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화랑미술제, 부산국제화랑미술제, 아트오앤오 개막 프리뷰
오는 4월, 2024년 국내 미술시장의 향방을 판가름할 세 아트페어가 열린다. 화랑미술제(4. 3~7 코엑스),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4. 11~14 벡스코, 이하 BAMA), 아트오앤오(4. 19~21 세택)가 그 주인공이다. 올해 역시 불황이 이어지리라는 전망 아래 각 아트페어는 아이덴티티 강화로 돌파구를 찾는다. 도약의 계절. 화랑미술제, BAMA, 아트오앤오는 과연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시장은 침체를 겪었다. 2022년 전체 거래액이 사상 최초로 1조 원을 돌파한 것과 다르게, 작년 시장 규모는 8천 억원대로 감소했다. 여기엔 국제적인 경기 불황과 고금리 등이 중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내적인 원인도 무시할 순 없다. 무엇보다 9월에 열리는 프리즈 쏠림 현상이 문제로 떠올랐다. 컬렉터는 프리즈의 블루칩 작가만을 기다리고, 갤러리는 9월 행사를 위해 좋은 작품을 아꼈다. 한편 빈번한 미술장터로 형성된 피로감도 컸다. 매해 한국에서 열리는 아트페어는 60여 개에 달한다. 달마다 5개의 미술장터가 열리는 셈. 어딜 가든지 비슷한 작품이 반복해 출품되면서 아트페어는 ‘진부한 시장’이 되었다.
젊음, 로컬리티, 국제성
이러한 상황에서 화랑미술제, BAMA, 아트오앤오는 ‘차별화’를 타개책으로 선택했다. 프리즈, 키아프는 물론 다른 중소 아트페어에서 나오지 않을 작품과 테마를 선보이겠다는 것. 브랜딩을 재점검해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전까지 대다수 아트페어의 세일즈 포인트는 참여 갤러리 규모와 프리미엄이었다. 어느 행사에 가도 ‘역대급 화랑수’와 ‘풍성한 VIP 혜택’이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올해로 42회째를 맞는 화랑미술제는 ‘젊음’을 키워드로 내세운다. 이번 행사의 관전 포인트는 ‘신진’이다. “기성 컬렉터에겐 또 다른 취향의 발견, 신규 컬렉터에게는 미술시장 입문”의 기회를 마련한다. 이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프로그램은 신진 작가 특별전 <Zoom-In>이다. 심사를 통해 10인의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현장에서 관람객 투표로 최종 3인을 뽑아 프로모션을 지원한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포부다. 곽아람 김보경 김한나 송지현 심예지 이성재 이호준 장수익 최명원 최혜연이 최종 라인업에 올랐다.
이에 맞춰 화랑미술제는 독립된 웹 사이트를 구축해 접근성을 높였다. 여기에 도록을 온라인으로 무료 배포한다. 하드카피로만 카탈로그를 발행하고, 내부 작품 노출에 폐쇄적이었던 과거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미술품의 온라인 거래 트렌드와 웹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청년 세대의 니즈를 반영했다. 이 외에도 작가론, 미술경향, 시장 전망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토크 프로그램도 한층 풍성하게 꾸민다.
한편 BAMA의 차별성은 ‘부산의 로컬리티’다. 전국적인 규모의 화랑미술제와는 다르게 BAMA는 부산화랑협회의 회원사를 주축으로 꾸린다. 지역 작가가 대거 포진한 부산 소재 갤러리가 단연 중심이다. 근대미술이 태동하고, 형상미술이 출현했던 고장 ‘부산 미술’이 아이덴티티이다. 여기에 해외와 가교 역할을 했던 항구 도시의 역사를 살려 글로벌 갤러리를 초대하고 국제적 규모로 행사를 꾸려왔다. 올해는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대만 등의 화랑이 참여를 결정했다.
로컬리티가 핵심인 아트페어인 만큼 올해 BAMA는 지역 상생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러한 지역성을 반영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아트 버스 투어’이다. 국제갤러리, F1963, 소향씨어터, 고은사진미술관, 달맞이공원 등 지역 관광지와 예술공간을 순회하며 부산 문화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행사의 파급 효과를 부산 전역에 공유할 예정이다. 지역 갤러리는 물론 부산 미술대학, 지역 가게, 문화 시설 등이 함께 만드는 아트페어를 꿈꾼다.
마지막으로 올해 첫 개막을 앞둔 아트오앤오는 ‘국제성’을 전략으로 삼았다. 라인업부터 참여 갤러리의 과반수를 해외 화랑으로 채운다. 그 대다수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곳이다. 나아가 전시 퀄리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부스비를 획기적으로 낮췄다. 노재명 대표는 아트오앤오 출범의 의의를 경쟁적 성장 효과로 설명했다. “세계의 관심이 한국 시장으로 모일 때 로컬과 글로벌의 밸런스를 맞춰가며 함께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매출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해외의 신선한 아티스트를 국내 시장에 수용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시너지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러한 방향성을 토대로 아트오앤오는 행사의 포커스를 ‘네트워킹’에 맞췄다. ‘토크 앤 디스커션’은 관람객, 갤러리스트가 한데 모여 글로벌 예술트렌드를 공유하는 자리다. ‘스페셜 이벤트’는 미술관과 박물관 등 기관을 섭외한 커뮤니티의 장으로 꾸려진다. 메가 컬렉터의 프라이빗 컬렉션을 주요 관계자에게 공개하는 ‘VIP 프로그램’도 있다. 여기엔 장기적으로 미술시장을 견인하기 위한 고민이 보인다. 아트페어가 단발적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컬렉터와 갤러리, 기관과의 네트워크가 필수다. 컬렉터의 소장품 철학, 갤러리의 트렌드 독해, 기관의 담론 연구가 서로 공유될 때 미술생태계의 선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불황은 경제의 사이클이다. 속도가 다를 뿐, 호황은 늘 침체로 이어진다. 활로는 당장 재정 손실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확장하는 데 있다. 블루칩에 의지한 단타성 마케팅은 결국 레드 오션을 심화할 뿐이다. 올해 세 아트페어의 전략은 과거와는 다르다. 당장에 시장성이 크지 않아도 신선한 작품으로 대중의 눈높이를 올리는 방향을 노린다. 불황의 시대. 그럼에도 봄은 오고 있다!
◼︎ 『아트인컬처』 202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