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 이벤트 Ⅺ 「아토포스: 비명과 기도」

사가: 이벤트 Ⅺ ⟪아토포스: 비명과 기도⟫ 포스터, 디자인 42mxm

2022. 7. 10(일) 16:30~18:30
서울생활문화센터 서교, 연습실4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72 효성해링턴타워 지하1층)

상실의 끝장과 야만 이후에도 여전히 난감한 것을 향해 깊어지려 했다. 노여움은 애모가 되어 나설 것이라고, 변혁론은 마침내 서정으로 급진화될 것이라 의지하고서. 혁명과 진리, 무망한 이듬에도 이들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지만 도무지 그렇게 쓸 수가 없었다. 비판이 아닌 비명을 지른다. 설명 대신 변명을 늘어놓는다. 머리채를 잡지 못하고 기도를 하고 말때, 이 난감함이 가망을 찾아가는 필연적인 과정일 거라고 믿고 싶다. 이 비천함과 저열함으로 마지막까지 닿겠다.

발표: 조재연
대화: 김학량
주최: 사가
후원: 서울시, 청년허브

신청링크
forms.gle/z2th3UzffQzaNFGP6
*선착순 20명을 모집합니다.

 

우리 중에 밀고자_김예솔: Willow

김예솔 개인전 ⟪Willow⟫(2022. 7. 1~30 OCI미술관) 포스터

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업지른다
나는 붉은색이 없다

손목을 잘라야겠다
진은영, 「봄이 왔다」

1
순결한 자를 배반에 물들이는 배후에 대해 고백할 게 있다. 이들은 사물마저 불온한 것이라 믿게 만든다. 또 사물이란 도처에 있는 까닭에, 은폐 대신 현현하도록 종용한다면 인간을 시나브로 전락에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조근거린다. 누구도 사물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정확히 발음한다면 ‘말해진’ 것의 세계, 언어를 통해 이미 이해되고 이야기되었던 용도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편안한 신발은 신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눈에 딱 맞는 안경은 그것을 쓴 채로 안경을 찾게 되듯, 용도에 복종하는 대상은 명령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그 순응을 알리바이로 이내 존재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배후가 주선하는 일은, 그 쓰임을 사랑스럽게 이행하며 도구적 방식으로 눈앞에서 사라진 존재를 다시 꼬드겨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은폐와 부각을 둘러싼 비밀스러운 일로 세계가 결정된다. 회유로부터 우리는 머물던 처소가 아름답고 평온하기를 그만두고 불화와 반목으로 깨어나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배반은 잠잠한 일상을 밀정이 암약하는 냉전으로 바꾸어 놓기 때문에 급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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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 실루엣의 정치학

학고재갤러리, 사진가 노순택 개인전 《검은 깃털》

노순택 ⟨검은 깃털 #CHL0701⟩ 아카이벌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108×162cm 2017

노순택은 분단 체제가 야기하는 ‘파열음’을 사진으로 포착한다. 그가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 《검은 깃털》(6. 22~7. 17)을 개최했다. 역광을 이용한 사진 19점을 선보였다. 5년 만에 신작 발표지만, 작가는 그동안 사회, 정치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뜨거운 현장에서 어김없이 자리를 지켰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규탄 텐트 농성,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김진숙 복직 투쟁,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 건립 운동 등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 작업 역시 이러한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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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강에 삽을 씻고_차지량: Surfing

여기는 물이 얼마 없어 표류할 없는 당신을 위해, 저문 강에 나가 나의 죄를 퍼다 버린다. 비로소 당신의 머리를 잠글 있을 때까지 삽은 검어졌다 씻어지기를 반복하지만, 죄엔 게으름도 포함돼 있어 물이 어둔 까닭을 때문이라고만 말할 있을지 없다. 시간에 따른 없이 시간을 만들고 마는 부지런한 천체 때문이 아니라, 이번에는 부디 나를 말미암아 당신을 쓸고 내가 검어지기를 조근거리며 냇가에서 무릎을 접고 있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_차지량: Surfing 더보기

눈앞에 없는 사람

이별에 성실한 이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결단은 사진을 지우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약속했던 망각을 부여받지만 동시에 어떤 저주도 함께 앓게 된다. 그는 이제 빈 사진첩으로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 사진에 기대지 않고도 영원히 동반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일상의 암기가 간수할 만한 것을 선택해 만드는 기억의 연금술에서 비롯된다면, 망각은 사라진 것 사이에서 필연적으로 남아버린 야금술을 말미암는다. 노순택의 사진엔 이런 야금술이 담겨있다. 작가는 대추리사태, 용산참사, 제주해군기지 반대 투쟁, 세월호 진상 규명 집회 등 정치적 순간에 빠짐없이 섰지만 그 장면을 낱낱이 기록하려 분전하는 저널리즘의 언어에 종사하지 않는다. <얄읏한 공>의 들판엔 민간인의 시위를 진압하러 투입된 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망루의 불길과 주검을 모두 어둠으로 감춘 <남일당 디자인 올림픽>에는 오직 실루엣으로서 하나의 조형이 자리한다. <가뭄>엔 최루액을 내뿜는 살수차도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는 사람들도 생략되어 물줄기만이 남았다. 그러나 지워진 것이 있는 탓에 지워질 수 없는 운명을 부여받는 존재들이 눈을 뜬다. 나는 이제 군인 없이도 들판만으로 대추리의 비극을 떠올릴 줄 알게 되었다. 불길과 주검이 보이지 않아도 모든 조형에서 살고자 또 빼앗기지 않고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망루에 올랐던 이들을 본다. 그리고 어느 흐르는 물만으로도 4월 16일을 그리고 거리에서 떠나보낸 한 노인과 만난다. 노순택의 사진 앞에서 우린 사라져버린 것들에 가장 성실하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곳에서 모든 그들을 기억할 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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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정옥: 자이니치, 표백된 제국

갤러리Q, 리정옥 개인전 《기호의 나라》

<올림피아> 패널에 먹, 아크릴릭, 디지털 프린트 220×360cm 2019

재일조선인 3세, 여성, 헤이세이 세대, 작가 리용훈의 딸. 그러나 이 중 어떤 규정도 거부해온 리정옥이 두 번째 개인전 <기호의 나라>(5. 17~22 도쿄 갤러리Q)를 열었다. 2018년 한국에서 선보인 첫 단체전 <코리안 디아스포라, 이산을 넘어>(경기도미술관)에 소수자로서 개인적인 고민을 풀어냈다면, 신작은 구조와 정체성 문제로 관점을 확장했다. 성모 마리아, 이브 등 고전 회화의 도상을 인용했던 전작과 다르게 이번 신작에는 백두산, 후지산, 후쿠시마 바다, 방호복, 양복, 저고리, 히노마루 등 국가와 민족 관련 상징물이 주요 대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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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쳉: 디지털 창세기, 게임과 AI의 만남

리움미술관, 이안쳉 개인전

〈사절, 완벽을 향해 분기하다〉 라이브 시뮬레이션, 스토리, 사운드 무한 길이 2015~16

이안쳉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가상 세계를 창조하는 미디어아티스트다. 게임 엔진과 AI 기술을 이용해 인간 의식에 접근하고, 주체와 환경 간의 상호 작용을 탐구해 왔다. 작가의 손을 떠난 후에도 프로그램은 스스로 서사와 사물을 발생시키면서 그야말로 디지털 ‘창세기’를 써내려 간다. 그의 개인전 〈세계건설〉(3. 2~7. 3 리움미술관)이 열리고 있다. 쳉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사절〉 삼부작과 애플리케이션 연동 작업 〈BOB(Bag of Beliefs)〉, 리움미술관과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 〈BOB 이후의 삶: 찰리스 연구〉 등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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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시간도 공간도 남김없이

“시간은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 말라고 존재하는 것이다. 공간은 모든 일이 나한테 일어나지 말라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이 소설을 두고 한 이 말은 미술 앞에서 모두 미끄러진다. 텍스트는 늘 왼쪽 상단에서 시작하지만, 그림은 언제나 모든 면이 동시에 발생해 한꺼번에 밀려온다. 지명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손쉽게 장소를 이동할 재주 역시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림이 머물도록 허락한 곳은 영영 이 프레임이 전부다. 그래서 회화가 때때로 비극을 내보일 때마다 나는 더욱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의 절망은 기승전결도 인과 관계도 없이 왈칵 함께 쏟아지며, 도망갈 처소도 마련해 주지 않고 화면 전부가 그저 불행이라고 말하는 연유에서였다. 최진욱은 개인전 <학교를 떠나며>(3. 25~4. 23 아트사이드갤러리)를 열면서 14년 전 그렸던 ‘KTX 여승무원 파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것이 어떤 계기가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이 <379. 우) 피, 땀, 눈물_삼부작>으로 바뀌었고, 형상도 색채도 모두 새로운 캔버스로 옮겨졌지만, 화가가 보살펴 온 어제는 내일처럼 지치지 않고 밀려와 발아래서 밑창을 적신다. 젖어 무거운 발로는 어디도 갈 수가 없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도무지 낯설어질 때까지 다시 응시해야만 한다. 갈피라도 댈 수 있다면 한 장 넘겨 도망치겠다만 한꺼번에 전부를 건네는 그림 앞에서, 존재는 똑같이 온몸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푸른색이 몇 개인지 헤아려 보고, 약지에 낀 반지가 몇 그램일지 더듬어 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겁이 진한 내가 그림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도망칠 길을 빼앗는 까닭. 너무 빨리 잊어버렸던 날들을 속절없이 돌이키고 있다. 최진욱의 그림이 한꺼번에 주는 것은 하나의 사건만은 아니었다. 머리를 깎으며, 정작 고와서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 그림 단 하나 보았을 뿐인데도 4월의 바다가, 5월의 거리가 그 많고 많았던 모든 밤이 동시에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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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이상의 형이상학_고현정: The Sweet Sunburn

고현정, ⟪The Sweet Sunburn⟫, 아트랩반, 2022. 4. 22~5. 21, 전시 포스터(디자인: 마카다미아오!)

당신의 말을 잘 듣는 나는 비로소 여름을 당신에게 보낸다. 당신은 당신의 생이 싫다고 했지. 그러니까 내가 그 생을 망가뜨려 줄까. 그가 소리를 지르고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당신의 속이 풀리어 해어질 때까지. 그러다가 결국은 그를 연민하고 말 때까지 생이 저물게 만들어 줄까. 어린 숨결에도 시들고, 젖은 안개에도 불이 붙고, 거위의 깃으로도 곪을 만큼 생을 흐물게 녹이어 줄까. 바다를 증명하려는 조개의 화석처럼, 초생달을 고백하고 마는 고래의 맥놀이처럼, 백 개의 그림자를 알리는 밀의 줄기처럼 굳어지지 않는 것들로 모두 모두어 이곳을 채워줄까. 너에게 아침은 어떻게 오지라고 묻지 않고, 처음으로 밤을 기다릴 당신. 다디단 살 그을음. 여름 이상의 형이상학_고현정: The Sweet Sunburn 더보기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적_임동식: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

⟪일어나 올라가 임동식⟫(2020. 8. 19~11. 22 서울시립미술관) 포스터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옵니다.
살아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 최규석, 『송곳』 2권(2015)에서

1
초록 사과가 한두 개씩 떨어지는 일은 발붙인 존재들의 숨을 멎게 하기 위한 것. 달이 창백한 것은 짐승의 안광을 번뜩여 적당한 피부를 오리려는 출혈의 산물이기 때문. 인간의 피가 붉은 것은 자연엔 초록밖에 존재하지 않기에. 수명壽命의 끝에서 땅이 굶주림을 채우고, 그 굶주림이 시간에 따라 이뤄지지 않을 때면 부러 재해 같은 상사喪事를 지어낸다. 이 독을 찬 묘사는 자연을 향한 것이다. 오만한 인간은 자연의 일이 인간을 양육하고자 행해진다 여기어 그들의 과실만을 취하려 하고, 조금이나마 지혜를 얻은 인간은 자연의 악은 장막으로 감추고, 그 자애만을 기억한 채 교류에 나서려 하겠지만, 이 중 어느 입장으로도 자연의 존엄은 발생하지 않는다. 자연의 존엄을 바라는 일은 도무지 자연의 악을 강조할 때 그래서 그들이 두려움을 주는 존재로 여겨질 때 가능하다고, 나는 조금씩 생각해 보고 있다. 아름답지도, 생기로 멋 부려지지도, 인간을 껴안을 너른 품을 자랑하지도 않는, 임동식이 그린 자연을 보고선 그곳에 초조히 목을 내놓고 기다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반성은 인간의 버릇. 더는 그것에 흔들리지 않으니 으름장. 그걸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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