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붕’의 미학 연대하라! 공유하라!_자카르타비엔날레

◼︎ 『아트인컬처』 2025년 1월호

아틀리에 체르마이×선 커뮤니티×오네시스 빈센트 〈Sambil Menyelam Minum Air, Eh Keselek〉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4

자카르타비엔날레가 46일간의 뜨거운 여정을 마무리했다. 자카르타의 대표 아트센터인 타만이스마일마르주키(Taman Ismail Marzuki)와 코무니타스살리하라(Komunitas Salihara), 아트콜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공동 설립한 예술학교 구드스쿨(Gudskul), 사운드 라운지 수보(Subo) 총 4곳에서 개최된 행사는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구성으로 글로벌 미술씬에 반향을 일으켰다. 거시적인 주제, 대규모 설치, 글로벌리티를 내세우며 미술축제의 규모 경쟁이 이어지는 오늘날, 자카르타비엔날레는 정반대로 향했다.

언큐레이션, 비엔날레의 탈중앙화

먼저 이번 자카르타비엔날레에는 주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어로 공동의 쌀 헛간을 의미하는 ‘룸붕(Lumbung)’은, 테마가 아니라 비엔날레 전반을 관통하는 협업 모델이다. 따라서 기획 의도를 실현할 총감독이나 큐레이터도 필요하지 않았다. 작품 심사나 커미션 없이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소통과 협력을 기반으로 전시를 완성했다. 그래서일까, 자카르타비엔날레는 어느 국제 미술전보다 거칠고 즉흥적이었다. 전시 라인업에는 메가 아티스트를 앞세운 명단 대신 자카르타예술위원회를 구성하는 콜렉티브 18팀이 공개됐다. 이번 행사의 작가는 모두 콜렉티브, 즉 협업의 형식으로 전시에 참여했다. 작품은 섹션 구분이나 지정된 동선 없이 무작위로 설치됐고, 전시 정보는 거의 제공되지 않았다. 공연, 영화 상영, 아티스트 토크 등 연계 프로그램은 사전 예고 없이 시작 직전에 발표됐다. 탈중앙화된 방식의 언큐레이션이 자카르타비엔날레를 움직이는 핵심 원리로 작용했다.

테피안 콜렉티브×포럼 수두판당 〈Spotless Future〉 모래, 바위, 플라스틱, 물, 종이, 철, 사운드 가변크기 2024

언큐레이션이란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전시에서 기존의 중앙 집권적 큐레이팅 구조를 해체하려는 실천이다. 루앙루파가 감독을 맡은 지난 카셀도쿠멘타15(2022)가 주제 없는 행사로 진행됐고, 상파울루비엔날레(2016), 베를린비엔날레(2018), 타이베이비엔날레 (2020) 등이 예술감독, 큐레이터의 역할을 축소하고 참여 작가와의 공동 기획을 강조하면서 언큐레이션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큐레이토리얼 자체를 배제한 행사는 자카르타비엔날레가 최초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은 자카르타비엔날레 50년의 역사가 인도네시아의 미술운동과 함께 호흡해 왔기에 가능했다.

자카르타비엔날레가 처음 열린 1974년은 인도네시아에서 신미술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졌던 해다. 전통 미술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실험과 사회 비판을 담은 새로운 표현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작가들은 비엔날레에서 최고 작품을 선정하는 심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주최 측은 이를 받아들여 6회째 행사에서 수상 제도를 폐지했다. 제10회 비엔날레(1993)에는 서구 미술의 장르 구분을 거부하고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을 고유한 카테고리로 내세웠으며, 2009년 행사에는 도시 재생과 지속 가능한 환경을 주제로 예술개입을 도입했다. 팬데믹 시기의 2021년 비엔날레는 ‘행동주의’ 노선을 취하고 프로그램 전반을 사회 실천과 연계한 상징적 사례로 남았다.

아니사 나빌라 카이로/빠당, 수마트라 바라트×루마 치카라맛, 수카부미, 지와 바라트 〈아니사 나빌라 카이로/빠당, 수마트라 바라트, 루마 치카라맛, 수카부미, 지와 바라트〉 혼합재료 1,200×300×300cm 2024

올해 자카르타비엔날레에는 이러한 역사를 한데 모은 아카이브가 메인 공간에 마련됐다. 전시 동선 사이사이에 과거 행사의 주요 장면을 사진과 텍스트로 배열했다. 이 타임라인은 큐레이팅 없이 임의로 제출한 출품작에 맥락을 제공하는 일종의 행간 역할을 띤다. 각 작품은 따로 보면 아티스트의 개별적 표현이지만, 역사의 관점으로 살피면 인도네시아 미술운동을 구성하는 ‘마니페스토’가 된다. 아티스트는 그 의미망을 의식하면서 창작했고, 감상자는 작가가 투영한 미감은 물론,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작품과 연결하며 해석한다. 자카르타비엔날레는 개최 이래로 예술가, 시민과 함께 사회 변화에 목소리를 내왔다. 2021년 자카르타비엔날레의 주제가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었듯, 비엔날레의 역사는 곧 인도네시아의 미술사이자 공동체의 기억이다.

비엔날레는 ‘운동’이다

한편 자카르타비엔날레의 역사가 언큐레이션을 뒷받침한 배경이었다면, 탈중심화가 실질적으로 기능한 요인은 ‘룸붕’이다. 룸붕은 인도네시아에서 농사 후 남은 쌀을 함께 저장하는 공공 헛간을 뜻하는 단어다. 국제 무대에서는 루앙루파가 카셀도쿠멘타15의 형식으로 룸붕을 선정하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일찍이 자국의 미술성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라흐맛 판게스투×살리라 아야투시파 〈Kayu’A〉퍼포먼스 2024

2000년대 초반 루앙루파가 처음으로 이 개념을 예술적 협업과 공유로 번역해 실천했고, 이후 2009년 비엔날레가 도시 재생과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삼으면서 룸붕 정신이 부각되었다. 2015년에는 루앙루파와 그래픽아트 콜렉티브 그라피스 후루 하라(Grafis Huru Hara), 예술교육 그룹 세룸(Serrum)이 이번 행사의 전시장이기도 한 구드스쿨을 공동 설립하면서 룸붕은 인도네시아 예술계의 주요 키워드로 확립됐다.

이번 전시에서도 룸붕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됐다. 첫째로 모든 참여 작가는 개인이 아니라 콜렉티브의 이름으로 참여했다. 라주트케주트, 세탈리 인도네시아, 컷 앤 레스큐, 판나포토 인스티튜트, 켈라스 파기 인도네시아 등은 모두 협업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그룹이다. 주제가 없다는 점에서 대부분 결속력이 약했지만, 이 중에선 리듬과 패턴이 드러나는 작품도 있다. 자카르타는 지구의 해수면 상승으로 현재 가장 빠르게 침몰하는 도시이다. 물과 토지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모티프가 될 수밖에 없다. 테피안 콜렉티브×포럼 수두판당의 장소특정적 작품 〈Spotless Future〉(2024)는 관객이 물소리를 들으면서 맨발로 흙 위를 걷게 해, 주거 불안정성을 상기시킨다. 아틀리에 체르마이×선 커뮤니티×오네시스 빈센트의 〈Sambil Menyelam Minum Air, Eh Keselek〉(2024)는 건물과 연못을 연결한 설치작품으로 지하수 과사용, 탄소 배출, 행정 실패 등 홍수의 다양한 원인을 고발했다. 아디 위착소노의 〈Bertahan, Jakarta!〉(2024)는 범람 지역의 주민과 협업하면서 이들이 이주 대신 고장을 지키며 적응하는 모습을 그렸다.

브레베스 아트딕티브×투드감 커뮤니티 〈Dakor〉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4

이러한 컬래버레이션 방식은 국제적인 연대로도 이어졌다. 〈Our People are Our Mountains〉(2024)는 팔레스타인 작가 그룹과 공동 제작한 영상작업이다. 현지 예술가가 원격으로 에스키스를 공유하고 자카르타 아티스트가 이를 실행했다. 작업 환경에 제약이 많은 팔레스타인의 정치 상황과 운송에 소요되는 물류 비용 및 환경 문제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을 고발하는 내용부터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업 커리큘럼까지 정치와 생계를 아우르는 비디오가 상영됐다. 특히 작업이 집요하게 파고든 어젠다는 ‘토지 공공성’이다. 토지 공공성은 영토 분쟁은 물론 거주, 기후, 식민 등 시대를 관통하는 과제라는 점에서 시의성과 공감대를 인정받았다. 양 그룹은 포럼, 워크숍 등을 기획하며 앞으로도 긴밀히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 외에도 다카, 방콕, 타이베이, 자카르타, 캄보디아, 쿠알라룸푸르 등 6개 도시에서 작가 60여 명이 협업한 〈Curating Topography Trilogy〉(2016~21)에는 각 지역의 현안을 시각화하고 개입하는 프로젝트가 시도됐다.

기획 없는 기획 전시, 누구에게나 열린 참여 기회, 미적 성취보다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실천. 이러한 파격이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었는지 묻는다면, 부정적인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전시 자체의 매력은 희미했고, 완성도가 사라진 자리에 의도만이 남았다. 다만 비엔날레를 만드는 과정이 미술씬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묻는다면, 단연코 그렇다. 자카르타예술위원회장 밤방 프리하디(Bambang Prihadi)는 개막식에서 “룸붕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밝혔다. 전시를 준비하며 국내외 예술가와 시민이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형성했고, 현안을 둘러싼 유의미한 발언과 행동이 자유롭게 오갔다. 오늘날 비엔날레가 단순히 결과를 도출하는 예술축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산하는 ‘운동(movement)’이라면, 자카르타비엔날레는 가장 ‘비엔날레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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