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서울이 글로벌 아트마켓 허브로서 지닌 위상은 확고해졌다. 올해의 서울 아트위크는 이 역동적인 지형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바로 세계 최정상급 공예·디자인 아트페어 디자인마이애미(Design Miami)의 아시아 첫 상륙이다. 디자인마이애미는 로컬 아이덴티티에 주목하는 ‘인 시추(In Situ)’ 프로그램의 첫 도시로 서울을 택하고 그룹전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를 열었다. 전통과 현대의 교차를 주제로 국내외 갤러리 16곳에서 71인의 작가가 170여 점을 공개했다. ‘컬렉터블 디자인’이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한국 시장에서, 소장 가치를 지니는 디자인이라는 낯선 화두를 던졌다.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콘크리트, 철근 528×530×530cm 2019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인류의 자기 인식에 거대한 파문을 몰고 왔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 명명한 이 이미지에서 인류의 모든 역사와 갈등, 사랑과 증오는 한낱 티끌에 불과했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8. 9~2026. 8. 8)은 바로 이 우주적 관점에서 촉발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했다.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끊임없는 갈등을 벌이며 살아가는가?” 김한영, 로버트 몽고메리, 마르텐 바스, 모나 하툼, 부지현, 사라 제, 시부야 쇼, 카나자와 수미, 송 동, 애나벨 다우, 이완, 제니 홀저, 라이자 루 등 국내외 작가 13인이 참여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9월 3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 A&B홀에서 열린다. 20여 개국 화랑 175곳이 참가하는 행사의 주제는 ‘공진’. 예술의 회복력과 공명의 힘으로 지속 가능한 미술생태를 모색한다. 신진 갤러리를 위한 ‘플러스’ 섹션과 차세대 작가 지원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한일 수교 60주년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을 마련했다. /
키아프 서울 2025 전경
―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작년과 비교하면 15%가 줄었고, 최근 5년간 가장 작은 규모다. 여기에는 외적 확장보다 ‘질적 내실’을 다지겠다는 새로운 기조가 작용했다. 이러한 전략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며, 페어에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가?
Lee 팬데믹 이후 빠르게 성장했던 미술시장은 이제 조정과 성숙의 단계에 들어섰다. 컬렉터와 방문객의 시각도 한층 깊고 다양해졌다. 키아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시 콘텐츠의 밀도와 큐레이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심사를 강화해 실력 있는 갤러리와 작가 중심으로 참가 대상을 조정했고, 전시 기획력과 예술적 완성도를 평가 기준의 핵심으로 삼았다. 작년 부스의 운영 평가는 물론, 갤러리가 기존에 개최해 온 기획전도 주요 심사 요소다. 작가의 발굴, 육성 실적 없이 대관 위주로 운영하는 화랑은 심사 단계에서 배제했다. 전시 공간의 조화와 작품 배치의 완성도, 그리고 작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역량까지 면밀히 검토했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의 눈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오늘, 인식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까. 권아람의 개인전 <피버 아이>(6. 24~8. 9 송은)는 센서와 카메라, 스크린, 알고리즘, 인공 지능 등 디지털로 과잉된 시각 환경에서 경험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추적한다. 영상, 사운드, LED를 활용한 미디어설치로 ‘기계적 시지각’의 구조를 구현했다.
일본의 ‘영 파워’ 아티스트 에가미 에츠는 무지갯빛 초상화로 소통의 본질을 탐구한다. 경주 오아르미술관 개관전으로 개인전 <지구의 울림>(4. 8~9. 21)이 열리고 있다. ‘메아리’를 주제로 신작 페인팅 17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시간과 공간, 문화를 가로지르는 목소리의 잔향을 다채로운 시각 언어로 풀어냈다. /
〈Opera 1〉 캔버스에 유채 108×196.5cm 2024
— 당신은 초상의 형식을 빌려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소통의 회색 지대’를 수많은 선과 색으로 번역해 왔다.
Egami 내 그림에서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를 의미한다. 말은 언제나 오해를 낳는다. 어떤 관계에도 이해와 오해가 포개진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린 꼭 하나의 해답에 도달할 필요가 없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때 오히려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고민에서 ‘무지개’를 떠올렸다. 교차하지 않기에 공존하는 평행선. 무지개는 선마다 색이 달라 아름답다. 선 하나하나에 담긴 오해는 슬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통을 쌓아나갈 때 꿈의 무지개는 완성된다.
젊은 화가 임노식이 개인전 《선산》(4. 9~5. 4)을 열었다. 가족묘가 놓인 여주의 선산을 배경으로 신작 17점을 선보였다. 임노식의 회화는 늘 선산에서 시작된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자 가족의 무덤이 놓인 땅. 작가는 매 주말이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선산을 오갔고, 작업의 씨앗이 될 장면을 모았다. 선산은 작가는 물론 작품에게도 하나의 고향이다. 그러나 노스탤지어가 출발점이 될 순 있어도 본질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정적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농촌은 생성적인 공간임이 틀림없다. 30여 년간 여주는 끊임없이 변했다. 산은 깎이고 사람들이 사라졌으며, 그곳을 외국인 노동자가 와 채웠다. 건물 몇 채가 오르내리는 변화가 아니라 지형과 인간이 뒤바뀌는 격변. 그게 날 움직였다.”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렌즈는 타인을 응시하는 대신, 그와 함께 머문 감각을 기록한다. 이미지는 한순간의 얼굴이 아니라, 그 낯을 마주한 침묵과 호흡, 감정의 진동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나아가 보는 일은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경청’과 닮아있다. 천경우의 사진이 그렇다. 그의 사진은 이미지의 형상보다 시간의 흐름을, 재현보다 감응의 자취를 담아낸다. 작가는 흔히 사진에서 요구되는 명료한 형상을 의도적으로 감춘다. 그러나 장노출이 시현하는 육체의 미세한 떨림, 네거티브로 포착되는 어둠 속 잔영, 밀착된 피사체 사이에 형성되는 내밀한 관계… 일상의 육안으로 미처 감지하지 못한 존재들이 사진이라는 경청 아래에서 비로소 현현한다. 그리고 이 경청을 논하려면 천경우가 보여주는 감춤과 드러냄의 섬세한 균형에 대해 말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경청이 목소리를 잃은 이들, 즉 소외된 존재를 향해왔다는 점이다. 때로 가장 고요한 사진이 가장 뜨거운 목소리를 품는다. 천경우의 사진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바로 그 일을, 그것도 아주 철저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펼쳐왔다. 작가는 최근 팔마 카살소예릭(Casalsolleric)과 롯데갤러리 잠실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대표작과 함께 최근에 발표한 전시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아트자카르타에서 당신은 도시 자체가 곧 예술인, 자카르타(Jak-art-a)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트자카르타 예술감독 에닌 수프리얀토가 2019년, 행사 개최 10주년 맞이 리뉴얼을 발표하면서 던진 포부다. 그가 예고한 혁신은 아트페어 현장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어느 미술장터나 홍보 포인트는 비슷하다. 세계 미술시장을 주름잡는 메가 갤러리의 참여와 블루칩 아티스트의 출품. 즉 글로벌리티의 확보가 흥행의 열쇠다. 그러나 아트자카르타는 다른 길을 택했다. ‘로컬리티’에 방점을 찍었다. 어디에나 있는 동시대미술이 아니라 자카르타만이 선보일 수 있는 고유한 흐름을 제시했다. 인도네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 작가와 갤러리에 집중하면서, 이들이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도록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강조했다. 특별전 역시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이번 행사는 이러한 전략이 본격적으로 결실을 맺은 자리였다.
한국과 프랑스를 무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원로 화가 강명희. 그의 개인전 〈방문 Visit〉(3. 4~6. 8)이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최된다. 강명희의 작품 활동 60여 년, 그 빛나는 발자취를 돌아본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시기와 주제로 나눈 대표작 150여 점을 공개한다. 강명희는 시적 정취를 머금은 풍경화로 ‘존재와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남극, 고비사막, 파타고니아 등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로 홀연히 떠나, 눈앞에서 본 생생한 풍광을 화면에 펼친다. 유랑자의 태도로 자연을 향해 적극적으로 발을 내딛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회화다. 작가의 붓끝에서 피어난 자연의 결과 겹, 리듬, 패턴, 울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