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시대 블랙아트가 지구촌에 동시다발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술계는 물론 팝컬처와 주류 미디어 등 문화 전 영역에서 아프리카(계) 아티스트가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유수 미술관 및 비엔날레에선 흑인 예술가의 블록버스터급 전시가 잇따라 열렸다. 시몬 리(Simone Leigh), 왕게치 무투(Wangechi Mutu), 자넬레 무홀리(Zanele Muholi) 등 대가들의 개인전이 작년에 이어 각 도시를 순회 중이다. 블랙아트의 역사를 집대성하거나 장르성을 탐구하는 주제전도 빈도와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아프리카 동시대 사진가를 한자리에 모은 《A World in Common》(런던 테이트모던 2023), 흑인의 초상을 디아스포라 담론과 연결하는 《When We see Us》(자이츠아프리카현대미술관 2022, 쿤스트뮤지엄바젤 2024)는 탈식민주의 철학을 시각화한 독특한 미감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마켓에서도 블랙아트의 수요는 급증했다. 세계적인 미술거래 플랫폼 아트넷이 모건스탠리와 함께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리카 아티스트의 작품 낙찰은 최근 10년간 46%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는 북미 출신 예술가가 47% 증가한 것에 버금가는 수치이며, 유럽이 7%, 아시아가 23%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 외에도 크리스티가 흑인 예술가의 작품을 모은 콘셉트 경매 ‘Say It Loud’(2020)를 열어 블랙아트의 시장성을 입증했고,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아트페어 ‘1-54마라케시(Marrakech)’가 작년 뉴욕에 이어 올해 홍콩에서 판매전을 개최해 마켓 확장의 포부를 드러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젊은 블랙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하는 사례는 이미 대세가 된 지 오래다. 화가 니나 샤넬 애브니(Nina Chanel Abney)와 나이키의 협업,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참여한 루이비통, 나이키 컬렉션 등은 아프리카의 미학을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블랙아트의 약진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Art는 2003~2023년에 『아트리뷰』 파워100에 등장한 흑인 미술인을 정리했다(p.93 표). 첫해 명단에 블랙아티스트는 2명뿐이었지만 2023년에는 27명을 기록했다. 20년 동안 14배에 가까운 증가다. 파워100에 최초로 등장한 흑인은 큐레이터 델마 골든(Thelma Golden, 58위)과 건축가 데이비드 아드아예(David Adjaye, 56위)였으며, 작년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인물은 시몬 리(4위)였다.
블랙아트의 부상, 그 배경과 원인
왜, 지금 블랙아트가 부상하는가? 첫 번째 요인은 ‘다문화주의’의 확장이다. 1960~70년대에 걸쳐 출현한 다문화주의는 서구 중심의 세계관을 탈중심화하는 주요 논리로 자리 잡았다. 흑인 문화예술의 첫 번째 부흥기였던 할렘르네상스(1918~30)가 1960년대에 블랙아츠무브먼트로 부활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후 다문화주의가 일상화되면서 블랙 컬처가 점차 문화 중심으로 이동했고,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큰 힘을 얻었다.
오늘날 블랙아트는 퀴어에서 소수 민족, 디아스포라, 장애인, 서발턴에 이르는 소수자 운동의 상징이자 구심점이다. 이는 블랙아트가 정체성 예술인 동시에 그 자체로 사회, 정치적 화두를 다루는 참여의 성격을 지녔다는 데 기인한다. 블랙아트는 작품을 통해 노예제, 인종 차별, 제도적 불평등을 조명해 왔다. 그리고 역사와 경험은 다르지만, 소수자와 흑인은 그 차별이 현대 사회의 구조 근간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사회 부조리 개선이라는 보편적 요구가 블랙아트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또한 블랙아트의 주제가 성 소수자, 여성 혐오 등의 의제로 확장하면서 다른 마이너리티 그룹과의 연대가 강화됐고, 이는 블랙아트가 다문화주의의 핵심을 관통하는 예술로 대두되는 배경이 됐다.
한편 2013년에 시작된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 이하 BLM)’ 역시 블랙아트의 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BLM 운동은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살해한 조지 지머만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이 대규모 저항으로 이어진 시위다. 이후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벌어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2020)은 BLM의 기폭제가 되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가 흑인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형식적인 평등은 달성되었을지 모르나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하다는 것. 정치뿐 아니라 일상에 뿌리박힌 차별, 폭력과도 싸워야 한다는 의식이 BLM 운동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블랙아티스트는 작업의 형태로 각자가 경험한 부조리를 고발하고, BLM 운동의 의제를 선전했다. 예술이 지닌 스토리텔링은 지역 사회에 즉각적으로 흑인 문제를 전달하면서도, 흑인 사회의 절박함을 대중에 동화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BLM을 처음 조직했던 예술가 패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는 시위의 형태를 문화 운동으로 이끌었다. 현장에는 래퍼 켄드릭 라마의 〈Alright〉와 ‘팝의 여왕’ 비욘세의 〈Formation〉이 합창됐고, 참여자들은 바닥에 누워 죽은 척하는 〈Die-in〉 퍼포먼스로 목숨을 잃은 흑인을 시각화했다. 한편 그라피티아트는 일상에서 BLM을 환기하는 중요한 매체였다. 시리아 출신의 예술가 아지즈 아스마르(Aziz Asmar)와 아니스 함둔(Anis Hamdoun)은 플로이드의 유언인 “숨을 쉴 수 없다”를 벽화로 옮겼고, 이탈리아 예술가 조리트 아고크(Jorit Agoch)는 말콤 X, 마틴 루터 킹 등 해방 운동의 영웅과 함께 플로이드를 새겼다. 워싱턴 국립흑인역사박물관이 뮤지엄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BLM에 참여한 것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물관은 BLM 운동에 적극적으로 전문가와 큐레이터를 파견했고, 사진, 포스터, 연설문 등을 기록, 수집해 소장품화했다. BLM에서 예술은 사람들의 참여와 관심을 리드하는 원동력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흑인 아티스트가 재조명되는 결과를 낳았다.
앞서 언급한 두 요인이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본 분석이라면 세 번째는 시각성 자체에 주목한다. 낯섦과 새로움을 모색하는 동시대미술에서 블랙아트의 차별성이 지금의 부상을 만들었다는 관점이다. 서구 미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정형적 형태와, 과감한 색감, 민속공예에서 사용되어 온 전통 재료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아프리카 미술은 20세기 초 프리미티비즘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바 있다. 다만 당시의 프리미티비즘은 블랙아트를 ‘순수하고, 본능적이며, 원초적인’ 것으로 이상화하면서 고유한 의미와 맥락을 간과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오늘날 흑인 아티스트는 블랙아트의 전통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도 그것의 미감을 동시대 미술언어로 재구성해 왔다. 이외에도 모더니즘 미술에서 잘 등장하지 않았던 흑인 초상이나 아프리카 자연 풍경이 전면에 나오거나 디아스포라, 탈식민 서사 등이 내러티브로 차용된다는 점에서 현대예술의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아프리카, 전통의 전유, 탈식민주의
오늘날 미술씬에서 광범위하게 포착되는 블랙아트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베니스비엔날레(2015) 최초로 흑인 총감독을 맡았던 세계적인 큐레이터 오쿠이 엔위저(Okuwi Enwezer)는 『Contemporary African Art after 1980』(2009)에서 블랙아트를 아프리카(계) 예술가가 아프리카 전통 요소를 재구성하는 탈식민주의적 예술활동으로 규정한다. 이 개념에서 블랙아트는 아프리카(계), 전통 재구성, 탈식민주의 등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 번째, 블랙아트의 인적 범위는 아프리카 토착민 혹은 미국, 유럽 등을 기반으로 둔 디아스포라로 구성된다. 여기엔 흑인과 흑인 혼혈은 물론,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백인 아프리카인이 포함된다. 아프리카 문화를 시각화하고 현지의 사회적 문제를 다뤄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백인 화가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가 그 예다. 토착민과 디아스포라를 기준으로 각각 아프리카 미술, 블랙아트로 구분 짓기도 하지만, 오늘날 양쪽 무대가 엄격히 구분되지 않고 교류와 협업이 활발한 만큼 특집은 광의의 정의를 따랐다.
두 번째, 블랙아트는 아프리카 유무형의 전통을 동시대 미술언어로 재구성한다. 유형 전통에는 조각, 직물, 마스크 등 민속공예에서 사용되는 상징과 패턴, 형식이, 무형 전통에는 신화나 민담, 민요 등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전통문화는 단순히 선대의 유산이 아니라 식민지 당시 빼앗겼던 민족의 정체성이다. 블랙아티스트에게 전통의 전유는 서구의 시각으로 왜곡된 아프리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흑인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회복, 발굴하려는 미적 실천이다. 가령 가나 출신의 엘 아나추이(El Anatsui)는 금속 캔, 병마개 등 현대적 재료를 아프리카 전통 직조 기술로 엮어 설치작품을 제작한다. 아나추이에게 쓰레기는 제국주의가 아프리카에 남긴 상흔을 의미하며, 작가는 이를 엮어 재건과 치유를 은유했다. 곤살로 마분다(Gonçalo Mabunda)는 전쟁 후 회수된 폐무기를 이용해 전통조각을 만들어 내전의 아픔을 위로해 왔다. 한편 케냐 출신의 왕게치 무투는 고대 아프리카의 신화를 현대적 시각으로 변주한다. 유물, 공예품 등에 등장하는 신화 속 인물로 분한 아프리카 여성을 통해 현대 사회의 젠더 이슈를 조명했다.
세 번째는 탈식민주의적 예술활동이다. 탈식민주의란 식민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미학을 재정립하려는 이념이다. 여기엔 전통의 전유는 물론 근현대 시기 아프리카 외부에서 흑인 디아스포라가 경험한 삶을 모티프로 한 작업이 포함된다. 전자가 식민지 이전의 아프리카에 주목해 과거의 회복을 목표로 삼는다면, 후자는 식민지 이후의 흑인 문화를 토대로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한다. 탈식민주의 이론의 거장 호미 바바(Homi Bhabha)는 『The Location of Culture』(1994)에서 식민지 경험이 단순히 지배와 피지배의 이분법을 넘어 다양한 문화와 정체성을 혼합한다고 제시했다. 혼종성이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가능성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과 아메리카 등지의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문화는 아프리카 현지와는 다른 특수성을 지닌다. 힙합과 그라피티 등으로 대표되는 할렘 예술, 자메이카에서 발전한 레게, 영국 흑인 음악을 상징하는 그라임과 블랙 브리티시 문학, 흑인 문화를 SF적 상상력으로 변주한 아프로퓨처리즘 등은 디아스포라적 혼종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잉카 쇼니바레(Yinka Shonibare)는 디아스포라의 혼종성을 탐구하는 대표적인 조각가다. 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나 프랑스 나폴레옹 시대의 의복을 아프리카의 바틱 천으로 재현한다. 귀족 복식에 흑인을 대입해 블랙 디아스포라의 낮은 사회적 위치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카라 워커(Kara Walker)는 남북전쟁 시기 미국 남부의 노예제와 인종 차별을 주제로 설치작품을 제작해 왔다. 내러티브를 실루엣으로 표현해 당대의 문제가 현대 흑인 사회에 그림자처럼 붙어 지속되고 있음을 은유한다. 한편 애덤 펜들턴(Adam Pendleton)은 다다이즘을 흑인의 정체성과 융합해 ‘블랙 다다’로 이름 붙인 새로운 시각 표현을 구상한다. 카오스, 무정부주의, 반권위주의 등 다다이즘의 핵심 개념을 흑인 디아스포라의 유목민적 성격과 연결해 텍스트-이미지 콜라주작업을 선보인다.
한국 미술과 블랙아트
블랙아트는 한국에서 아직 낯선 주제다. 백인이나 히스패닉 작가와 달리 블랙아티스트를 소속 작가로 둔 국내 화랑은 손에 꼽는다. 잉카 쇼니바레(2015), 샘 길리엄(Sam Gilliam, 2021), 엘 아나추이(2017, 2022) 등이 국내 개인전을 열었지만, 블랙아트의 맥락보다 개인의 예술관을 중점으로 다뤘다. 그러나 한국에서 블랙아트에 대한 수요와 관심은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다. SNS 등을 통해 글로벌 아트씬의 트렌드가 빠르게 전파되는 것과 함께 해외 갤러리 브랜치를 통해 블랙아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엔날레와 아트페어에서도 흑인 예술가는 핵심 라인업으로 떠올랐다. 언뜻 먼 이야기 같지만, 블랙아트는 한국에도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먼저 블랙아트는 인종, 문화적 다양성이 점차 커지는 한국 사회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마련해 준다. 이는 우리가 직면한 차별과 불평등을 재인식하고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한편 블랙아트를 관통하는 탈식민주의는 한국 미술에서도 핵심적인 과제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에 민족 정체성을 빼앗기고, 해외로 이주했던 역사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예술가가 그랬듯 한국 미술인은 근대 시기부터 민족성 회복과 독립적인 미술 정체성 수립을 위해 노력해 왔다. 블랙아트가 탈식민주의를 보다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프리카 미술은 한국 미술에 담론적 깊이를 더하는 모티프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 등으로 주제를 확장하는 블랙아트의 다원성은 동시대미술이 향해야 할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여기 블랙아트의 다채로운 색깔을 펼친다. 블랙아트는 아프리카(계)의 미술이지만, 동시에 차별과 맞서고 평등을 추구하는 코스모폴리탄의 미술이다. 시대의 요구이자 동시대미술의 최전선이다. 검정색은 언제나 새롭다. 할렘르네상스 어게인!
◼︎ 『아트인컬처』 2024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