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아트랩 OPEN STUDIO 토크

H아트랩 OPEN STUDIO 첫 번째 이야기, ⟪ART NODE⟫ 포스터

연계 행사 4. 토크
– 제목: 변명과 비명들
– 진행: 미술 이론가 조재연
– 일시: 2021년 12월 19일 (일) 13:00-15:00
– 장소: 호반파크 2관 H아트랩 4층
– 신청: H아트랩 홈페이지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를 털어놓을 때면 자주 그렇게 적었다. 변혁과 진리, 희망, 아름다움과 같은 터무니 없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서도, 쓴 것을 지키지 못하는 생이 부끄럽다. 그러나 그 부끄런 까닭에, 괴리를 오므리기 위해서 살아가나요. 언젠가부터 ‘세상은 이렇다’는 식으로 문장을 시작하지 않는다. 처지와 자격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리를 해명하기보다는 ‘변명’하는 것처럼, 내가 못다할 비판임을 알기에 비판 대신 ‘비명’을 지른다. 비천한 곳에서도 길어낼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다. 고귀함이 가치에 닿는 일은 그 자신을 재귀로 입증할 뿐이지만, 가치가 비천한 처소에서 길어지는 것이란 ‘가치’의 평등한 얼굴을 내비치는 일임을 믿으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치’의 사소하지만 완고한 증명이기를.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럼에도 기다릴 수 있는 것들을 맡에 챙겼습니다. 비평이라면 좋겠습니다. 늘어놓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흐린 날, 미사일_차지량: New Home – Stay

차지량, ⟨Stay⟩, 비디오, 60분, 2021 (출처: Cha Ji Ryang)

나는 문득 자수를 하고 싶어진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장마철마다 대야와 바가지로 물을 푸던 양친을 잊고 지냄에 대하여, 익지도 않은 낯선 짐승을 뼈째로 허겁지겁 삼키고는 그 비가 타고 내려오던 깊은 계단에 게워냈던 기억의 부재에 대하여, 새벽 내 심장 타는 냄새를 맡던 가족의 얼굴을 모름에 대하여, 그러니까 그 어느 것도 내가 머물고 있지 않음에 대하여. 밖에서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이 집에만 가져오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지. 쥐기 위해서 꺾어야 한다는 것과, 언덕을 넘어오는 바람만은 가구로 재현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누구를 사랑하는 태도가 사실 끔찍하게 다르다 것이 내가 그곳을 기억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 누군가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갈 스스로 생성해내는 생을 살고 있다고 할 때, 그가 밤이나 폐허 같은 것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음을 더러 본다. 오일 대신 유채라 발음하고, 시침은 물론 형광등이 씨끄럽다는 것을 앎은 중요한 일이 아니지만, 이 사소한 소리들을 말미암아 그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집으로 가는 길마저 망각할 수밖에. 흐린 날, 미사일_차지량: New Home – Stay 더보기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_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이현수, ⟪난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EVERGREEN⟫, SeMA 창고, 2021. 7. 8.~8. 1, 전시 포스터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 마이클 타이슨, 1987년 8월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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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 관한 모든 지혜를 얻었기에, 쌓아 올린 그 지혜로 말미암아 비로소 결별을 짓는다. 가장 아름다운 것과 가장 창피한 것을 동시에 나눈 우리는 이다음에 무엇을 남기게 될지 이제 알고 있다. 서로의 가장 헌신적인 것과 가장 추한 것을 교환해온 지금. 그리고 나는 네게 마땅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반대로 너는 내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충분히 노력했던 지금. 포말은 모래 위에 새겼던 모든 낱말을 이치가 예정했던 대로 지울 것이다. 잡고 있는 것보다 놓아주는 데 더 큰마음과 지혜가 필요하다지. 실험, 경험, 증명, 검토 그리고 결론까지, 시작점에는 탄생하지 않았던 현명함은 엇갈릴 이 날을 위해 이다지도 적재되어왔을까. 그러나 여기서 내가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성숙해지기 전, 사랑의 시작점에서 영원을 기약했던 순간과 새 삶의 출발점에서 혁명의 꿈에 젖었던 순간이다. 원대하고 급진적인 사유는 오직 성숙이 부재한 순간에 존재하고 맒을 천천히 깨닫고 있다. 결실 맺는 사랑과 도래할 혁명은 미래에 있다지만, 어찌하여 이룩과 번성은 그것으로부터 멀어짐을 만드는 것일까. 또 출발하지도 않은 채로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고 마는 것일까. 시간을 거듭할 때 생기는 지혜가 무언갈 내려놓게 만든다면 차라리 걸음을 어리석음에 향하도록 돌린다. 거칠고, 미성숙하고, 비이성적이며, 비발전된 ‘시작’으로 돌아가 다시 네게 무엇을 ‘고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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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입속에 내 잎_하므음: 종이 속 전시

하므음, ⟨창문’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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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부르는 표정. 당신도 한 번쯤은 부르거나 대답해본 적이 있겠지. 당신이 나의 표정을 읽고 나는 혀로써 당신이 읽은 것이 맞다 대답하는. 내 과거를 대신 기억하는 안색에 대해, 내 슬픔을 대신 앓는 낯빛에 대해, 나 대신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얼굴에 대해 그러니까 대신하여 어떤 소리를 기다리는 표정에 대하여. 이들을 마주친다면 나는 비로소 고백할 준비가 끝날지 모르겠다. 괜찮냐, 어떻냐는 물음이 마치 열쇠가 되어서 그 열쇠에 꼭 맞는 말을 발음하는 일도 있지만, 그 표정들은 물음 없이 도착해 나는 그것에 맞는 어떤 소리를 뱉고 또 발음할 준비를 마치고 만다. 건네는 대화 안에서 몇 개의 말이 겨우 남을까 하는 고민. 그러나 그 열쇠를 통해 소리가 당신의 안으로 안착한다면, 굳이 구석진 자리에 앉지 않아도 또 천천히만 식는 커피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언어의 온도가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고백을 하고 밤사이 뒤척였던 것은 당신의 입에서 ‘아니’란 말이 나올까보다는, 내가 두드린 계이름과 말이 정확하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다만 네 입속에 내 잎을 넣어 그것이 자라나고 흔들리는 순간 염려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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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나는 닿지 않는 등_정의철: Look at me now

정의철, ⟪Look at me now⟫, 학고재 아트센터, 2021. 10. 12~10. 19, 전시 포스터

멀쩡한 사람도 누구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묻는다.
그러나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대체로 정신병자밖에 없다.
대리언 리더, 배성민 옮김, 『광기』, 까치,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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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계에는 얼굴이 빠져 있다. 그것을 나는 어젯밤 깨달았다. 하루엔 낯을 가지지 않은 존재들이 장기적으로 오가고 있었다. 사물을 통과한 사실과 장소는 자욱으로 남아 언제든 돌이켜볼 수 있으면서도, 그것을 건넨 낯은 도무지 잔류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커피 머신과 졸음을 참을 줄 아는 포스기, 그들처럼 살과 피를 가진 기계들. 인형人形 없이 운영되는 가게는 조금도 새롭지 않다. ‘안녕하세요’라는 안부를 묻는 인사에 이제 모두가 물음표를 떼었듯이, 혹은 녹음에 부친 인사에 대꾸가 허무한 것처럼, 우리가 일으키는 파문엔 서로의 주름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니 이따금 당신이 달라진 게 없냐며 모습 중 어디가 변하였는지를 물을 때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은, 지난날과 오늘을 대차대조할 노력이 남아있지 않은 까닭도, 예민한 관찰력을 지니지 않은 연유도 아니었다. 그 물음만이 얼굴을 분실한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어, 상실의 죄책을 상기시킨다. 얼굴은 신체의 마중물이니 낯의 탈거奪去는 신체의 탈거. 그때마다 넉넉하지 않은 입을 벌린 사물들이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너도 사물이지, 너도 사물이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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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믿게 하는 예술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그것이 터무니없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을 진심으로 믿었다가 조급하게 예술을 원망하게 될까 봐 그렇다. 그러나 예술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을 바꾼다는 이야기라면 믿어보기로 했다. 아니 전력으로 증명하고 싶다. 그리고 도미야마 다에코(富山妙子)의 자취가 그 말을 증명한다. 도미야마는 분명 수많은 삶을 바꿔냈다. 그는 전환 시대의 투사였다. 1921년 일본 고베에서 출생한 도미야마는 세계의 폭력과 불의에 맞서며 격동의 역사를 화폭에 증언했다. 일제 강제 노역과 위안부, 탄광 노동자의 비극, 라틴 아메리카의 군부 독재, 5·18을 포함한 한국의 70, 80년대 민주화운동, 후쿠시마원전사고 등이 작가가 온몸, 온 생을 거쳐 부딪쳤던 문제였다. 그림을 보고 그림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그림이 우리를 봐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느낌. 사람들은 도미야마를 “어디를 보아도 우리 편 하나 보이지 않는 먹먹함 속에서 우리 모습을 봐주고, 우리 이야기를 해주는 존재가 있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기억했다. 비극이 삶을 휘저어 지나간 후에도 살아갈 힘은 남아있다는 것. 도미야마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이 소회와 같지 않을까. 슬픈 장면을 그릴 때면 작가는 종종 나비를 그려넣었다. 스산한 후쿠오카형무소, 강제동원 희생자의 주검, 피가 엉긴 철조망 위로도 나비는 팔랑거렸다. 비극은 결국 우리 생에서 나비 하나, 나비가 올 봄 하나 쫓아내지 못한다. 작가의 그림은 폐허 어딘가에도 꽃향기를 맡도록 만든다. 그런 도미야마가 8월 18일 별세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우리라면 조금 더 오래 예술을 믿어볼 수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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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누구도 비웃지 않게 된다_정희영: 짐승에 이르기를

정희영 기획, ⟪짐승에 이르기를⟫, 합정지구, 2021. 5. 15~6. 13, 전시 포스터(디자인: 이산도)

경고문
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당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당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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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약하다고 외칠 수는 없을까, 각자의 강함을 이야기하는 대신에. 투사처럼 굽히지 않는 의지로 세상을 변혁하는 이야기를 나는 도무지 할 수가 없다. 세계를 몇 개의 명제로 단호하게 진단하고, 적을 규탄하는 위대한 일은 내게 할당되지 못한다. 내 생김새는 오랫동안 비겁하고 비천하다. 광장의 절정 위에서 나는 늘 비켜서 있었다. 누군가 밀치기도 전에 인도에 먼저 올랐던 그리고 매쓰거운 분무를 몇 분 버티지도 않던 나는 궐련 어느 쪽에 입을 맞추어야 할지 몰랐을 때부터 내 자격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내 몸도 타인의 물건도 숨기는 데 익숙한 내 앞은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그래서 무언가 쓸 때마다 나는 늘 에둘러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우회에도 애써 걷는 까닭은 비겁은 차치하더라도 비천으로 구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단 절박함에서였다. 고귀하고 완고함이란 조금도 없는 천함과 미약에서 길어낼 답이 어딘가엔 존재한다는 것. 외려 강함을 서로 앞다투어 외치는 이들이 초래한 세상에서 오직 미력으로써 발견할 가치가 있다는 것. 이 멍에 같은 희망을 뿌리칠 길은 없었다. 그러니 비겁함 때문에 내가 아니어도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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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의 끝에서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는 자격 미달의 운동권이었다. 비극이 아닌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 나는 늘 비켜서 있었다. 광장을 향하기로 마음을 먹는 일은 더뎠고 현장에서는 충돌이 두려워 앞장서지 못했다. 정당에 적을 둔지 오래였지만 누군가 나의 허물을 모르고 덜컥 동지라 부르게 될까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투사처럼 나서는 이를 볼 때면 열등감에 괴로웠다. 나는 무얼 바라 비겁을 삼키며, 이다지도 작은 것일까. 자멸감이 무릎에 닿았을 때 즘 서동진의 글을 읽었다. “자본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식이 노동 운동은 아니다. 유령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와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이는, 환상을 만드는 힘에 저항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이 말에 목이 메였다. 나의 처신을 변명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서는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은 부족하지만 언제가 해결을 바라며 잊지 않기 위한 기록으로서 비망록을 남길 수 있다는 기쁨이었다. 나약한 지금의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가담할 실천이 존재한다는 기쁨을, 그의 글로부터 발견했다. 그렇게 그의 글을 베끼고, 발제문을 쓰듯 연습하고, 각주에 그의 이름을 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지껏 남루를 벗어나지 못한 오늘, 서동진의 첫 기획전 <안전가옥에서의 밤>(7. 16~28 빌라해밀톤) 소식을 듣고 나의 처음이 떠올랐다. 또다시 내 비겁과 작음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 나는 내가 변혁의 자리에서 가장 앞서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이 있어, 선두가 아니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남겠다는 결심을 지킬 수 있었다. 그가 말했듯 행복을 추종하지 않는 삶, 그 생을 찌꺼기까지 마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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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는 희망_김연재, 유지원: 아포칼립스 모으기

김연재, 유지원, ⟪아포칼립스 모으기⟫, 갤러리175, 2021. 7. 22~8. 5, 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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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사랑이 아름답다 그리는 병을 앓는 우리. 그럼에도 끝까지 당신을 미워하는 일이 가능하긴 걸까. 잔인한 기억 사이사이에 고운 말이 떠오르고, 용서 사건을 기어이 가볍게 만들 미련이 자라날 때면 과거는 도무지 다정을 면치 못했다. 받은 상처로 결별을 짓기보다는 다하지 못했던 미안함으로 희망을 이룩한다. 미력한 희망이 남아미래 쉬이 연기된다. 만약에 성숙해진 채로 우리가 다시 만나고, 만약에 과거의 잘못을 수정하며, 만약에 다시 행복해질 있다면 결론이 과연 다를까. 그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무결한 환상을 지탱하는 지지체만약에, 어떤 노도怒濤도 우릴 미래로 끌고 가지 않도록 지켜준다. 다른 시간의 가능성을 가리켰던 미래라는 낱말의 신세는 희망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처량해지고 말았다. 잠든 모든 이의 얼굴이 선하다고 믿는, 진흙 위에서 무구한 것이 피어나거나 검은 비닐봉지조차 가끔은 주황 지느러미가 빛나는 금붕어를 쏟아내는 일이 여전히 있는 세상.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하루 하루 희망을 발견하는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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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없는 마음

인간의 감정이 결국 물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는 서글프다. 시곗바늘 대신 심장 소리가 좁은 방을 채웠던 숱한 새벽이 고작 물질 기관의 일이라면, 우리에겐 예술보다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할 향정신성 의약품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학량의 개인전 <짱돌, 살구 씨, 호미>(5. 5~6. 5 전주 서학동사진관)를 나오며 서두에 했던 말을 취소하기로 했다. 전시는 제목처럼 소담치 못한 사물의 초상을 화폭으로 옮겼다. 서사도 색면도 존재하지 않는, 어떤 것도 부러 지어냄 없이 오직 사물의 실체로만 구성되는 그림. 그러나 그 실체 때문에 사물은 추상의 낱말보다 마음을 더 정확하게 발음한다. 감정은 개체 내부의 표현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주 그리운 누군가에게 물들어갈 때, 함께 있는 동안 그 애틋함에 타일의 먼지처럼 흔들릴 때, 불안이 혓바늘처럼 움틀 때면, 물듦, 먼지, 흔들림, 바늘, 움틂이라는 외부에 놓인 물질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선 마음은 도무지 스스로를 고백할 수 없다. 김학량의 그림은, 말재간 없는 감정이 빌릴 사물을 인간의 사전에 추가한다. 나는 마음 어딘가 이름을 지니지 못한 감정에 짱돌, 살구 씨, 호미를 빌려와 발음해본다. “발견한 사물을 해명하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사물에게 나를 들켰다.” 작가가 들킨 것은 사물을 닮은 마음이었을 테다. 감정이 물질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보다, 누군가의 감정에 정확히 가닿을 수 없다는 말이 나를 더 서글프게 만든다. 이해받지 못한 이가 있을 때면 예술은 늘 사물의 처소를 찾았다. 그러니 오해를 면치 못할 일이라 해도 헌신을 그칠 리 없다. / 조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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