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임을 안고

가난한 재능에 부끄럼 짓고 듬뿍 불안하고, 또 내내 제 글이 불편하던 날들 안에서 이제는 자그마치 저를 기쁘게 믿을 수 있는 계기가 생긴 것 같아 기쁘고 감사합니다. 칭찬보다는 늘 절실했던 다독임인 양 못내 뭉클했습니다. 이 다독임을 푸근히 꼬옥 안고 살고자 합니다. 자 앞으로도 공백 앞에서 설레기를, 잘 버티겠습니다.

다른 곳에 먼저 적었던 소감입니다. 못내 수줍어 길게 적지는 못했습니다.  참 많은 선생님들, 철학자들, 동료들, 글들, 지금 여기의 상황들 그리고 심지어 적들의 말까지도 이 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함께 세계를 마주 섰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수줍게 기다리던 『GRAVITY EFFECT』 5호 TECHNOLOGY가 나온 까닭에 블로그에 옮깁니다. 「사뭇 지속하는 다툼」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2018년 12월 13일부터 2019년 2월 24일에 열렸던 전시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송가현 기획)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걱정을 각오하고 폭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TAKE A MEMO 02

“조금 아는것은 위험한 것이다. 깊이 마시지 않을 거라면 피에리아의 샘물을 맛보지 말라.” 알렉산더 포프는 그의 장시(長詩) ‘비평에 대한 에세이’(An Essay on Criticism, 1709)에서 그렇게 말했다. 많이 아는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모름마저도 알기에 더 알려고 노력하겠지만, 조금 아는 사람은 그가 다 안다고 생각해서 더 알려고 하지도 검증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다. 포프는 그것을 취한 뇌라 불렀다. 그래서 말은 더 커지고, 행동은 거칠게 실현된다. 그러다 이윽고 타인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참 오랫동안 조금 알았기에, 다 아는 사람인 척했던 나는 지금까지 많은 상처를 주었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기억에 끈질기게 머무는 부끄럼과 죄는 「민영아 어디서 잤어」라는 글을 쓴 것이었다. 나는 상처를 낸지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른지도 모르고 글을 쓰고선 정말 오랫동안 자랑스러워 했다.

글에는 ‘민영’이 등장한다. 민영아는 글에서 대상으로 삼았던 ‘민영화’의 의인화였다. ‘민영’은 당시 유행하던 노래였던 산이의 「어디서 잤어」와 접촉되 하나의 패러디식의 글을 구성한다. 그리고 「어디서 잤어」의 미소지니를 계승하는 것과 별개로 미소지니를 재창조하고 반복한다. 이 위에서 여성은 권력적 제물과 폭력의 대상을 지나 윤리적으로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혹은 미소지니 안의 여성을 경유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없는 비판이라면 그것은 옳은 비판도 타당한 비판도 되지 못한다. 타당한 정치 비판이 있어야할 자리에 풍자와 해학이란 위선적인 허물을 뒤집어쓰고, 그곳에 여성을 소환하여 비판의 부재에 대한 알리바이를 해명한다. 권력을 여성으로 만든 뒤에야 가능했던 오물같은 비판은 결국 글쓴이의 무능력으로 미소지니를 재생산하고 그로써 위축된 성을, 상처받는 이들을 만들어내고 그런 구조에 기여했다.

그러곤 한참동안 기뻐했다. 심지어 참담하고 악랄한 것은 이 블로그에 「TAKE A MEMO 01」란 글처럼 그것을 내 글쓰기와 사회에 대한 태도에 준거점이자 능력의 증명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폭력은 정의와 같은 대의나 선의와 결합되었다고 믿어질 때 제일가는 악을 낳는다. 특히 그것이 구조적 폭력일 때 그 악취가 은밀히 오래가는 법이다. 조금 아는 사람이 쉽게 쓴 그 글은 그래서 변명의 여지가 없이 위선적이며, 비겁하고, 무능하면서, 악랄하다. 그것을 뱉는 나다. 이글 내내 맘에 드는 문장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숨기려고하거나 주저하고 있는 그것을 뱉는 나다. 아마도 그날의 나와도, 흐르는 나와도 악수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망록은 지금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나중에라도 풀기 위해서 남기는 글이고, 참회록은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기 위해서 쓰는 글이다. 앞에서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은 스스로의 모름마저도 알기에 더 알려고 노력한다고 썼다. 지금 나는 조금 아는 사람이지만 그 위태로움을 알기에 많이 알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를 참회라고 하기엔 깨달음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다. 이글을 참회록이 되기위한 비망록으로 남긴다.

당신은 이제 병이 깊었나,

“또 희망이란 말은 간신히 남아 그 희망이란 말 때문에 다 놓아버리지도 못한다, 희망이란 말이 세계의 폐허가 완성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렇게 김승희 시인은 희망이 외롭다고 쓴다. 희망은 좀처럼 드물게만 놓여있어서 외롭고, 또 그것 때문에 맘 편히 망가져버리지도 못해 외롭다는 것. 그래서 비로소 광장이 된 거리가 제공해주는 것은 징후나, 미래따위의 낱말이 아니라 차라리 절망같은 희망이다. 광화문 끝까지 희망은 드물고, 드물게라도 있어 누구도 맘껏 기대하지도, 맘껏 절망하지도 못하는 어딘가 얹힌 것 같은 낯으로 우리는 서있어야 한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낱말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살리려는 것은 그것이 앞으로의 좋은 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낯들은 희망을 마련하고자 ‘지날’ 시간에 헌신한다. 그렇게 시인의 끝맺음대로 기꺼이 “희망은 종신형이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영원히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 발제

지금 예술이 때때로 쓸모 없거나 침묵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기. 우리가 비록 서로를 의심하고 때때로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할지라도 그러니/그래도/그러므로 “영원히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

한 줌의 지식을 가지고 발제를 맡게되었습니다. 오는 30일, 경의선 광장에서 “영원히 예술을 포기하지 않기: 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입니다.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그래봤자 자본론 – 그래도 자본론 그리고 김수행

몇 개나 되는 혁명이 실패하고 얼마간의 변덕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자본이나 자본의 밖에 대한 말들은 언제나 드물게만 물음됐던 것 같다. 그 얼마동안 우리는 그것의 모순들을 마주할 때마다 젠체하듯 또 참신하고 세련되고자 애쓰듯 근대성이니 신자유주의니 하며 그의 이름을 애둘러 피해갔다. 하지만 그간의 우회가 일부의 정밀한 풍경을 묘사했을진 모를 일이지만 그것이 단 한번도 전체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리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결국은 한사코 자본론과 자본주의란 이름으로 돌아온 그간의 기억들을 우리는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될 이런 애두름과 귀환의 몇번의 번복에서도 선생은 언제나 더할나위 없이 언제나 탕아를 맞이하듯 또 홀로 싸우며 열성적으로 그 자리를 지켰다. 그래서 못나도록 자주 그 이름을 잊지만, 오랫동안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렇지만 필연적으로 그는 오래 기억될 것이고 오래 기억하고싶은 선생이었다. 그래봤자 자본론 – 그래도 자본론 그리고 김수행이 있었다.

TAKE A MEMO 01

11년 10월 16일, 월가 점령 시위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68혁명을 언급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 달라. 여러분은 수십 년 후 맥주나 홀짝이면서 ‘그때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웠지’라고 말하지 말아 달라.” 그는 그곳에서 대중들과 작게는 변하지 말 것을 크게는 더러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지기를 약속했다.

저 약속을 때때로 상기할 때면 작년 이맘때 즈음이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철도 민영화 이야기로 열을 내고 있었다. 단순한 어떤 대상이 존재하는 투쟁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안부를 물으며 스스로를 반성에 열을 냈던 시기였다. 그동안의 구태한 운동 방식을 정면에서 고치려고 했었고, 침묵과 외면이 부끄러워 남몰래 새벽에 대자보를 붙이고 사라졌던 우리에게 그전으로는 절대로 방향을 돌릴 수도 복구시킬 수도 없던 ‘사건’같은 시기였다.

나도 대자보 한편을 썼더랬다. 운이 좋아 화제가 되었었고, 미디어에서도 여러 번 보도가 됐었다. 너는 왜 안 나가냐라고 액션을 강조하던 친구에게도 이게 나의 운동이야라고 오래간만에 반박할 기회가 되기도 했던 때였다. 그건 정말 나의 운동이었다. 마르크스가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그 운동. 그때 나는 글이 그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떤 달필이나 셀럽이나 이론가로부터 깨닫는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스스로 검증했으니까.

이 회상이 끝나면 약속은 기억 속에서 불쑥 나와 묻는다. 더 순수하고 아름다워졌는가. 변했는가. 그러나 이 물음은 애초에 쉽게 답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순수함이라든지 아름다움이라든지의 따위는 전리품이 아님을. 그저 그 물음 속에서만, 묻는 동안에만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어떤 것임을. 그러므로 저 물음을 계속 갖고 있는 동안에만 겨우 그들을 갖는 것임을.

그래서 내가 반성해야 할 것은 가끔 자주 못나도록 물음을 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