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대오_오민수의 설치

오민수 〈아웃소싱 미라클〉 스피커, 모터 외 혼합매체 가변크기 2020

마지막 파업 때 끝까지 싸운 이는
노조 간부가 아니라 연극반원이었다네요
― 심보선, 「예술가들」(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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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가장 구태스러운 질문이 가장 전위적인 예술을 만들어낸다. 오민수의 예술이 그렇게 만들어진다고 느꼈다. 우리에게 그의 설치는 넓은 의미의 ‘참여’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옹호처럼 보인다. 화염병은 예술이 될 수 있지만, 예술은 화염병이 될 수 없다. 둘 사이의 긴장을 포기하면 예술은 사라지고 만다. 이 자명한 명제는 예술이 더는 현장을 찾지 않은 채로도 다툼을 만들어내는 완숙한 닻이 되어주었다. 구체적인 현안은 이제 예술의 대상이 아니니, 예술은 그저 실재에서 물러나 그것을 주조하는 형이상학과 싸워야 할 몫을 갖는다는 것. 건설 노동자의 분신 대신에 인간 소외를 은유하는 알레고리, 구축 당하는 빈민 대신에 폐허의 미학을 건설하는 멜랑콜리적 구성, 정부의 언론 장악 대신 어떤 표현도 가능한 초현실적 세계관의 구축…, 이들은 현안에서 물러나지만 갈음을 통해 총체성에 닿는다. 장기적으로 혁명은 이 총체성 위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동안 우린 미술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 비판이 감미롭게 들리고 가장 안전한 단어로 변모할 때, 창작은 정치를 심미화하는 데 그친다. 혁명을 노래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최종심에 다다를 때까지 예술은 어디서 무엇을 할 것인가. 오민수의 예술은 여기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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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_호상근의 회화

〈화단에 식빵 두장〉 종이 위에 연필, 색연필 420×297m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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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상근은 일상의 관성을 그린다. 일상 혹은 삶의 의미에 대한 골치 아픈 질문을 작가는 존재에 대한 찬가로 돌파한다. 그의 회화는 늘 거리 어딘가에 있다. 여기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둘기가 도로를 거닌다, 카트가 쓰러진다, 눈이 날린다, 타올이 마른다, 당근이 썩어간다…, 그렇게 일상은 반복된다. 작품은 반복의 발견이고, 그 발견은 또 다른 발견을 더해 나가면서 ‘이러한 존재 형식은 어떤가’라는 제안이 된다. 우리는 일상의 어느 한구석을 노려볼 때 특별함과 만나고, 오늘을 어딘가의 비극과 비교한다면 하루의 소중함을 더욱 깨달을 수 있다. 신앙으로 비롯된다면 아름다움은 끝이 없을 테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해서 예술이 아닐지도 모른다. 호상근의 회화가 당연했던 적은 없다. ‘일상에는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작가가 준비한 대답은 이것뿐이다. 질문의 층위를 삶이 아니라 존재로 바꾸면, 존재가 긍정되는 데에는 의미는 필요치 않다. 존재하니까, 계속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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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이여, 다시 한 번_황예지의 사진

황예지 〈마리아〉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40×60 cm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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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서정’이 있다. 서정은 이제 충분하다는 얘기다. ‘일상’이라는 터전, ‘내면’이라는 수단, ‘자연’이라는 이상을 꼭짓점 삼은 삼각형에 안착한 서정은, 더 이상 스타일이기보다 메커니즘으로서 소진된다. 주변의 사소한 존재를 돌아보고 보듬는, 그로써 진부한 하루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감동을 낚아 올려 깨달음에 도달하는 서정의 논리는 미술 안에서 형식으로서 반복되거나, 혹은 미술 그 자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다음에도 삶은 도무지 특별해지지 않는다. 서정 위에서 깨달음이 도덕적으로 선하거나 미적으로 아름답기는 쉬워도 위협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삶의 진실은 그러니까 진리는 늘 위협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자아는 진리를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삶을 새로이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놔두고, 미처 자아가 눈치채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될 뿐이라며 진실로부터 물러서는 것. 그러니까 세계엔 잘못이 없고 그저 자아의 깨달음이 문제였다는 헌신적이다 못해 숭고한 반성의 점철. 이때 서정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을 확인하고,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향유하는 것으로써 부조리와 동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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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미술, 사물 스스로 그린_게리 코마린: Landscape wit a Cup

게리 코마린, 〈Cake, Stacked, Green on Blue〉 캔버스에 에나멜 패인트, 수채 129×120.5cm 2022

내 그림은 사전 구상 없이 진행된다. 무엇을 그릴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 그린다. 가장 훌륭한 그림은 가장 많이 실패한 그림이다. 그림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게 되어, 화가인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할 때, 바로 좋은 상태이다. 나의 목표는 그림이 스스로 그려지는 것이다. ― 개리 코마린

개리 코마린(Gary Komarin)은 사물의 잊혀진 얼굴을 그린다. 그가 풍경에서 대상 사이의 고리를 풀어내고 느슨한 자욱만을 비출 때, 그리고 오브제의 섬세한 겹 대신 앙상한 윤곽으로서 그 낯만을 드러낼 때, 우리는 사물이 어떤 얼굴을 띄었는지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대다수의 화가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무엇을 그리려고 하는지, 또 어떻게 그리면 되는지…. 그러나 그런 그림은 아름다움만을 간신히 거느릴 뿐 진실을 담지 못한다. 코마린 회화의 매혹은 그가 대상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 있다. 자신이 지금 어떤 것을 포착했고 느꼈으며 그렸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고백. 누군가 예술이 진실을 표현해야 한다고 했을 때, 코마린은 예술이 진실을 표현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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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서의 정거장_2023 대구권 미술대 연합전 PLATFORM

2023 대구권 미술대학 연합전 《PLATFORM》(기획: 박천)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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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의 작가와 그들을 엮은 18개 주제전. 대규모 전시를 정거장(platform)에 빗대는 것은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의 키워드로는 도무지 꿰뚫을 수 없는 저마다의 풍경이 있고, 각자의 목적지를 지닌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장소에서 플랫폼보다 더 나은 비유를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 배후에 이들을 싣고 나르는 ‘기차’가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이곳이 그저 꾸러미에 불과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마르크스는 1850년에 “혁명은 역사의 기관차”라는 명제를 제시했고, 3년 뒤 미셸 슈발리에는 철도 건설을 “몇 세기 전의 교회 건축에 비견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잔 벅모스는 이 시기를 “철도는 지시물이었고 진보는 기호였다. 공간적 운동은 역사적 운동과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기에 철도와 진보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았다.”(『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1989)고 정리한다. 이처럼 19세기 이래로 기차는 진보의 은유였고, 진보는 모더니티의 이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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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원더랜드_박서영: 바흐티노프 마스크

박서영 기획전 《바흐티노프 마스크》(11. 7~26 부연, 옹노) 전시 포스터(디자인: 정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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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골목길의 조각난 보도블록처럼 매일 발견되는 사물의 시체, 터진 내장 위 그려진 어김없는 발자국. 우리는 인류의 진면목을 본다. 이 인류는 사물을 두려워한다. 인류를 대신해 죄를 저지르는 것에 대하여, 또 대신 병을 앓는 것에 대하여, 그리고 마침내 대신 죽음을 맞는 것에 대하여…. 인류는 영원히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자연스럽게’ 부인하려 하지만, 사물의 논리에서 고지서는 어떻게서든 도착한다는 걸 그들은 ‘애써’ 알고 있다. 인류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사물이 인간을 ‘대신’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대체’하고자 창궐해 왔다는 것이다. 외부에 대한 무상無常과 내적 자유, 올림피아의 신이 누렸던 것과 같은 이상理想의 개념이 요구하는 것은, 이 순간 인류보다 사물에게 가장 충실하다. 인간이 절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류의 멸종을 막아야 할 간절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그 답은 세계가 지르는 비명에 저 값의 유예만큼 가려질 것이다. 《바흐티노프 마스크》. 전시는 그렇게 그쪽으로 걷는 것 외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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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환해지는 순간_류주영: Dear Summer,

류주영 개인전 《Dear Summer》(10. 27~11. 18 아트사이드갤러리)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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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달이 수풀에 던지는 열네 번 무감한 입맞춤. 그리고 문득 가장 구체적인 어둠이 온다. 술과 피 섞인 그늘에 잠겨있던 초록 사포는 서로를 찌르면서 자라났다. 죽은 핏줄의 흰 목을 마지막으로 만질 때처럼 서걱거리는 결과 질감은 시간에 비추어 봤을 때 수상한 기색이 없다. 모든 이들이 귀 기울일 필요가 없었으므로 닫힌 대지처럼 굳게 입을 다물어야 할 때. 하지만 허기에도 낮이 처방해 준 수면제를 한 번도 먹지 않은 입술은 이내 피어나는 것을 피하지 못한다. 그러니 희망은 외로운 것이고 절망이 정직하다고 믿는 나는, 어둠을 절망의 권리로 허락하지 않는 작가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야 했다. “가장 우울하고 암울한 시간 속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은 세상이 참으로 상냥하다는 것이다. 세상은 ‘삶은 때로는 힘들고 슬프고 우울하다는 것’을 상냥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저 세상이 상냥하다고 했더라면 절망의 권리로 항변했을 텐데, 절망을 건네는 온유함 그래서 그것으로 희망을 길어 올리는 것이라면 도무지 저버릴 길이 없다. 희망에 관한 표현이 언제 틀린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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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웹진 퐁』 대담_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조재연×엄제현의 티티카카⟩ 연재를 알립니다. 『비평웹진 퐁』에서 진행된 본 기획은 미술전문지 『아트인컬처』의 2023년 3월호 특집 「동시대미술의 뉴 웨이브: 영 큐레이터 35, 힙 토픽」에 집계된 주제와 키워드, 작품을 유람합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 혹은 『퐁』 웹사이트(www.pong.pub)에서.

❶ 테크놀로지
❷ 정체성, 인간
❸ 친환경, 매체
❹ 현실 참여
❺ 작은 이야기

얼굴 하나야_김인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김인혜 개인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5. 19~6. 1 갤러리TYA) 전시 포스터(디자인: 장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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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얼굴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발그스름한 물결 위를 떠돌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너의 낯설었던 낯은 눈부심으로 띄워졌다가 해석을 향해 흘러가고, 그 무게가 익숙함으로 젖어갈 때쯤 응시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니까. 둥근 이마와 굴곡진 코, 눈동자의 깊이는 진부해진 이후 더는 낱낱이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가면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서 녹고 마침내 속살이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났을 때. 눈먼 나, 젖은 손가락으로 기쁨과 슬픔 그리고 노여움과 환희의 주름을 읽게 된다. 그리고 거기엔 더 이상 어떤 진부함도 남지 않는다. 외려 있다, 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의문뿐이다. 어째서 눈은 호수가 아니고 눈인지. 내민 뺨은 밀어내기보다 어떻게 수렁처럼 나를 끌어당기는지. 균형을 잃은 낙하산처럼, 때로는 표류하는 뱃머리처럼 능선과 그것을 어르는 노을 사이에서, 제자리에서 길을 잃는 나. 이제 모든 것이 생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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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모래 모래_차지량: dream pop

《dream pop》(2022. 12. 1~12. 31 d/p) 아티스트 토크 ‘꿈/깸’과 ‘중얼중얼’ 전경

밤이 가장 길었던 밤. 바다를 쏟는 사막에서 지느러미가 바삭이는 붕어,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를 두고 우린 별처럼 웅성거렸다. 부자가 되는 행운에 대해서 말했고, 유전을 찾느라 모래에 새긴 발자욱과 서풍에 잠긴 길을 돌이켰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진짜 아버지는 어둠 후에 잠 말고 어떤 시간이 있는지 몰랐으므로, 혹은 손톱과 머리칼 이외에 물려줄 게 없어 오늘 말한 그런 저택의 주인은 될 수 없을 거야. 부서지기 전에도 처분할 수 있는 가구, 헤어진 연인과 동시에 내쫓을 수 있는 집기로 채워진 사물의 집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그래도 좋다. 우리는 허름한 가게가 문을 닫는 것만으로도 눈물짓고, 온 세상 대신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더라도 축하해주며, 둥글게 모여 앉아 투명한 모닥불을 소리로 이룩하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 우리가 최근에 알게 된 가장 가난한 이는 🦋였다. 그는 허구 속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하는 사람이다. 그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가난했다. 모래성이 어떤 모래가 되고 다시 다른 모래로, 처음이 되는 과정을 가질 뿐인 그 이름. 아름답고 반짝이지만 그 안에서 살 수 없고, 한순간 무너지며 모래로 응결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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