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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피고인석에 앉았고 곧 판사가 들어온다. 이제 재판은 시작된다. 그런데 판사가 기침을 참기 위해 수건으로 입을 가리는 모습이 시야로 들어온다. 아뿔싸, 판사가 감기에 걸렸던가. 이번엔 판사가 배를 어루만진다. 젠장, 판사는 오늘 점심을 거른 것 같다. 그는 재빨리 그의 변호인에게 속삭였다. 판사는 독감에 걸린 게 틀림없으며, 저 꾀죄죄한 피부를 보니 잠도 못 잤을 것이다. 그 때문에 입맛이 없어 점심까지 걸렀을 것이 분명하다. 독감에 걸리고 점심도 안 챙겨 먹은 판사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니 혹시 몸은 괜찮은지, 점심은 드셨는지 물어보라. 변호인은 애써 그의 고객을 진정시켰지만, 결국 그는 그의 예상대로 재판에서 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정의로운 법 집행을 위해서 모든 율사(律士)는 재판마다 건강검진과 수면 체크와 의무적인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운동을 하기로.
그리고 세계에서 겨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판사를 사적인 생활을 가지며 식사와 건강 따위를 걱정해야 하는 실존적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그 존재는 우리에게 걸어 다니는 법전이거나 기껏해야 숨을 쉬는 법의 화신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마주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렇게 나타난다. 커피숍의 알바생은 걸어 다니는 커피 머신일 뿐이며 은행 창구 직원은 숨을 쉬는 ATM기 등등으로, 우리에게 인간은 그저 살아있는 사물로 현상(現像)된다. 우리는 그 사물에 엔간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으며 당연히 안부를 묻지 않는다. 이는 다분히 정상적이고 ‘이성’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세계는 유지되며 우린 그렇게 유지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타인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 건강과 식사를 점검하는 불필요한 물음과 의심을 두고 살아야 할 테니, 효용과 효율이 미덕인 세계에서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