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차이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인간은 자신을 잃어버린 셈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자신이 아는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하고, ‘차이’를 가진 것에 대해서 함부로 지껄여서는 안 된다. 애틋한 우리는 존중과 인정 말고는 할 것이 남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때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려 한다. 부분은 부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 닿는 운명을 지닌 것이고, 가치와 의미는 한시적으로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지역 그리고 시간의 차이마저 따돌리는 보편적인 필연을 지닌 것이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오랫동안 서성이는 인간처럼 예술도 그렇게 잦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역시 이제는 ‘세상은 이렇다’고 자신 있게 얼버무리는 대신에 ‘내가 보는 세상의 부분은 이렇다’고 또박였고, 누구나 함께 앓고 있는 히스테리 대신에 스스로의 신경증을 진술하는 데 신경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예술은 ‘어떤 것에 대한’ 예술, ‘어떤 것을 표현하는’ 예술 혹은 ‘나의・내게 예술’ 등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부분으로 한정 짓는 선에서 정확하다고 믿는 시간을 인간과 함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가 그저 ‘예술’이라고 이름 짓는 예술이 나섰을 때, 그리고 한 도시의 짧은 시간을 겨우 머물다 떠날 유한한 존재가 이 모든 부분과 유한함을 부정하고, 전 지구별에서 스스로는 어디에나 있으며 어느 때나 있다면서 어떤 수식어구와 한정어구도 소거하고 그저 ‘예술’로 나설 때, 나는 휘청했다. 샌정의 ⟪VERY ART⟫는 ‘어떤’ 예술만이 존재하려는 세상에서, 예술’만(very)’이려 한다.
따라서 ⟪VERY ART⟫는 어떤 서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도, 어떤 것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의미도 탐색할 수 없으며, 이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각 작업에는 그 흔한 이름도 순서도 없다. 모조리 ⟨Untitled⟩로 등록된, 지칭할 수 없도록 주어진 작업들에는 숫자만이 거치돼 있지만, 그것 역시 순서(서사)를 부여하는 서수序數가 아닌 ‘동일한’ 것들의 나열만을 지시하는 기수基數로 읽어야 한다. 이름의 부재와 기수로의 거치는 그들이 구별할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낸다. 호수의 달, 바다의 달, 술잔의 달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눈동자에 비친 달이 사실은 하늘 위 여전함으로 떠 있는 하나의 달이듯 그것들은 구별할 수도 없이 모조리 하나이다. ⟪VERY ART⟫는 그렇게 하나만으로 전부에 닿는다. 작업들은 전체 전시에 대한 구성물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로도 부족하지 않은 전부의 장을 열고, 전부는 하나만이, 즉 예술’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린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각 작업을 구별하지 않으려 한다. 예술이라고 선언하는 예술에게 그것을 구별하고 그것이 어떤 서사나 어떤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것은 그에게 휘청인 글이 할 수 있는 몫이 아닐 것이다. 글은 힘닿는 데까지 하나의 작업들을 다룰 때에도 전부에 해당되는 서술을, 총량을 다루는 서술에서도 하나의 작업에 대해서 서술되어야 했다.
수식어구와 한정사 그리고 어떤 것을 표현하는 데 의존하지 않는 예술은 절대적으로 독자적이다. 그는 심지어 인간마저도, 신마저도 의존하지 않는다. 예술은 기꺼이 인간과 신 없이도 스스로는 존재했을 것이라고 나서거나, 인간과 신의 창조보다 먼저 태어난 것이려고 한다. ⟪VERY ART⟫의 배경에는 일관되게 먹구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아직은 빛이 도착하지 않은 까닭이다. 창조는 ‘빛이 있으라’와 함께 시작했기에, 가장 먼저 도착했어야 하는 빛이 도착하지 않은 곳에서, 색과 점, 선, 면은 이미 도착해있다. 도착한 것들을 수없이 응시하면 신이 앞으로 만들어낼 자연이, 인간이 만들어낼 사물들이 그 안으로 이미 현상된다. 모든 객체들이 오래전에 현상되어있었다. 인간은 창조의 시간이 끝난 이후에야 질료로써 화풍으로써 구별된 것들을 가지고 그것을 모두 모아야만 예술을 규정할 수 있다고 믿거나, 모두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예술인 예술은 없다고 믿어 왔겠지만 얇은 붓질엔 유화도, 수채화도, 서양화도 동양화도 앞서 그날에 휘저어 있다. 그는 아직 운명과 필연을 잊지 않았나 보다. 불가능한 잠에 빠져서도 믿음만으로 별에 닿는다. 나는, 인간은 왜 이리도 작은가. / 조재연
-이 글은 『퍼블릭아트』 5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