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재명: 아트오앤오 대표

노재명. 1990년생. 아트오앤오 대표.

MZ세대 대표 컬렉터 노재명. 그가 론칭한 아트페어 아트오앤오(4. 19~21 세택)가 미술계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15개국에서 갤러리 36곳이 참여하고, 미디어아트와 컬렉션을 주제로 한 이색적인 특별전을 기획했다. 노재명은 아트오앤오의 정체성으로 ‘유일무이(One and Only)’를 제시한다. 국내 아트페어에서 보기 힘든 해외 갤러리 라인업과 국내 신진 화랑, 젊은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

“젊고 신선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아트페어 레드 오션 시대다. 한국에서 매년 개최되는 아트페어 수만 65개에 달한다. 한 달에 6개 장터가 열리는 셈이다. 그만큼 차별성을 찾기 어려워졌다. 어중간한 출품작, 구색 갖추기식 특별전, 기준 없는 갤러리 선정 등이 공통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갤러리와 작가, 컬렉터는 물론, 관람객이 느끼는 피로감도 커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무이’를 꿈꾸는 아트페어 아트오앤오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오앤오는 순식간에 한국 미술시장의 화제로 올랐다. “젊고 신선하게 그러나 품위 있게.” 오앤오의 창립자 노재명의 선언은 곧 사실이 되었다. 행사가 끝나고 딱 한 달이 되던 날, 신촌의 수장고에서 그를 만났다.

원 앤 온리. 노재명의 컬렉팅과 오앤오를 설명하는 키워드다. 노재명은 15년 차 컬렉터다. 고등학교 때부터 컬렉팅을 시작해 현재까지 모은 작품이 200여 점에 이른다. 업계 경력은 없지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는 안목 덕분에 국내외 미술씬이 주목하는 ‘셀럽’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수장고엔 유명 컬렉터라면 갖고 있을 법한 ‘블루칩 작가’를 찾기 어렵다. 대부분이 3040 영 아티스트의 작품이다. “아직 주목받지 못했지만 가능성을 지닌 작가, 생소하고 이질적인 작품에 목말랐다. 이상하다는 것은 ‘유니크’하다고도 읽을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만큼 ‘특별’하다는 이야기다.” 오앤오는 바로 이 지점에 출발한다.

“국내 아트페어에서 느낀 갈증을 해소해 보고 싶었다. 해외 아트페어를 발로 뛰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다양성’이었다. 반면 한국 미술장터에 등장하는 작품은 늘 비슷비슷하다. 심지어 갤러리도 매번 똑같다. 세일즈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팔 만한 화랑이 나오고, 팔릴 만한 작품이 나온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지 못했던 아티스트와 들어본 적 없던 갤러리를 펼치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아트페어를 목표로 삼았다.” 이 목표를 위해 노재명은 라인업 전체를 ‘초대’ 형식으로 꾸렸다. 출전 갤러리를 모두 직접 만나 행사 참여를 유도했다. 그가 화랑에 요구한 조건은 딱 한 가지. 블루칩 작가를 내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의 설명은 타당했다. 프리즈 서울이 론칭된 후 미술시장에는 ‘모두가 프리즈만 기다린다’는 말이 돌았다. 갤러리는 더 큰 행사를 위해 좋은 작품을 아끼고, 컬렉터 역시 그때까지 지갑을 닫는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중소 아트페어에 키아프와 프리즈 서울, 아트바젤 홍콩에 나오지 못하는 수준 낮은 작품이 출품되고, 그것이 판매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노재명은 발상을 뒤집었다. 대형 아트페어에서 ‘탈락’한 작품이 아니라, 그곳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한 작품을 선보이는 일에 승부를 걸었다. 메가 갤러리보다 신진 갤러리를 잡기 위해 부스비를 낮추고, 갤러리 참여 규모를 과감하게 축소했다.

15개국 36개 갤러리. 그렇게 노재명이 엄선한 화랑이다. 라인업의 절반 이상이 해외 갤러리이고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곳이 많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지만, 그 숫자는 이례적이라 할 만큼 적다. 아트페어의 파워와 매출 규모는 곧 참여 화랑의 숫자로 결정된다. 그러나 노재명의 생각은 달랐다. “아트페어의 색깔을 명확히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스를 더 늘릴 수도 있었지만, 규모가 커지면 오앤오만의 콘셉트를 유지할 수 없다고 느꼈다.” 기존 아트페어가 규모에 따라 부스를 차등적으로 배정해 왔다면, 오앤오는 이러한 관습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규모에 상관없이 부스 크기를 통일하거나, 위치를 교차한 것. 파격적인 배치는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다. 동시대미술의 트렌드를 연속성 있게 제시하면서도, 국내와 글로벌 갤러리가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영 아티스트와 동반 성장하는 ‘후원자’

한편 시기가 좋지 않았다는 평가도 들린다. 노재명은 어째서 시장이 침체된 지금 시점에 아트페어를 론칭했을까. 대답은 명쾌하다. 불황이야말로 미술품을 사는 기회라는 것. “시장이 좋을 때는 어떤 작품을 내놔도 팔린다. 그러나 좋은 작품을 가리는 변별력은 떨어진다. 금세 솔드 아웃이 되는데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겠나. 반대로 경기가 안 좋으면 작품 가격이 내려가고, 고민할 시간도 벌 수 있으니 컬렉터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다. 이때 살아남는 작품이야말로 ‘진짜’다.” 강세장에는 미술품의 가치가 오르지만 필연적으로 거품이 동반된다. 하락장은 투자 손실이 발생하긴 하지만 동시에 그 거품이 빠지는 적기이기도 하다. 노재명이 증명하고 싶은 것은 팔릴 만한 작품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젊은 작가, 젊은 갤러리의 가능성이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오앤오는 ‘진짜’가 되었다.

노재명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세일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가 생각하는 컬렉터란 작품을 통해 금전적 가치를 회수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작가에게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후원자’에 가깝다. 그가 작품을 구매할 때 가장 눈여겨보는 지점도 그 ‘성장 가능성’이다. 젊은 작가는 테크닉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당장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앞으로 펼칠 이야기가 궁금해진다면 수장고를 열었다. 이는 그가 갤러리가 아니라 아트페어를 연 이유이기도 했다. 노재명은 미술을 통해 세계를 배웠다. 타자, 퀴어, 난민, 페미니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아티스트의 삶과 철학을 이해해야 했다. 메시지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노재명은 미술을 보고 느끼는 과정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아트페어 역시 그런 순간으로 채워지길 바랐다. “미술시장에 종사하는 이상 상업성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내겐 예술이 가장 중요하다. 갤러리, 작가, 컬렉터 나아가 관람객까지 가치 있는 경험을 얻어가는 아트페어를 만들고 싶다.”

◼︎ 『아트인컬처』 2024년 6월호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