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함께, 스타의 또다른 삶

구혜선 〈무제〉 혼합재료 25×25cm 2017

‘아트테이너’의 전성시대인가. 그 열풍이 미술계에도 불고 있다. 연예인이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아티스트로서 전시를 개최하거나, 컬렉터로서 작품을 구매하고 예술가를 후원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미술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스타의 대중적 파급력 때문이다. 조영남은 1970년대부터 일찍이 작가 활동을 시작한 아트테이너의 원류이고, 그 계보를 나얼 박신양 송민호 이혜영 하지원 하정우 등이 잇는 중이다. 컬렉팅의 경우 소장품을 공개한 몇 엔터테이너를 제외하면 그 규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지만, 창작보다 문턱이 낮은 만큼 알려진 숫자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고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강부자를 비롯해 김용건 고소영 RM 탑 지드래곤 유아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탑과 지드래곤은 세계적인 미술잡지 『아트뉴스』(2019)에서, RM은 『아트넷뉴스』(2022)에서 주목할 만한 글로벌 컬렉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사례는 훨씬 더 늘어난다. 대표적인 인물만 열거하면 폴 매카트니, 실베스타 스텔론, 샤론 스톤, 짐 캐리 등이 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해 왔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는 전 세계 주요 아트페어를 전세기로 찾아다닐 만큼 ‘큰손 컬렉터’이다.

탈장르, 부캐, 문화 자본

아트테이너 현상은 왜 일어났을까.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첫째 원인은 문화 전 영역에 번진 탈장르 현상이다. 장르 간 융합 혹은 번안은 오늘날 창작의 새로운 방법과 정신으로 급부상했다. 향유자 역시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 창작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뮤지션이 연기에 도전하고, 배우가 음반을 내는 일은 이미 일반적인 문화 현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디어아트가 극장, 영화제에서 개봉되거나, 영화가 화이트 큐브에서 상영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임흥순은 영화와 미술을 넘나드는 가장 대표적인 작가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21)에서는 강상우의 단편 영화가 상영되었고, 박찬경의 미디어아트는 전주국제영화제(2011)와 베를린국제영화제(2011)에서 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 외에도 백종관, 오민욱, 정재훈, 요나스 메카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하룬 파로키(이상 영화감독) 김아영 정여름 차재민 홍민키(이상 미디어아티스트) 등이 양 장르를 활발하게 오가는 창작자들이다. 최근엔 젊은 미디어아티스트 추수와 한국화가 박지은이 각각 조용필, 아이돌 그룹 아이브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하기도 했다.

두 번째 원인으로는 ‘부캐’ 현상을 꼽을 수 있다. 부캐는 본래 게임 용어로 메인 캐릭터 이외에 추가로 생성한 보조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이 개념이 확장해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자아를 상징하는 말로 일반화됐다. 창작자의 반전 매력을 보여주면서도 폭과 깊이를 더해준다는 점에서 엔터테이너의 미술 진입 현상을 이끌었다. 특히 창작자가 이전과 다른 장르를 시도할 때 부캐가 등장하는 추세다. 특히 기존의 캐릭터가 새로운 작업에 선입견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지닌다. 솔비와 하정우는 각각 권지안, 김정훈이라는 본명을, 송민호는 오민이라는 가명을 내세워 연예인으로서의 면모와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사례다. 예명을 그대로 사용해 미술활동을 하는 엔터테이너 역시 기존 장르의 주제나 언어와는 선을 긋는 작가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부캐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컬렉터의 경우엔 작가보다는 부캐의 필요성이 떨어지지만, 시장 트렌드를 이끈다거나, 신진 작가를 알리고 지원하는 등 본업과는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피스마이너스 원》 전경 2019 서울시립미술관 본관_지드래곤과 국내외 미술관 14인(팀)이 협업했다.

세 번째로는 문화 산업의 다변화 현상이다. 오늘날 엔터테이너와 관련된 산업은 음반이나 영화, 드라마 등 주력 장르 외에도 굿즈, 팬 미팅 티켓, SNS 콘텐츠, 브랜드 컬래버레이션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엔터테이너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는 브랜드 컬래버레이션에서 연예인의 미술적 재능의 발굴과 연결되는 사례가 두드러진다. 지드래곤은 패션 브랜드와 디자인 협업을 다수 진행했다. 이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주제전 <피스마이너스 원>(2015)을 기획하는 기반이 되었다. 젠틀몬스터의 모델이자 제품을 디자인한 아이돌 제니는 브랜드 팝업 스토어에서 디오라마 조각 <젠틀 홈>(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예술적 안목을 갖춘 연예인과의 컬래버레이션은 브랜드 가치를 증대시킨다. 이 외에도 연예 기획사가 엔터테이너의 프로모션을 위해서 디자인 상품을 기획하거나, 갤러리가 전시 홍보 효과를 노리고 엔터테이너를 초대하는 기획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엔터테이너가 미술씬에 미치는 영향력은 시장과 문화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연예인이 지닌 흥행 보증성 이른바 ‘티켓 파워’은 특히 미술시장에서 큰 파급 효과를 발휘한다. 아트테이너부터 살펴보면 윤송아는 NFT부산(2021) 옥션 경매에서 <낙타와 달>을 1억 원에 판매하면서 국내 아트테이너 중 최고가를 세웠다. 해당 작품은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2014)에 노출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이 외에도 하정우가 지난해 인천아시아아트쇼에서 작품을 2,000만 원대에 판매했고, 솔비가 포커스아트페어런던(2021)에서 완판을 기록했다. 올해 3월엔 서울옥션에 지드래곤의 그림 <Youth is Flower>가 시작가 3,000만 원 출품됐다가, 경매 당일에 입찰자가 취소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연예인 화가의 높은 인지도는 언뜻 작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연예인의 미술활동은 팬층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 미술시장에도 그 여파가 미친다. 엔터테이너의 미술작품이 컬렉팅 입문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컬렉터가 있을 정도다. 나아가 연예인의 작품을 보러왔다가 다른 작가를 알게 되고 구매로 이어지는 사례도 발견된다.

시장 활성화와 문화 보급

엔터테이너 컬렉터의 활동 역시 파급 효과가 크다. 이들의 작품 매입이 작가 혹은 갤러리의 ‘보증 수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톱스타가 수집한 작품은 재판매시 소장 이력까지 ‘프리미엄’이 붙는다. 해외에서는 연예인의 컬렉션이 옥션의 기획 경매로 소개될 만큼 일반적이다. 아트테이너와 마찬가지로 마켓 활성화에 기여한다. 국내에서는 아이돌 태양의 소장 작품인 백남준의 <숫사슴>(경매 최고가 기록)이 방송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된 적 있다. 소유진과 윤승아, 이광기, 강수정, 이요원 등이 유명 작가의 작품을 컬렉션하는 것으로 미술계에 정평이 나있다. 해외에서는 마돈나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컬렉터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엘리자베스 테일러, 엘튼 존, 비욘세와 제이지 부부 등등의 글로벌 스타들도 미술품 컬렉션에 일가를 이뤘다.

권지안 〈humming Letter〉 캔버스에 혼합재료 146x112cm 2022

문화적 측면에서 엔터테이너의 미술활동은 미술감상을 확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스타가 애정을 보인 전시라는 이유만으로 그와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 미술관, 갤러리를 방문하고, 아예 미술사와 작가를 공부하기에 이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급속한 확산으로 시각적 임팩트가 강한 미술작품이 폭넓게 대중에 공유되었다. 아트테이너 작가의 경우 자신이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아티스트나, 그와 비슷한 양식의 작품이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한때 미술계엔 ‘RM이 본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로 나뉜다’는 말이 돌았다. 세계적 K팝 스타로 발돋움한 RM의 미술적 영향력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RM이 방문한 전시 공간은 삽시간에 화제에 올랐고, 관람객이 폭증했다. 해외에서는 비욘세와 제이지가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Apeshit>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것을 계기로 2018년 방문객 수가 30% 가까이 증가한 것이 집계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연례 기획전 개막 행사로 개최하는 갈라쇼 ‘멧 갈라’에는 리한나, 셀레나 고메즈, 티모시 샬라메, 두아 리파 등의 톱스타를 초청해 매년 17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린다.

진짜 예술가는 누구인가

반면 엔터테이너의 미술활동에 논란도 없지 않다. 특히 아트테이너의 활동이 화두에 오를 때마다 그들의 예술적 자질을 둘러싼 우려가 일부에서 나온다. 연예인 작가의 흥행이 인지도에 편승한 과도한 프리미엄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한 평론가는 연예인 특혜와 일반 아티스트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도마 위에 올리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아트테이너에 대한 옹호론도 있다. 유명인의 역차별을 경계하는 입장이다. 연예인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작품을 보아서는 안 된다. 문제의 초점은 예술적 평가다. 그것은 사회적 컨센서스는 물론이고 아트월드의 제도가 결정한다. 미술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오히려 미술은 다양성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 앞선 사례에서 보듯 엔터테이너와 예술가가 공존할 때, 예술의 폭과 깊이는 더욱 넓어지고 창작자와 감상자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다.

Art는 이번 특집에 총 9인의 엔터테이너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창작 세계와 컬렉팅 포인트를 조명했다. 컬렉터에는 소유진 윤승아 강수정 이요원이, 아티스트에는 구혜선 권지안 박기웅 이태성이 참여했다. 이광기는 컬렉터이자 아티스트 그리고 갤러리끼를 운영하는 갤러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작가, 컬렉터, 평론가, 갤러리스트 등 미술전문가의 추천과 논의를 거쳐 엄선한 얼굴들이다. 참여자는 공통적으로 미술활동의 모티프를 ‘자아 발견’으로 꼽았다. 작가의 경우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작품으로 자신의 실존을 표현하고, 컬렉터는 미술품에서 느끼는 감정을 삶의 지평과 연결했다. 구혜선과 이태성은 비슷한 도상을 반복해 표현하는 수행적인 그리기로 내면을 되돌아본다. 권지안과 박기웅은 자신의 대중문화 속 자신의 이미지를 모티프 삼아 화면을 펼친다. 이광기는 자연을 매개로 삶과 죽음, 평화 등 시사적 메시지를 던진다. 한편 소유진과 윤승아는 소장의 키워드로 ‘가족’을 제시한다. 이요원은 명화의 숨결을, 강수정은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의 에너지를 컬렉팅의 기준으로 꼽았다.

별이 꿈꾸는 별…. 새로운 예술적 정체성을 꿈꾸고, 실현해 나가는 스타들이 레드 카펫을 걷고 있다. 캔버스라는 또 다른 무대 위에서 반짝거리는 별. 꿈꾸는 자는 늘 찬란하고 아름답다. 여기 별들의 끝없는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 『아트인컬처』 202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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