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아프 & 프리즈 서울 2023 리뷰
미술계를 들썩였던 글로벌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하 키아프)과 프리즈 서울(이하 프리즈)이 두 번째 동행을 마무리했다. 코엑스에서 9월 6일 개막한 두 행사는 키아프가 10일까지 닷새간, 프리즈가 9일까지 나흘간 일정을 진행했다. 키아프는 8만 명, 프리즈는 7만 명의 입장객을 기록해 작년에 이어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특히 키아프는 작년 대비 15% 증가한 수치다. 키아프와 프리즈의 동시 개최가 국내 미술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역할을 할지,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가 될지 여전히 논란인 상황에서 방문객 증가는 유의미한 변화다. 행사 종료에 맞춰 매출액을 공개해 왔던 키아프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입을 닫았다. 프리즈의 판매 규모는 아예 비공개가 원칙이다. 관계자들은 양쪽의 판매 성과 모두 작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살짝 밑돌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프리즈 매출액은 6,000억~8,000억 원대, 키아프는 그 10분의 1 정도로 추산된다.
두 번째 동행, 성과와 과제는
이번 아트페어가 주목을 받았던 또 다른 이유는 두 행사가 시장 조정기에 들어간 미술시장을 전망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었다. 한국 미술시장은 2022년 처음으로 매출 규모 1조 원을 돌파했다. 2020년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2년 사이 3배가 넘게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술시장 내부의 성장보다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따른 경제 환경의 변화 탓이 컸다. 팬데믹 당시 저금리나 경기 부양 정책으로 늘어난 통화량은 타 자산과 낮은 상관도를 가진 안전 자산으로 몰렸다. 그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미술품이었다.1부동산 대책으로 집값이 오르내리고, 각종 이슈로 코스피 주가가 하락해도 미술품은 완만하게 유지된다. 씨티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 『Citi GPS』에 따르면 미술품과 타 자산의 상관도는 -0.15~0.34 사이다. 이는 헤지 펀드, 주식, 부동산과 비교하면 꽤나 낮은 수치. 나아가 아트프라이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2000년 이후 주식시장은 매년 평균 3.4% 성장했지만, 미술시장은 8.9% 성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미술품은 변동장일수록 더욱 주목받았다. 그러나 잔치는 끝났다. 통화량 증가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각 정부는 출구 전략으로 긴축과 저금리를 내세웠다. 여기에 옥션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그 여파가 아트페어로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2023년 키아프와 프리즈는 어떤 전략을 택했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전 세계 아트러버를 사로잡은 두 아트페어를 심층 진단해 본다.
먼저 국내 최고,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를 살펴보자. 올해 키아프는 총 20개국에서 갤러리 210곳이 참여했다. 작년 17개국 164개 갤러리가 참여했던 것과 비교하면 부스가 늘어난 만큼 더욱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 자리였다. 해외 갤러리는 작년에 비해 3개 늘어 63곳이 참여했고, 국내 갤러리는 33개가 늘어 137곳이 출사표를 던졌다. 국내 아트페어 보도 자료에 공통으로 강조한 관전 포인트는 참여 화랑의 개수다. 많은 갤러리가 참여할수록 볼거리가 늘어나고, 규모가 큰 만큼 잘 팔리는 ‘핫’한 시장임을 인정받는다. 그러나 여기엔 조건이 있다. 부스 수는 어디까지나 행사장 넓이가 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그 선을 넘으면 쾌적한 관람 환경을 해친다. 또 무조건적인 규모 확장보다는 부스전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 물론 프리즈와 비교해서다.
이런 조건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역효과를 낳는다. 그리고 올해 키아프는 이러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키아프는 작년과 같이 코엑스 A, B홀에서 진행됐다.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46개나 늘어난 화랑 수는 그만큼 관람 환경이 비좁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프리즈가 C, D홀에서 같은 면적으로 개최됐지만 참여 화랑 수는 키아프의 절반 정도였던 것과 비견된다. 동선이 복잡하고 부스가 좁아 관람하기도 대형 작업을 설치하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 큰 문제는 규모 확장이 키아프의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항간에는 프리즈가 컬렉터를 위한 아트페어라면 키아프는 회원사를 위한 아트페어란 얘기가 나온다. 협회 기반의 아트페어인 만큼 엄격한 심사보다는 가능한 많은 회원사를 참여시키려는 ‘온정주의’가 작용한다는 시각이다. 키아프의 태생적 한계이기도 하다.
물론 이번 키아프엔 작년보다 작품의 질이나 기획력을 끌어올린 부스도 적지 않았다. 국제갤러리가 솔로 부스로 꾸린 우고 론디노네, 갤러리현대에서 준비한 라이언 갠더 개인전, 가나아트가 기획한 실험미술 중심의 부스전은 국내외 관람객에게 두루 호평받았다. 그러나 아트페어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몇 개의 튀는 갤러리가 아니라 부스전이 전반적으로 일정 이상의 수준을 유지했는지다. 익명의 관람객은 “키아프를 꼼꼼히 살펴보면 결코 해외에 뒤처지지 않는 갤러리, 아티스트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평균을 깎아 먹는 몇 갤러리”라고 이번 라인업을 지적했다. 키아프에서 탈락하거나, 위성 아트페어 키아프 플러스로 밀려난 갤러리에서도 심사 기준을 두고 잡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해외의 유수 갤러리가 포진한 프리즈와 경쟁하는 이상 키아프에 필요한 것은 출전 규모 확장이 아니라 회원사의 원성을 각오한 라인업 선별이다.
키아프의 차별성, 신진 작가&뉴 컬렉터
그렇다고 키아프의 성과가 무색한 것은 아니다. 키아프는 분명 프리즈와 ‘다른 장면’을 만들었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8월 기자 간담회에서 “출품 단가에서 프리즈와 격차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라고 밝히면서 키아프의 차별화 전략을 “신작과 젊고 역동적인 아티스트”로 내세웠다. 프리즈에 고가의 마스터 급 작품을 찾는 컬렉터가 방문한다면, 키아프에선 중저가의 신진 작가나 소품을 중심으로 수요를 견인하겠다는 것. 시장에는 큰손보다 작은 손 컬렉터가 더 많다. 실제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내 아트페어와 옥션의 작품 구매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전체의 70%가 수집을 시작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신진 컬렉터였다. 또한 최근 구매한 작품 가격으로는 3,000~5,000만 원대의 작품이 가장 많았으며, MZ세대 컬렉터의 경우 500만 원 이하에 집중됐다.2‘2022 한국 미술시장 결산 세미나’ 발제 자료집(예술경영지원센터, 2022) 참조. 키아프가 프리즈보다 1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은 데에는 이러한 측면이 반영되었다.
차별성과 매출을 영리하게 연결한 대표적인 갤러리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라리오갤러리는 구지윤 노상호 안지산 등 실험성 있는 영 아티스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여기에 1세대 조각가 엄태정부터 류인 권오상 돈선필까지 한국 현대조각사를 조명하는 기획력도 선보였다. 한편 이길이구갤러리는 콰야 권하나 손정민 등 부드럽고 귀여운 도상을 그린 회화로 부스를 꾸렸다. 유금조 이길이구갤러리 큐레이터는 “젊은층의 관심이 수요 진작으로 이어진 것 같다. 강준영 작가는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좋았고, 아이들을 위한 선물로도 많이 판매되었다”라며 영 컬렉터가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고 있음을 시사했다. 페레스프로젝트는 컬러를 콘셉트로 삼은 전시로 눈길을 끌었다. 출품작과 부스 벽을 스카이블루 톤으로 맞춰 관람객에게 신선한 관람 환경을 선사했다. MZ세대의 해외 작가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취향 저격’하는 전시로 딜런 솔로몬 크라우스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신진 작가가 대거 참여했다.
새롭게 론칭한 ‘키아프 멤버십’ 역시 이러한 차별화 전략을 반영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키아프를 찾는 관람객의 대부분은 신진 컬렉터이거나 잠재 컬렉터다. 따라서 키아프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신규 컬렉터가 유입하거나 성장해 컬렉터층 자체가 탄탄해져야 한다. 따라서 키아프 하이라이트의 골자는 미적 인사이트의 성장을 돕는 강연 프로그램, 미술계 주요 인사와 네트워크를 맺는 파티 초대로 꾸려졌다. 한편 신설된 ‘키아프 하이라이트’엔 반응이 엇갈렸다. 키아프 하이라이트는 부스 참여 작가를 알리고 지원하기 위해 올해 신설된 예술상이다. 현장 심사와 온라인 투표로 이유진(우손갤러리), 리정옥(갤러리Q), 분페이카도(아트프론트갤러리)를 선발했다. 그러나 총 3,000만 원의 상금이 무색할 정도로 홍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로그램명을 인쇄한 간판과 스티커를 부스에 추가했을 뿐, 기획전도 안내 자료도 마련되지 않아 투표 이벤트에 참여하고 싶은 관객도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평이 나왔다. 키아프 하이라이트가 흥행에 도움이 되려면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프리즈, 사활의 포인트는 명품 부스
프리즈는 프리즈였다. 고가의 작품은 아모리 쇼(9. 7~10 뉴욕 자비츠센터)로 갔을 것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프리즈는 초호화 갤러리 군단을 이끌고 입성했다. 피카소, 마티스, 에곤 실레 같은 근대 거장에서부터 필립 거스턴, 다니엘 리히터, 게오르그 바젤리츠 등 동시대 대가의 작품이 말 그대로 고개만 돌리면 나왔다. 이번 아트페어에 출전한 갤러리는 36개국 121곳. 참여 화랑 수로 따지면 키아프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지만, 프리즈가 사활을 건 포인트는 규모가 아니라 전시였다. 아트페어는 ‘거래’의 목적을 띠고 기획되지만, 이를 구성하는 것은 각각의 부스전이다. 다시 말해서 방문이 거래로 이어지려면 작품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시의 ‘맛’이 중요하다. 이 맛을 위해 프리즈 런던팀이 내한해 직접 전시장 동선을 조직하고, 부스별 인테리어를 설계했다. 다양한 전시 방식이 가능한 넓은 부스 구조, 관람객을 배려한 배치와 동선, 갤러리와 컬렉터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휴식 공간 등은 일류 아트페어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특히 올해는 솔로 부스가 눈에 띄게 늘어 보는 맛을 더했다. 솔로 부스는 복수의 작가를 소개하는 일반 부스전과 달리 개인전 형식으로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그만큼 다양성은 작아지지만,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깊이 소개할 수 있다. 인지도가 낮은 작가나 갤러리의 기획력을 부각할 수 있다. 이번 행사에서 솔로 부스의 증가엔 이와 같은 셈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리즈에 블루칩 아티스트가 다수 포진돼 있다고는 하나 해외 갤러리 특성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솔로 부스 중에서도 데이비드코단스키갤러리가 내세운 화가 메리 웨더포드 개인전은 단연 튀는 전시였다. 자연을 모티프 삼은 추상화에 빛을 내는 네온 튜브를 설치한 독특한 구도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수시로 멈춰 세웠다. 실린더의 유신애 개인전도 빼놓을 수 없다. 여닫이식 프레임 구조로 평소엔 닫아두었다가 관람객이 오면 창문처럼 작품을 좌우로 펼치는 전시 방식은 퍼포먼스를 방불케 하는 시퀀스를 선사했다.
해외 갤러리가 한국 작가 작품을 들고나온 것도 인상적이었다. 프리즈가 결국 해외 갤러리의 잇속만 채우고 국내 미술생태계를 망치는 황소개구리가 될 것이란 지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 작가의 해외 갤러리 출품은 좋은 반증이 된다. 부스전에서뿐 아니라 한국으로 브랜치를 확장한 글로벌 갤러리의 한국 작가 영입 소식이 지속해서 들려오는 중이다. 작년 초엔 유예림(페레스프로젝트)이, 올해 9월엔 성능경(리만머핀)과 정희민(타데우스로팍)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번 아트페어에선 프랑수아게발리가 인천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김지혜의 신작을 솔로 부스로 선보였다. 반투명 실크와 나무 조각을 결합해 한국의 고대 제의용 오브제를 재현한 작업이었다. 리만머핀은 이불, 서도호, 성능경 등 한국 대표 작가의 주요작을 공개했고, STPI는 퍼즐 조각을 소재로 삼은 유현미의 신작과 서도호의 작품을 발표했다. 윤형근(악셀베르보르트)과 윤명근, 김구림(가나아트)이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 등장한 것도 큰 화제가 됐다.
빈약한 구성, 불친절한 안내
모두가 프리즈에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부스전은 프리즈의 가장 큰 볼거리이지만, ‘유일한’ 볼거리이기도 하다. 키아프와 합동으로 진행하는 토크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프리즈는 별도의 특별전 섹션을 진행하지 않는다. 솔로 부스조차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방문객은 “프리즈는 대형 작업이 등장하는 야외 특별전이 상징이다. 로스앤젤레스는 《프리즈 프로젝트》, 프리즈 런던은 《프리즈 조각》이 매년 본행사와 함께 열려왔다. 그러나 서울에는 오직 부스전뿐이다. 오직 돈만 노리겠다는 심보 아닌가.”라며 서울 행사의 빈약한 구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작년 프리즈 런던은 아트페어가 마무리된 뒤에도 2달 동안 《프리즈 조각》을 리젠츠공원에서 진행했고, 지난 2월 열린 프리즈 LA는 아트프로덕션펀드가 큐레이팅한 《프리즈 프로젝트》를 행사 기간 공항 야외에서 펼쳤다. 이런 논란 때문일까. 프리즈 CEO 사이먼 폭스는 기자 간담회에서 야외 조각 프로그램 신설을 한국 정부와 논의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장소를 정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서울 송현동 옛 미대관저 부지가 떠오르고 있다.
한편 프리즈의 갤러리 관계자와 컬렉터 사이에서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올해 외국인 방문객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관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 코로나19와 정치적 상황 때문에 홍콩과 타이베이를 근거지로 두고 있던 해외 갤러리나 컬렉터의 관심이 서울로 쏠렸다는 것은 작년부터 언급돼 왔다. 지난 3월 아트바젤 홍콩이 4년 만에 완전체로 개막했지만 관람객은 8만 6천 명에 그쳤다. 2019년과 비교해 약 3천 명 가량이 줄었다. 홍콩 미술시장의 회복세가 더디거나, 그 기대감이 예전 같지 않음을 방증한다. 특히 서울 행사의 외국인 관람객 증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작년 키아프, 프리즈를 찾은 외국인 관람객은 평균 11일 동안 머물렀고, 이 기간에 작품 구매를 제외하고 1인당 평균 782만 원을 소비했다. 일반 관광객과 비교하면 10일 정도 더 짧게 체류했지만 44% 정도를 더 쓴 셈이다. 아트페어의 관점으로 보면 그만큼 구매력 있는 컬렉터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뜻이고, 경제적 차원으로 보면 프리즈가 한국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단 이들 중 미술작품을 실제로 구매한 응답자는 18.8%로 나타났다. 방문 목적 중 작품 구입을 위한 미술작품 감상과 작품 직접 구매가 각각 차지하는 비율이 42.4%, 6.6%인 것과 상반된다. 구매를 염두에 둔 관람객 중 절반 이상은 살 만한 작품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조사를 더 들여다보자. 설문에 따르면 외국인 관람객이 미술품 구매의 활성화를 위한 개선 사항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작가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제공’이었다. 단일 응답은 45.4%, 복수 응답은 59%였다. 작년 키아프, 프리즈 관련 보도 중에서 (프)리뷰와 주요 작가, 갤러리 소개에 그치지 않고 대표 작품 라인업을 대대적으로 다룬 매체는 드물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한글로 제공됐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 해외 컬렉터가 각 갤러리의 면면을 살피기 위해선 도록을 찾거나 공식 웹 페이지, 그도 아니면 직접 부스를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 관람객에게 프리즈는 어떤 환경이었을까. 결론은 내국인 역시 쉽지 않았다. 바로 영어의 장벽 때문이었다. 통역을 담당하는 임시 스태프나 한국인(계) 디렉터를 부스에 배치한 곳도 있었지만 이조차도 없는 곳이 적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몰리는 통에 제때제때 원활하게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키아프의 부스 담당자 절대다수가 영어로 접객할 수 있었던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키아프는 뜨거웠고 프리즈는 차분했다. 단순히 오픈런만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키아프는 젊음과 다양성을 무기로 삼았고, 프리즈는 세계 3대 아트페어다운 고급화 전략을 펼쳤다. 안팎에서 치킨 게임으로 두 아트페어의 싸움을 부추겼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둘의 구도를 경쟁보다는 ‘다름’으로 관측하는 태세다. 사이먼 폭스와 황달성 키아프 운영위원장이 입을 모아 말했듯 키아프와 프리즈는 이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향해 가고 있다. 그리고 키아프엔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한 질적 성장이, 프리즈엔 내실을 다져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과제로 남았다. 두 아트페어에만 과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미술계 전체의 성장 또한 필요하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올해가 미술시장의 거품이 꺼지는 조정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버블 붕괴는 시장 규모를 축소하지만 동시에 이 과정을 잘 견디면 과열된 투기가 냉각되고, 시장 주체와 상품에 옥석을 가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우리의 과제는 지금을 기회로 삼아 건강한 미술시장의 토대를 다지는 것이다.
『아트인컬처』 202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