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비엔날레가 46일간의 뜨거운 여정을 마무리했다. 자카르타의 대표 아트센터인 타만이스마일마르주키(Taman Ismail Marzuki)와 코무니타스살리하라(Komunitas Salihara), 아트콜렉티브 루앙루파(Ruangrupa)가 공동 설립한 예술학교 구드스쿨(Gudskul), 사운드 라운지 수보(Subo) 총 4곳에서 개최된 행사는 예상치 못한 파격적인 구성으로 글로벌 미술씬에 반향을 일으켰다. 거시적인 주제, 대규모 설치, 글로벌리티를 내세우며 미술축제의 규모 경쟁이 이어지는 오늘날, 자카르타비엔날레는 정반대로 향했다.
지금, 동시대 블랙아트가 지구촌에 동시다발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술계는 물론 팝컬처와 주류 미디어 등 문화 전 영역에서 아프리카(계) 아티스트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유수 미술관 및 비엔날레에선 흑인 예술가의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시몬 리(Simone Leigh),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등 대가들의 개인전이 작년에 이어 각 도시를 순회 중이다. 블랙아트의 역사를 집대성하거나 장르성을 탐구하는 주제전도 빈도와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동시대 사진가를 한자리에 모은 《A World in Common》(런던 테이트모던 2023), 흑인의 초상을 디아스포라 담론과 연결하는 《When We see Us》(자이츠아프리카현대미술관 2022, 쿤스트뮤지엄바젤 2024)는 탈식민주의 철학을 시각화한 독특한 미감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비누 조각가’ 신미경. 작가는 비누를 주재료로 고전미술과 역사적 유물을 재현한다. 그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 《투명하고 향기 나는 천사의 날개 빛깔처럼》(6. 4~2025. 5. 5)을 열었다. 기독교미술에 등장하는 ‘천사’를 모티프 삼아 조각과 회화, 드로잉 등 100여 점을 선보였다. 신미경은 비누를 매개로 존재와 소멸에 동시에 가닿는다. 사용과 폐기는 모든 사물이 겪는 과정이지만, 그중에서도 비누는 특별하다. 마모되고 사라지는 과정이 즉각 보인다. “눈앞에 있어도 ‘곧 없어질 것’ 같은 느낌. 결국 사라질 대상에 섬세한 손길을 건네는” 모순된 운명은 이번 전시에서 천사라는 허구를 만나 또 한 번 선명해진다.
최윤희는 감정의 ‘결’과 ‘겹’을 선에 담는다. 일상의 장소, 관계, 사건 등에서 느낀 미묘한 정서를 회화에 녹여왔다. 그가 최근 TINC에서 개인전 <Turning in>(6. 4~29)을 열고 대형 신작 3점을 선보였다. 최윤희에게 감정은 추상 명사로 고정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파도, 수천 개의 색으로 번지는 스펙트럼, 희미해지고 선명해지기를 반복하는 빛에 가깝다. 사랑은 식고, 슬픔은 흐려지며, 열정은 휘발된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의 운동인 ‘정동’에 몸을 실었다. 감정의 크기에 따라 몸을 구부렸다 폈고, 속도에 맞춰 캔버스 위를 질주하다 멈췄다. 특정 모티프에서 시작하더라도 정서가 달라지면 과감하게 형태를 바꿨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내면을 파헤친 흔적이,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날뛴 감정의 궤적이 캔버스에 남았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처음으로 대규모 회화에 도전했다. 캔버스의 크기가 커진다면 눈에 띄지 않았던, 그동안 놓쳐왔던 감정을 포착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 출발했다. 작가의 변화는 늘 자신을 향했다. 작업 초기, 풍경화를 그리던 최윤희가 오늘의 방식을 선택한 것 역시 외부의 사물보다 ‘자신’을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작가의 그림은 일기보다 거울과 맞닿아 있다. 작품의 필치를 따라 몸을 움직이는 관객은 최윤희가 그랬듯 자신의 감정과 만난다. 관객이 작가의 감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이 감상자의 마음을 비춘다. 말하자면 최윤희의 회화는 누구에게나 ‘나’의 내밀한 이야기다.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 1965년 니오르 출생.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관계미학의 창시자 니콜라 부리오. 그는 작품과 관객의 상호 작용을 중심에 둔 큐레이토리얼을 실천해 왔다. 부리오가 감독을 맡은 제15회 광주비엔날레(9. 7~12. 1)가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30개국 73인(팀)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행사에서 그가 제시한 주제는 ‘판소리’. 악극 고유의 공공성과 정치성, 관객 참여적 성격을 동시대 미술언어로 재해석했다. 일상 공간을 페미니즘, 탈식민주의, 기후 위기 등의 담론이 오가는 사회 정치적 공론장으로 확장하는 것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열사흘 뒤, 단원고등학교를 마주한 경기도미술관에는 합동 분향소가 설치됐다. 이후 4년 동안 91만 명이 넘는 시민이 이곳을 찾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아픔을 나눴다. 경기도미술관에선 2주기와 3주기, 7주기에 맞춰 추념전이 열렸고, 미술관은 애도의 공간을 넘어 예술과 사회의 연대 장으로서 공동체의 의미를 질문했다. 그리고 지난달 10주기를 맞아 네 번째 추념전 《우리가, 바다》(4. 12~7. 14)가 열렸다.
최진욱은 개인의 경험을 기록한 풍경으로 동시대 사회를 담는다. 감각적인 색감과 은유적인 이미지로 익숙한 일상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현실에 밀착한 문제의식을 회화적 정치성으로 풀어왔다. 그의 개인전 《창신동의 달》(3. 14~4. 13)이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창신동, 인왕산, 동해, 작업실 등의 정경을 담은 그림 19점을 선보였다. 개별적인 건물, 장소, 오브제를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해 미시사와 거시사의 연속성을 드러냈다.
이목하는 희열과 좌절이 뒤엉킨 동시대 청춘의 초상을 그린다. 소셜 미디어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름도 상황도 모르는 사진에 담긴 서사와 감정을 포착해 화폭에 펼친다. 카메라를 당당하게 응시하거나 활짝 웃는 익명의 인물들. 행동만 보면 이들은 그저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회화는 화면 너머에 도사린 젊음의 불안을 동시에 머금는다. 청년 세대에게 인스타그램은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일상이 곧 인스타그램인 것은 아니다. SNS에 포스팅된 행복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연출의 결과다. 이목하가 파고드는 것은 이러한 연출이 차마 감추지 못했던 내면의 틈이다. 디스플레이의 선명한 RGB는 겹겹이 쌓이는 유채를 통해 빛이 바래고, 조리개가 담지 못한 그늘 속 어둠은 붓 자국만이 횡행한 추상으로 남는다. 혼탁한 색감은 화면의 과장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인물의 솔직한 정서를 자아내는 장치다. 침침한 조명 아래, 살결과 주름은 밝은 빛에 있을 때보다 또렷해진다. 편집이 감추고자 했던 신체의 ‘흠집’은 평평한 프레임 밖 인물의 이면을 짚어낸다. 희열의 얼굴 그 사이사이 군티에 청춘의 비애가 드러난다. 한편 선분과 색 면으로 추상화된 어둠은 개인을 소외시키는 사회를 은유한다. 화면에서 그늘은 피사체를 삼키듯 다가온다. 궤적이 온전히 살아있는 브러시 스트로크는 인물의 들숨과 날숨의 흔적의 비유다. 호흡을 따라 청춘은 사회의 부조리를 들이쉬며 받아들이거나 내뱉으며 맞선다. 행복과 불안, 수용과 저항, 그 어느 곳에도 뿌리내리지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통해 이목하는 젊음의 의미를 탐구한다. 여기에 작가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이중성에 있다”라고 덧붙였다. 청춘은 모순적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이안 쳉 〈Thousand Lives〉 라이브 시뮬레이션 가변크기 2023 글래드스톤갤러리 서울
이안 쳉(Ian Cheng)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가상 세계를 창조한다. ‘라이브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관객의 움직임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AI가 내러티브를 직접 연출하는 미디어아트를 선보여 왔다. 그가 개인전 <Thousand Lives>(2. 23~4. 13 글래드스톤갤러리 서울)를 열었다. 사람의 사고방식을 학습, 재현하는 AI 거북이 ‘사우전드’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채집하는 화가 호상근.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호상근재현소’를 통해 모집한 타인의 이야기 등 보통의 삶에서 유난히 반짝이는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해 왔다. 그가 개인전 《호상근 표류기 2023: 새, 카트, 기후》(11. 10~12. 23 오에이오에이갤러리)를 열고 회화 29점을 공개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작가가 이방인의 눈으로 거리에 숨은 이질적 존재를 포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