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Q, 리정옥 개인전 《기호의 나라》
재일조선인 3세, 여성, 헤이세이 세대, 작가 리용훈의 딸. 그러나 이 중 어떤 규정도 거부해온 리정옥이 두 번째 개인전 <기호의 나라>(5. 17~22 도쿄 갤러리Q)를 열었다. 2018년 한국에서 선보인 첫 단체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경기도미술관)에 소수자로서 개인적인 고민을 풀어냈다면, 신작은 구조와 정체성 문제로 관점을 확장했다. 성모 마리아, 이브 등 고전 회화의 도상을 인용했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 신작에는 백두산, 후지산, 후쿠시마 바다, 방호복, 양복, 저고리, 히노마루 등 국가와 민족 관련 상징물이 주요 대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구상하면서 롤랑 바르트 『기호의 제국』의 한 구절에 흔들렸다. “도쿄에는 중요한 역설이 있다. 이 도시에는 중심부가 있지만 그 중심부는 텅 비어 있다. 이곳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천황이 사는 곳이다.” 공허하고 보이지 않지만, 중심에 있어 덜컥 믿고마는 것. 그에게 텅 빈 중심은 ‘개인’을 얽매는 구조로 작동한다. 리정옥의 작업은 국가, 성, 민족 등 무형의 구조가 그저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개인이 자유로워질 가능성에 접근한다.
대표작인 <태양의 나라>엔 일본을 가리키는 제목과 반대로 화면에 백두산 천지를 담았다. 일본 외에도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태양을 상징으로 사용했듯, 구조 외부에서 고유한 상징이 고정되지 않고 미끄러지는 상황으로 구조의 허구를 재현했다. 화면의 대상 대부분이 색채를 잃어 흰색으로 남은 것은 정체성에 결부된 상징이 휘발된 까닭. 앙상한 윤곽과 질감을 생략한 데포르메로 상징적 공간의 무의미를 표현했다. 한편, 작가는 회화를 무대처럼 설치하고 그 앞에 모델을 세워 실사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배경은 ‘뿌리’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실제가 아닌 배경, 즉 허구의 뿌리 안에 허구를 넘어서는 메타픽션적인 실제 인물이 있다.” 유백의 평면과 달리, 온전한 색을 지닌 인물은 개인이 지닌 자유의 역량의 강조한다.
리정옥 / 1991년 도쿄 출생. 도쿄 조선대 미술, 연구원예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도쿄 에이토에이코(2018)에서 개인전 개최. <헤이세이 미술: 물거품과 잔해물 1989-2019>(교토 교세라미술관 2021), <동시대 예술의 비전-VOCA>(도쿄 우에노모리미술관 2020), <벚꽃을 보는 모임>(에이토에이코 2020),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경기도미술관 2018) 등 단체전 참여. 현재 도쿄에 거주하며 활동 중.
『아트인컬처』 202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