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신예’ 김아영. 그는 조각, 설치, 사운드, 미디어아트를 넘나들며 상상과 허구, 기억과 역사가 교차하는 사변적 내러티브를 구축해 왔다. 최근 작가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뉴욕현대미술관 PS1에서의 미국 첫 개인전, 2025 퍼포마비엔날레 신작 커미션, 한국인 최초 LG 구겐하임 어워드 수상 등 러브 콜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아트리뷰』가 발표한 ‘2025 파워 100’에도 77위로 첫 진입했다. Art는 작가를 만나 그 예술세계의 핵심과 맥락을 파헤치는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배달’을 모티프 삼아 플랫폼 자본주의, 포스트 식민주의, AI 알고리즘 통제 등 21세기 ‘담론의 미로’를 질주하는 고스트 라이더!
- 김아영 개인전 〈Delivery Dancer Codex〉
- 뉴욕현대미술관 PS1
- 2025. 11. 6~3. 16
— 전시 개최를 축하한다. 이번 개인전에는 〈딜리버리 댄서〉 3부작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먼저 이 연작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인 ‘배달’부터 짚어보자. 〈딜리버리 댄서의 구〉(2023)에서 알고리즘에 통제당했던 배달은 이후 ‘시간’을 배달하는 행위로 확장한다. 배달이라는 개념이 어떤 고민에서 출발했고, 어떻게 변주돼 왔는지 듣고 싶다.
Kim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딜리버리 댄서의 구〉를 구상했다.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달이 도대체 도시를 어떻게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흔히 고양이에게는 인간이 모르는 길이 있다고 하지 않나. 배달 노동자의 경로 역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후 〈딜리버리 댄서의 선: 0°의 리시버〉(2024, 이하 〈0°의 리시버〉)와 〈딜리버리 댄서의 선: 인버스〉(2024, 이하 〈인버스〉)에서는 배달 ‘노동자’보다 배달이라는 행위 자체를 조명했다. GPS 이전에는 방향을 어떻게 알고, 어떤 방식으로 이동했을까 같은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근대 이전의 항해술과 항법을 조사하게 되었고, 결국 별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가늠하던 역법까지 다루게 됐다. 아시아는 물론 서구의 시간관, 그리고 여러 지역의 토착적인 시간 개념을 두루 살펴보며 작업을 전개했다. 특히 안타깝게 느꼈던 점은, 근대 이전의 수많은 우주론적 시간 개념이 결국 그리니치 표준시와 그레고리력이라는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극단적인 헤게모니가 아닐까.
— 배달 노동자를 서사의 축으로 설정한 점이 인상적이다. 마르크스가 혁명의 주체로 노동자를 상정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배달 노동자 역시 오늘날의 플랫폼 제국주의의 말단에 있다는 점에서 시대의 모순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인물로 보인다.
Kim 나는 소위 노동계급처럼 저항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불안정한 주체들, 억눌린 서발턴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이들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지만, 동시에 세계에 작은 균열이나 생채기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다. 배달 노동자는 레이팅 시스템의 최하위에 놓인, 매우 수동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도로를 질주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속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팬데믹 시기에 거리를 가로지르며 이동하는 모습은 강렬한 해방감을 상상하게 했다. 그 속도와 이동성, 공기를 가르는 몸의 감각에 매료되었다. 여기에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여성 라이더가 지닌 시각적 매력 역시 중요한 요소였다. 정치·사회적 의미와 신체적 감각, 시각적 매력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배달 노동자는 작업을 이끌어 가는 매우 좋은 모티프이자 캐릭터가 되었다.

사막의 역법, 하나가 아닌 시간
— 에르스트 모는 〈딜리버리 댄서〉 3부작을 이끌어 가는 중심인물이다. 1부에서 에렌스트 모가 알고리즘에 조종당하는 배달 노동자였다면, 이후에는 시간을 배달하거나 차원을 넘나들면서 플랫폼 통제에 맞서는 저항군, 역사학자로 거듭난다. 에른스트 모는 어떤 인물인가. 또 그의 성장은 무엇을 의미하나?
Kim 〈딜리버리 댄서의 구〉에서 에른스트 모는 영문도 모른 채 늘 시간에 쫓기고 통제당한다. 알고리즘이 부여한 역할에 충실한 유닛이다. 그러나 앤 스톰을 만나면서 점차 각성하게 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함께 있고 싶어 하고, 로맨틱한 관계의 가능성까지 암시된다. 이러한 욕망은 사회의 충실한 ‘부속’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규범과 충돌하게 되고, 결국 그 관계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에른스트 모는 앤 스톰을 칼로 찌른다. 이 장면은 현실과 판타지, 시뮬레이션의 경계를 흐리는 방식으로 연출했다. 그것이 죽음을 의미하는지, 성장의 국면인지, 혹은 또 다른 차원의 전환인지는 열어놓았다.
이후의 작업은 그 ‘열림’에서 출발한다. 나는 웹 소설과 웹툰을 정말 좋아한다. 특히 팬데믹 기간에 GL(Girls Love) 장르를 많이 읽었다. 팬픽과 스핀오프 구조에 큰 흥미를 느꼈다. 원작이 독자의 참여로 새롭게 갱신되고, 외전이 끊임없이 생산되며, 같은 인물이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되 정체성을 유지하는 방식 말이다. 이런 서사를 작업에 가져오고 싶었다. 그래서 〈0°의 리시버〉와 〈인버스〉에서는 이전과 정체성은 같지만, 다른 관계성을 가진 상태로 인물이 다시 등장한다. 두 작업의 전제는 분명하다. 에르스트 모는 이미 각성한 존재라는 것. 스스로가 여러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지녔고, 그러면서도 아이덴티티를 유지할 수 있는 존재임을 자각한 상태다. 이러한 설정 아래 수많은 차원을 가로지르는 존재를 추적하며 특정한 시간관을 강제하려는 적대 세력을 상정했다. 일종의 제국주의에 대한 은유다. 이들이 바로 ‘주시관’ 혹은 ‘타임키퍼’라고 불리는 캐릭터다. 〈0°의 리시버〉에 등장하는 인물인 ‘영부’ 역시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이 이름들은 모두 한국 전통 천문학에서 차용했다. 주시관은 시간을 알리는 관직이었고, 영부는 바늘구멍의 원리를 이용해 시간을 관측하던 장치의 이름이다.
— 연작에서 시간을 배달하거나 이식하는 행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거대한 해시계나 천문 장치가 놓인 사막이 주요 배경으로 반복된다. 이러한 장소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나?
Kim 〈0° 리시버〉에 등장하는 사막은 주시관이 자신의 시간관을 다른 세계에 이식하기 위해 머무르는 일종의 중간 지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특히 조각으로도 제작한 해시계는 인도 자이푸르의 잔타르만타르 천문대에서 출발했다. 17세기 자이푸르의 왕이 직접 설계에 참여한 공간으로, 힌두 전통 천문학과 서구의 천문학이 결합됐다. 궁전 옆 넓은 공원에 각종 천문 기기가 흩어져 있는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현지 연구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전통적인 시간 개념에 관한 자료를 공부하면서, 인도가 지닌 시간에 대한 철학과 은유에 매료되었다. 가령 바늘이 연꽃잎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을 찰나보다 더 빠른 시간으로 정의하거나, 세포의 연소나 산소가 타오르는 순간을 시간 단위로 상정하는 방식이 있다. 반대로 수미산에 비단이 스쳐 산이 닳아 없어지는 데 걸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을 단위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극도로 미시적인 시간과 거시적 시간을 동시에 사유하는 방식이 매우 문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이었다.

퀴어성, 생명 정치, 제노포비아 그리고 몸
— 작가의 작업에는 퀴어성, 생명 정치, 제노포비아 등의 개념이 교차한다. 이 개념들이 작업에서 어떤 방식으로 얽히며 작동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Kim 유럽에서 레지던시를 전전하며 떠돌았을 무렵 나는 국경을 넘나드는 삶, 주거가 불분명한 상태가 주는 불안감에 천착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체류와 추방, 보호와 배제 속에서 삶이 관리되고 규정되는 방식, 즉 생명 정치의 문제에 눈을 떴다. 이러한 사유는 특히 〈다공성 계곡〉(2017~19)에서 구체화됐다.
퀴어성 역시 작업에서 핵심적인 축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작가가 퀴어 액티비즘을 전면에 내세워 왔고 또 매우 중요한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 작업은 조금 다르다.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보다는 은근하게 스며드는 쪽을 택해 왔다. 젠더 밴딩이나 젠더의 모호함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블’과 복제라는 주제도 퀴어성과 느슨하게 연결돼 있다. 〈딜리버리 댄서〉와 〈다공성 계곡〉에 등장한 테마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의 동일한 단독 인격으로 존재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클론, 파생 존재, 똑같이 생긴 타자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혐오감이나 삭제 욕망이 어디서 비롯되는가, 동시에 왜 그 둘은 사랑할 수 없을까라는 물음을 던져왔다.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은 서로를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자, 서로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벼랑 끝의 고독한 인물들이다. 이 관계를 통해 동일성과 타자성, 에로스와 배제의 문제를 계속 탐색하고 있다.
제노포비아에 대한 관심은 난민과 만나면서 촉발되었다. 과거 다문화 관련 위원회 활동을 하며 난민을 인터뷰했는데, 그들이 겪은 행정 절차와 교육 과정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 과정에는 많은 폭력과 혐오가 내재해 있었다. 결국 많은 이들이 한국을 떠나 제3국으로 이동했고, 흩어져 사라졌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2세가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린다면, 서로 다른 문화권을 넘나들며 자란 이들이 만들어낼 사고와 감각은 매우 풍부하고 강력할 것으로 생각한다. 생명 정치, 퀴어성, 제노포비아는 이렇게 각각의 관심사로 출발했지만, 작업에서 자연스럽게 얽히며 하나의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 최근 작품에선 댄서와 퍼포머, 액션 배우, 스턴트 배우 등이 대거 등장한다. 지난 11월 뉴욕에서 열린 퍼포마비엔날레(Performa Biennial)에서는 〈딜리버리 댄서〉 연작을 퍼포먼스로 확장한 〈Body^n〉(2025)을 선보였다. 신체를 매개로 한 물질적, 정치적 마찰이 작업의 화두로 떠올랐다.
Kim 상당 부분 본능적인 끌림에 가깝다. 정적인 환경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점점 더 몸을 직접 사용하는 작업에 매력을 느낀다. 내게 재능이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도….(웃음) 그래서 댄서, 무용수, 안무가, 스턴트 배우 등과 협업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졌다. 팬데믹 이전과 초기에는 VR 챗에서 퍼포먼스나 렉처를 진행하거나, 가상 공간을 다루는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러나 팬데믹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무너졌다. 아무리 비물질적 공간과 메타버스,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상상하더라도, 결국 바이러스 하나로 세계 전체가 붕괴되는 상황이 신체의 취약성을 강렬하게 느끼게 했다.
홍콩 M+ 파사드에 상영했던 〈거울미로 속 댄서〉(2025)는 실사 촬영 분량이 가장 많은 작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액션으로 구성했다. 뛰고, 싸우고, 부딪히는 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작업을 제작하면서 홍콩 액션 영화를 많이 참고했다. 특히 성룡 영화에서 도시의 랜드스케이프를 적극 활용하는 장소특정적 액션에 큰 영향을 받았다. 무술감독 김차이와의 협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정호연의 스턴트 배우로 참여했고, 그 작품으로 에미상(2022)을 수상했다. 이번 작업의 액션 안무는 물론 퍼포머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때로는 캐릭터들이 ‘히어로’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에른스트 모와 앤 스톰은 세계와 싸우는 전사다. 쉽게 다치지 않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난다. 그렇다고 이들이 무적은 아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끝까지 버텨야 하는 운명 그 자체다.
작업에 등장하는 신체는 모션 캡처로 만들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여러 스턴트 배우의 동작을 캡처해 하나의 아바타에 결합했다. 한몸에 16명 이상의 모션 데이터가 축적돼 이 신체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내가 관심을 두는 대상은 몸들이 부딪히는 상황 자체다. 로맨스와 적대, 애정과 반목의 경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얽혀있는 기묘한 순간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사리지 않고 수행하는 여성의 몸에 점점 더 끌리고 있다.

자본을 움직이는 모빌리티
— 작가는 AI의 불확실성과 우발성을 작업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AI의 우연성만큼 그 우연이 발생하도록 만드는 조건도 중요하다. 주사위를 던졌을 때 어떤 숫자가 나오느냐보다, 그 주사위가 어떤 면과 구조를 갖도록 설계되었는지가 더 근본적일 수 있다. AI를 다루는 과정에서, 작가가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던 통제 변수는 무엇이었나?
Kim 흥미로운 지적이다. 〈인버스〉에서 처음으로 AI를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2024년 중반까지만 해도 이미지를 영상으로 변환하는 상용 툴(tool)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툴이 나오지 않으면 작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5월 즈음 관련 기술이 등장해 구현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테크디렉터와 함께 한 가지 원칙을 세웠다. 프로포절을 현재의 기술 수준에 맞춰 쓰지 말고, 1년 뒤를 상정해 기획하자는 것이었다. 그 덕분에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었지만, 실제 제작 단계에서는 상당 부분을 덜어내고 핵심에만 집중해야 했다. 기술은 늘 삐걱거렸고, 의도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AI를 다루는 과정에는 수많은 프롬프터와 제작 인력이 참여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어려움은, AI가 인간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안개를 없애달라’, ‘포커스를 맞춰달라’, ‘더 선명하게 해달라’와 같은 요구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재밌는 점은, 이 과정에서 프롬프터들이 AI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리개를 닫아라’와 같이 최대한 주관성이 배제된 기술적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작업에서 가장 철저하게 통제한 변수는 미감이 아니라 인물의 동일성이었다. 〈인버스〉는 세 개의 스크린으로 구성돼 화면마다 미감이 달라도 괜찮았지만, 등장인물의 동일성만큼은 반드시 유지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노드 기반의 생성형 AI 프로그램인 컴피UI(ComfyUI)를 사용해 수많은 파라미터를 조정했고, 인물의 동일성을 확보하려 수백 번의 시도를 반복했다. 그 결과 살아남은 이미지들은 극히 일부였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실패와 왜곡마저 흥미로운 결과로 남았다. 결국 작업은 언제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우발성과 실패, 기술적 한계와 인간의 선택 노동이 뒤섞여 결과가 만들어진다.
— 작가의 작업 전반에는 ‘탈것’이 주요한 모티프로 자리해 왔다. (2011~12)와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2016)에는 선박, 〈트랜스 KMS 레일웨이〉(2012)와 〈레일웨이 트래블러스 핸드북〉(2013)에는 철도가 중심 소재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빌리티가 석유와 식민지, 자본과 제국의 질서를 매개하는 인프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오토바이가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운반한다.
Kim 대상은 달라졌지만, 착취와 유동이라는 속성은 다르지 않다. 20세기의 석유와 21세기의 데이터는 서로 다른 물질이지만, 세계를 작동시키는 핵심 자원이라는 점에서는 닮았다. 다만 나는 이러한 문제를 거시적인 이론으로 정리하기보다는, 미시적으로 감지되는 감각을 작업으로 옮기는 편이다. 빅 테크가 너무 많은 영역을 선점하면서, 개인은 자신이 속한 환경과 기술, 사회의 작동 방식을 더 이상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시스템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여있고, 그만큼 모두가 취약해졌다고 느낀다. 이러한 기술적 불안정성, 즉 테크노 프레카리아트에 대한 관심이 최근 작업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 같다.

도시를 아크로바틱하게 가로지르는
— 당신의 작업은 사운드에서 출발했다. 지금도 사운드가 작업의 중요한 뼈대를 이룬다. 화려한 이미지 이면에서 내레이션과 신디사이저, 배경음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또 초기 사운드작업이 현재의 작업까지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듣고 싶다.
Kim 초기 작업의 대부분은 사운드 매체에 집중했다. 여전히 내레이션은 내가 비교적 강하게 디렉팅하는 요소다. 속삭이는 목소리를 특히 좋아해서, 최대한 힘을 빼고 아주 느리게 말해 달라거나, 숨소리를 따로 녹음해 믹스하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반면 음악적인 요소는 최근 전문가에게 상당 부분을 위임하고 있다.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자 DJ인 D.K.(aka 당 코아 차우)와 지속적으로 협업하고 있다. 그는 앰비언트 음악을 기반으로 아시아 악기와 리듬에 깊이 몰두해 있는데, 자연스럽게 아시아 퓨처리즘을 작업에 녹여낸다. 내레이션과 사운드가 본격적인 설치로 확장된 것은 개인전 〈문법과 마법〉(갤러리현대 2022)이었다. 공간이 잘게 나뉘어있다 보니, 서사를 물리적으로 끌어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마네킹 작업이나 미로 같은 구조, 궤도를 따라 이동하는 설치가 등장했다. 픽션의 요소가 전시장 바깥으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 흥미로웠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현재 구상 중인 프로젝트 있다면?
Kim 〈딜리버리 댄서〉 연작의 마지막 작업으로 비디오 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몇몇 기관이 함께하는 코커미션 형태로 진행된다. 게임의 파이널 스테이지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아이디어의 윤곽만 있을 뿐이다. 다만 에르스트 모가 등장하고, M+ 파사드, 시드니 파워하우스뮤지엄의 커미션 작업에서 구축했던 거울 미로 같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되지 않을까…. 도시를 아크로바틱하게 가로지르는 움직임 역시 중요한 요소가 될 것 같다. 이와 함께 올해 열리는 쿼드리엔날레 루바이야카타르(Rubaiya Qatar)를 위한 새로운 커미션 작업도 준비 중이다.
내게 독서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최근에는 아미타브 고시(Amitav Ghosh)의 『캘커타 염색체』(1996)를 읽고 있다. 말라리아 연구와 대체 서사, 토착 영성주의, 음모론이 뒤섞인 소설로 인간, 기생충, DNA, 전염이라는 주제를 사변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구상해 온 또 다른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다. 10여 년 전, 중동에 파견된 한국인 노동자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홍해에서 잡은 숭어로 회를 먹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기생충이 발견됐다. 이 사례는 학회에 보고되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결합한 형태로 작업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왔다. 인간과 기생충, 숙주와 매개체, 몸을 통과하며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관심은 최근 작업과도 이어진다. 생각해 보면, AI나 플랫폼 이전에도 인간을 움직여 온 것은 늘 외부의 조건과 구조였다. 호르몬, 바이러스, 유기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인간의 행동과 성향을 바꿔왔다는 점 역시 흥미롭다.
— 어쩌면 인간은 모두 저마다의 우주를 품고 전달하는 ‘라이더’일지 모르겠다. 바쁜 현실의 알고리즘을 뚫고 귀한 시간을 ‘배달’해 주어 감사하다.(웃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