권(추급권) 제도는 협회가 주목하는 쟁점이다. 신고제가 사실상 허가제로 변질되면 영세 화랑의 활동이 제약될 우려가 있고, 추급권 역시 거래 위축과 고객 정보 노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협회는 이러한 제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와 긴밀히 협의해 합리적 시행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울러 ‘작가 발굴·육성’이라는 화랑업의 본질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것도 과제다. 작품 매매에 그치지 않고, 신진 작가를 지원하고 장기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화랑의 역할을 제도 안에 명확히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이 같은 다각도 전략으로 협회는 회원 화랑의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한국 미술시장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나아가 미술계 전체의 성장 기반을 넓혀가려 한다.
― 최근 20~30대 젊은 컬렉터의 미술시장 유입이 두드러진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거래나 미술품 조각 투자 등 새로운 구매 방식도 확산했다. 이러한 신진 컬렉터의 등장이 시장에 가져온 변화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들이 일시적인 열풍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컬렉터 층으로 성장하려면 업계와 협회 차원에서 어떤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Lee MZ세대 컬렉터는 작품의 경험적 가치와 서사를 중시한다. 거래 방식으로는 온라인 기반의 유연한 거래에 익숙한 편이다. 이들의 유입은 미술의 소비 방식을 다양화하고 시장의 활력을 불어넣는 긍정적인 변화로 작용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단기적 투자나 재테크 수단으로 미술품에 접근하는 흐름도 나타나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조각 투자처럼 작품을 유동화, 증권화하는 방식은 미술의 본질적 가치보다는 수익 논리에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한 컬렉터 층으로 성장하려면 작가와의 교류, 화랑·미술관과의 직접적인 네트워킹, 작품에 대한 학습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작품을 ‘돈벌이 수단’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미술’로 인식할 때, 컬렉팅의 장기적인 기반이 갖춰진다. 협회 역시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고, 아티스트 토크, 스튜디오 방문 등의 프로그램을 확대 중이다.

공공성과 로컬리티, 미술생태계의 두 축
― 해마다 젊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와 섹션이 기획되지만, 여전히 신진 예술가가 시장에 안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협회는 신진 작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나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는가?
Lee 2022년 도입된 키아프 플러스는 신진 작가와 신생 갤러리를 조명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젊고 실험적인 시도는 예술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동력이다. 그만큼 협회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한국화랑협회는 작가 발굴과 육성을 사명으로 하는 갤러리를 꾸준히 뒷받침 중이다. 특히 화랑미술제에서 진행하는 특별전 <ZOOM-IN>이 대표적이다. 매년 유망한 신진 작가를 조명하고 시장 진입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진 작가가 더 넓은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노출 기회와 홍보 지원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 한국 미술시장이 서울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아트페어 기간엔 광주비엔날레·부산비엔날레 등 전국의 주요 미술행사와 연계한 ‘대한민국 미술축제’를 진행했다. 이러한 로컬 프로그램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앞으로 지방 화랑의 역량 강화와 미술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한 계획도 고려하고 있는가?
Lee ‘대한민국 미술축제’는 서울을 넘어 전국 주요 미술행사와 협업해 상호 홍보 효과를 높이고, 국내 미술계의 다채로운 흐름을 연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키아프와 화랑미술제에는 지방 화랑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화랑협회는 전국 지부를 통해 지역 미술계와 긴밀한 협력 체계를 유지 중이다. 앞으로도 지역 화랑의 역량 강화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 끝으로 키아프의 공공성 및 사회적 책임에 관한 견해를 묻고 싶다. 키아프는 상업 미술장터를 넘어 문화 행사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여 왔다. 상업성과 공익성을 조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철학은 무엇인가?
Lee 키아프는 상업성과 공공성의 균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글로벌 아트페어와 달리, 한국화랑협회는 비영리 법인으로서 키아프를 미술거래의 장은 물론 사회·문화적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철학은 다양한 실천으로 이어진다. 국내외 미술기관 및 비영리 단체와의 협업, 티켓 없이 참여 가능한 토크 프로그램, 공공 공간을 활용한 야외 전시 등으로 예술을 더욱 폭넓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나아가 서울 전역을 무대로 하이라이트 작가의 작업을 미디어 파사드로 송출하는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도시 전체의 문화 축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궁극적으로 키아프는 한국 미술시장을 견인하면서 동시에 그 결과가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공공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단순히 미술을 사고파는 장터가 아니라, 예술이 사회와 공명하며 ‘공진(共振)’할 수 있는 장을 구축하는 것이 키아프가 지향하는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