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사이드갤러리, 최수인 개인전
최수인은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을 자연에 녹여 풍경화를 그린다. 그가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개인전 《He Gives Me Butterflies. 사랑》(9. 1~10. 7)을 열었다.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빚는 진실과 거짓을 주제로 신작 25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업 초기부터 관계에서 드러난 것과 감춰진 것의 긴장을 형상화해 왔다. 이번 전시가 기존과 다른 점이 있다면 관계를 ‘사랑’으로 구체화했다는 것. 이전까지 특정한 상황을 명시하지 않고 주체와 타자의 보편적인 불화를 간접적으로 비췄다면, 신작에서는 포옹, 입맞춤과 같은 애정 행위로 사랑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나를 떨리게 한다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 솔직함이 요구되는 관계다. 거짓은 사랑하는 사이에서 가장 큰 파괴력을 갖는다. 동료나 가족에겐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진위의 판별이 연인 간에는 무시 못 할 파장을 일으킨다. 진실과 거짓이 강렬한 힘을 갖는 사건. 관계가 지닌 허구성에 천착해 온 최수인이 사랑을 주제로 삼은 이유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감정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은 진실과 거짓 하나만으로 규정될 수 없고 늘 그 둘 사이를 오간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서 거짓으로 혹은 거짓이 진실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전시 제목 ‘He Gives Me Butterflies’는 이렇게 진실과 거짓을 넘나드는 상황을 은유한다. ‘그는 나를 떨리게 한다’로 번역되는 관용구는 표피적으로 사랑의 희열을 뜻하지만, 심층적으로는 의심과 믿음을 끊임없이 오가는 진동을 의미한다. 올해 아트부산에서 사랑과 떨림을 주제로 발표한 〈Shivers(사랑)〉(2023)의 연장선.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몸은 긴장감과 황홀감으로 압도된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또 나 스스로 진실한지, 진실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내 가슴속에 나비는 돌고 있다.”
희극과 비극을 오가기 때문일까. 최수인의 화면은 모순으로 채워진다. 뭉뚝한 필치와 따뜻한 파스텔 톤은 전반적인 그림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지만, 디테일을 살피면 재난과 다를 바 없다. 해일을 일으키는 강렬한 바람, 허리를 누인 나무, 하늘을 삼킨 거대한 구름은 금방이라도 장소를 폐허로 만들 것 같다. 이러한 역설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먼저 작가는 결과 아닌 과정, ‘순간’에 포커스를 맞췄다. 바다가 잠잠해지는 중에 폭풍의 징조가 감지되고, 재앙이 당도한 사이에도 궂은 날씨가 지나가리라는 희망의 실마리가 있다. 작가에게 사랑은 완결이 아닌 흔들리고 굳기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다음으로 부드러운 색조는 비극을 심화시키는 장치이자 감상자가 그림에 다가오도록 만드는 통로다. “마치 축제가 벌어진 것 같은 색감을 쓰고 싶었다. 어느 책에선가 ‘우울을 보여주고 싶다면 농담을 해라’라는 문장을 읽은 적 있다. 너무 슬퍼서 눈물이 마른 것 같은 모습…. 그래야 누군가 다가와 주지 않겠나.” 그래서일까. 참상뿐이라면 외면했을지 모를 시선이 부드러운 색으로 은유된 농담을 따라 깊어진다. 비극을 마주하며 살아갈 용기도, 그것을 이겨낼 희망도 그림에 함께 담았다.
가령 〈Kiss〉(2023)는 충돌하는 파도로 입맞춤하는 연인의 모습을 재현한 작품이다. 하늘까지 치솟은 해일은 핑크빛 혀를 내밀고 서로의 혀를 탐닉한다. 여기서 진실한 것은 두 존재가 추락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했다는 헌신이다. 한 쌍은 상대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면서 영원히 사랑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둘은 그 약속이 거짓임을 예감하고 있다. 파도는 잠시 포개졌다 결국 각자의 해류를 따라 헤어진다. 사랑이 이룩되는 순간이자 이별을 앞둔 순간. 최수인에게 두 찰나는 동일한 장면이다.
〈Bite〉(2023)에 부친 작가 노트는 이러한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작품에서 두 개의 구름은 서로를 붙잡고자 상대의 몸을 깨물지만, 결국 그들이 확인한 것은 각자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최수인은 이렇게 적었다. “마주함과 동시에 물고 싶었다. 그래서 바로 물었을 때, 거리를 느꼈다. 하나의 진실함도 나눌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작가는 이를 알게 되어 편안해졌다고 덧붙인다. 두 구름의 만남은 바다를 향한 폭우로 이어진다. 영원히 머물지 못한다 해도, 머문 순간의 간절함은 해원에 떨어져 영원히 남는다.
한편 이번 출품작의 또 다른 특징은 오줌이다. 〈Pink Pee〉(2023), 〈Peeing〉 시리즈(2023)엔 모두 소변을 보는 자연물이 명시적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는 다른 작품에서 등장하는 물줄기조차 오줌이 아닌지 그 진위를 의심하게 만든다. 농담을 통한 우울의 심화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혼재. 최수인의 구성과 주제가 집약되는 장면이다. 대상은 눈물을 흘리기보다 오줌을 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흔적과 냄새로 눈물보다 더 오래 남을 소변은, 잠시 희극이었다가 긴 시간 동안 비극으로 남는다. 그러나 비극이 끝은 아니다. 파랑(wave)은 노폐물을 연료 삼아 하늘로 도약한다. 노랗고 붉은 그들이 쏟아져 나온 다음에야 바다가 얼마나 푸른지 보였다.
“말과 달리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검열을 하고 계획을 세워도 결국 원초적인 움직임이 기록된다.” 언어에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 있지만, 그림에는 숨길 수 없는 것이 있다. 최수인은 그래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때문일까. 우울을 고백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림엔 희망이 숨지 않고 번진다.
『아트인컬처』 202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