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 세계를 비추다_디자인 마이애미 인 시추

◼︎ 『아트인컬처』 2025년 10월호

《디자인 마이애미 인 시추》(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25) 전경. 사진: 김일다

프리즈 서울의 성공적인 안착으로 서울이 글로벌 아트마켓 허브로서 지닌 위상은 확고해졌다. 올해의 서울 아트위크는 이 역동적인 지형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바로 세계 최정상급 공예·디자인 아트페어 디자인마이애미(Design Miami)의 아시아 첫 상륙이다. 디자인마이애미는 로컬 아이덴티티에 주목하는 ‘인 시추(In Situ)’ 프로그램의 첫 도시로 서울을 택하고 그룹전 <창작의 빛: 한국을 비추다>를 열었다. 전통과 현대의 교차를 주제로 국내외 갤러리 16곳에서 71인의 작가가 170여 점을 공개했다. ‘컬렉터블 디자인’이 아직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한국 시장에서, 소장 가치를 지니는 디자인이라는 낯선 화두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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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혁명이다_김희영: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

◼︎ 『아트인컬처』 2025년 9월호

모나 하툼 〈Remains to be Seen〉 콘크리트, 철근 528×530×530cm 2019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인류의 자기 인식에 거대한 파문을 몰고 왔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 명명한 이 이미지에서 인류의 모든 역사와 갈등, 사랑과 증오는 한낱 티끌에 불과했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8. 9~2026. 8. 8)은 바로 이 우주적 관점에서 촉발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했다.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끊임없는 갈등을 벌이며 살아가는가?” 김한영, 로버트 몽고메리, 마르텐 바스, 모나 하툼, 부지현, 사라 제, 시부야 쇼, 카나자와 수미, 송 동, 애나벨 다우, 이완, 제니 홀저, 라이자 루 등 국내외 작가 13인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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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 새바람, 승부수는 로컬!_이성훈 한국화랑협회장 인터뷰

◼︎ 『아트인컬처』 2025년 9월호

국내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키아프 서울이 9월 3일부터 7일까지 코엑스 A&B홀에서 열린다. 20여 개국 화랑 175곳이 참가하는 행사의 주제는 ‘공진’. 예술의 회복력과 공명의 힘으로 지속 가능한 미술생태를 모색한다. 신진 갤러리를 위한 ‘플러스’ 섹션과 차세대 작가 지원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한일 수교 60주년 특별전 <리버스 캐비닛>을 마련했다. /

키아프 서울 2025 전경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한다. 작년과 비교하면 15%가 줄었고, 최근 5년간 가장 작은 규모다. 여기에는 외적 확장보다 ‘질적 내실’을 다지겠다는 새로운 기조가 작용했다. 이러한 전략 변화의 이유는 무엇이며, 페어에는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가?

Lee 팬데믹 이후 빠르게 성장했던 미술시장은 이제 조정과 성숙의 단계에 들어섰다. 컬렉터와 방문객의 시각도 한층 깊고 다양해졌다. 키아프 역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시 콘텐츠의 밀도와 큐레이션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심사를 강화해 실력 있는 갤러리와 작가 중심으로 참가 대상을 조정했고, 전시 기획력과 예술적 완성도를 평가 기준의 핵심으로 삼았다. 작년 부스의 운영 평가는 물론, 갤러리가 기존에 개최해 온 기획전도 주요 심사 요소다. 작가의 발굴, 육성 실적 없이 대관 위주로 운영하는 화랑은 심사 단계에서 배제했다. 전시 공간의 조화와 작품 배치의 완성도, 그리고 작가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역량까지 면밀히 검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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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 눈, 스크린의 정치학_권아람: 피버 아이

◼︎ 『아트인컬처』 2025년 8월호

권아람 〈백룸스〉 LED, 6채널 연속 비디오, 4채널 사운드, 스크린 가변크기 2025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의 눈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오늘, 인식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까. 권아람의 개인전 <피버 아이>(6. 24~8. 9 송은)는 센서와 카메라, 스크린, 알고리즘, 인공 지능 등 디지털로 과잉된 시각 환경에서 경험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추적한다. 영상, 사운드, LED를 활용한 미디어설치로 ‘기계적 시지각’의 구조를 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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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초상, 솜꽃 핀 새벽_강강훈 개인전

◼︎ 『아트인컬처』 2025년 7월호

강강훈 개인전(5. 16~7. 13 조현화랑 서울) 전경

한국 하이퍼리얼리즘 2세대 강강훈. 작가는 초상화에 바니타스적 요소를 결합해 감정, 기억, 정체성 등 인간의 내면을 탐색해 왔다. 그의 개인전(5. 16~7. 13)이 조현화랑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메타포’를 주제로 삼은 신작 8점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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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가미 에츠 “무지개처럼 세상을 껴안는”

◼︎ 『아트인컬처』 2025년 7월호

일본의 ‘영 파워’ 아티스트 에가미 에츠는 무지갯빛 초상화로 소통의 본질을 탐구한다. 경주 오아르미술관 개관전으로 개인전 <지구의 울림>(4. 8~9. 21)이 열리고 있다. ‘메아리’를 주제로 신작 페인팅 17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시간과 공간, 문화를 가로지르는 목소리의 잔향을 다채로운 시각 언어로 풀어냈다. /

〈Opera 1〉 캔버스에 유채 108×196.5cm 2024

당신은 초상의 형식을 빌려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는 장면을 담아낸다. 당신의 말을 빌리자면 ‘소통의 회색 지대’를 수많은 선과 색으로 번역해 왔다.

Egami 내 그림에서 ‘선’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오해’를 의미한다. 말은 언제나 오해를 낳는다. 어떤 관계에도 이해와 오해가 포개진 회색 지대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린 꼭 하나의 해답에 도달할 필요가 없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질 때 오히려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고민에서 ‘무지개’를 떠올렸다. 교차하지 않기에 공존하는 평행선. 무지개는 선마다 색이 달라 아름답다. 선 하나하나에 담긴 오해는 슬프지만, 포기하지 않고 소통을 쌓아나갈 때 꿈의 무지개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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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으로 고요를 짓는 일_비아니, 곽철안: Black Echo

비아니, 곽철안 《Black Echo》 전경 5. 14~6. 14 아줄레주갤러리

고요는 소란을 딛고 일어선다. 소란에게는 고요를 길러낼 힘이 있고, 결국엔 기척도 없이 고요가 등 뒤에 따르리라는 믿음은 견고하다. 그러나 이 말을 비가 오고 땅이 굳는다는 흔한 교훈으로 입에 담을 생각은 없다. 여윈 바늘이 떨고 있는 한 우린 나침반 가리키는 방향을 믿을 수 있다. 모두가 잠든 밤이 지닌 적막은 사실 별과 개울, 풀벌레의 낮고 작은 웅성거림으로 빚어진다. 그렇다면 고요는 소란과 나란히 놓인다. 소란의 끝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서부터 시작된다. 소란이 고요의 형식일지 모른다는 것. 나는 비아니(Viani)와 곽철안의 《Black Echo》에 대해 말하고 있다. 두 작가의 세계는 고요하다. 완주를 마친 원과 제 길이를 모두 펼친 선. 그러나 여전히 분출하는 빛무리와 그치지 않는 선율. 누구보다 완연한 고요가 그럴 수는 없는 것. 오히려 조형 곳곳은 소란하여 고요를 생생하게 불러내는 것은 아닐지. 이들의 파동을 여기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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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풍경, 쨍한 기억_임노식: 선산

◼︎ 『아트인컬처』 2025년 5월호

임노식 개인전 《선산》(4. 9~5. 4 스페이스윌링앤딜링) 전경

젊은 화가 임노식이 개인전 《선산》(4. 9~5. 4)을 열었다. 가족묘가 놓인 여주의 선산을 배경으로 신작 17점을 선보였다. 임노식의 회화는 늘 선산에서 시작된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자 가족의 무덤이 놓인 땅. 작가는 매 주말이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선산을 오갔고, 작업의 씨앗이 될 장면을 모았다. 선산은 작가는 물론 작품에게도 하나의 고향이다. 그러나 노스탤지어가 출발점이 될 순 있어도 본질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정적일지 모르겠지만, 내게 농촌은 생성적인 공간임이 틀림없다. 30여 년간 여주는 끊임없이 변했다. 산은 깎이고 사람들이 사라졌으며, 그곳을 외국인 노동자가 와 채웠다. 건물 몇 채가 오르내리는 변화가 아니라 지형과 인간이 뒤바뀌는 격변. 그게 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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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이미지·이미지_유숙형, 임주언: 경계의 파편

유숙형, 임주언 《경계의 파편 : 이미지의 유영》 전경 4. 11~5. 10 보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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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림이 앞으로 튀어나오진 않는다. 회화의 깊이와 재현의 성취에는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 예컨대 회화가 무엇인가 등장하는 장면을 그려낼 때 그것은 1차원의 이미지다. 그런데 모든 이미지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선택과 조율을 통해 재구성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화면은 한 작가가 자신의 체험을 재구성한 2차원의 이미지로 다시 규정될 수 있다. 뿐인가. 이미지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해석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따라서 장면을 받아들일지 혹은 그 배면을 톺아야 할지를 감상자가 판단해야 하는 이미지, 다시 말해 해석을 요청하는 이미지는 3차원의 것이 된다. 나는 지금 유숙형, 임주언의 《경계의 파편: 이미지의 유영》이 지닌 세 개의 차원을 말하고 있다. 평면이라 할지라도 작품은 결과 겹을 지닌다.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1, 2차원의 회화로 이미 수많은 이야기가 산적해 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모든 개별적 사건이 웹을 통해 즉각 공유되는 시대에 새로운 내러티브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획일적으로 살고 있기에 내면을 돌아본들 독자적으로 고백할 것 역시 딱히 없다. 3차원의 회화는 이때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 타인도 자신의 이미지도 아닌, 단지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회화. 전시의 표제를 빌리자면 이른바 유영游泳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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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먼지_신용진의 회화

신용진 개인전 《저편의 양》 2022, 10. 14~30 공간운솔

신용진은 먼지로 감각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보이지 않던 입자, 폐기된 감각, 잊힌 신체의 흔적을 따라 미술을 ‘재배치의 정치’로 전환해 왔다. 여기서 ‘먼지’는 은유이자 실재다. 은유의 관점에서 먼지는 체계에서 추방되고, 터와 이름을 잃어가는 존재를 대변한다. 논문이 되지 못한 텍스트, 작업실 구석에 쓸려나간 안료, 폐기물로 남겨진 장갑….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먼지는 예술로 환기될 두 번째 생의 기회를 부여받는다. 한편 실재의 관점에서 먼지는 예외적인 상태가 아니라, 이미 우리를 이루고 있는 존재 그 자체의 형식이다. 모든 것이 먼지로 사그라지고, 그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세계에서, 먼지는 소멸을 가리키는 동시에 불멸을 지시한다. 존재는 먼지로 흩어지지만 먼지 그 이상으로 마멸되지 않고 끝내 다른 무엇이 된다. 따라서 그는 개인전 《공기색 입자》(2024, 12. 10~29 10의n승)를 구현하기 전부터 먼지를 쓰고 있었고, 먼지는 이번에 제 팔자만큼 우주가 되었다. 사그라든 것과 무엇으로든 출발해야 하는 것 사이에 먼지의 진동은 있다. 그리고 의미 없는 것과 그럼에도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 간에 삶이 흔들린다. 둘은 다르지 않다. 폐허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무의미에 패배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찌해야 하나. 기어이 무의미를 향해 걸어가야 한다. 먼지가 되어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을 때까지 바닥을 전락한 후에야 비로소 의미는 다시 움트기 시작한다. 의미란 싸움 그 자체 속에서만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무의미에서 발버둥 치는 그 순간에만 겨우 의미를 얻는다. 따라서 신용진의 예술은 꺼진 것처럼 보이는 사투에 불을 붙여 다시 생을 불어넣는 일이다. 어차피 사라질 일, 그러나 먼지는 그친 적 없는 일. 방랑과 유랑을 쉴 수 없고, 생을 찌꺼기까지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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